허세(虛勢)는 실력이나 실속이 없으면서 겉으로만 뭔가 있어 보이는 척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어원은 허장성세(虛 張聲勢)에서 왔다. 여기서 두 글자로 줄여서 허세가 나왔다. 영어로는 Bluffing이나 pretentiousness, boastfulness, bravado, affectation으로 번역하면 적당하다.
출처 : 나무위키
아내는 내가 허세끼가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김 부장의 허세를 부정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허세 김 부장이다. 김 부장은 일부러 허세를 부린다. 다소 의도적이다. 낮은 자존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고육지책이다. 허세를 부리면서 한없이 낮아지는 김 부장 스스로를 독려한다.
특히 목표를 잡을 때 허세를 부린다. 수첩에 적어둔 허세 넘치는 김 부장의 계획들을 보면 얼굴이 뜨거워질 때도 많다. 그래도 여전히 허세 넘치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11년부터 글로벌 업무를 담당하면서 다양한 국가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간단한 현지 언어를 할 줄 알면 직원들과 라포(rapport, 상호 신뢰관계)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주로 '기본인사,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OOO입니다. 감사합니다. 헤어질 때 인사'같은 것들이다. 현지인들은 김 부장이 현지어를 하면 물개 박수를 치면서 기뻐했다. 김 부장이 하는 서툰 외국어를 현지인들이 반겨주는 것이 재미있었다.
지식 근로자로 살면서 그래도 9개 국어(한국어 포함)는 구사해보자고 목표를 잡았다. 허세넘치는 계획이었다. 아내에게 9개 국어를 구사하겠다는 계획을 이야기했다. 영어나 제대로 하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주변의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니 현실성 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태리어, 프랑스어, 독일어, 인도네시아어, 중국어
김 부장은 '9개 국어'를 구사하겠다는 허세를 일부러 오픈했다. 일부러 주변 사람에게 노출시켰다. 공개를 통해 목표를 확고하게 했다. 외부로 공개한 이상 시도는 한 번 해보아야 했다.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다. 배수의 진을 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김 부장 수첩에도 9개 국어 계획을 적어두었다. '한영스 / 포이프 / 독인중'이라고 3음절씩 따서 입에 되내였다. '한영스 / 포이프 / 독인중...한영스 / 포이프 / 독인중...한영스 / 포이프 / 독인중' 남들이 보면 마법 주문을 외우는 줄 알았을 것이다. 아침마다 '한영스 / 포이프 / 독인중'을 하겠다는 다짐을 따라 적었다
2014년 멕시코 주재원을 나가게 되었다. 스페인어가 필수가 되었다. 5년동안 매일 꾸준하게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출판사 관심을 못 받아 출간은 못했지만 주재기간 동안 스페인어 어휘에 대한 책을 한 권 썼다. 스페인어를 공부하니 비슷한 어원의 포르투갈어, 이태리어, 프랑스어가 눈에 들어왔다. 라틴어 어원을 중심으로 공부를 했다. 5개 국어 어원에 대한 책도 한 권 썼다. 세상에 없는 콘텐츠라고 자부한다. 언젠가는 출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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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 2년 동안 ISF(International Student Fellowship, 국제학생회)에서 한국어 교사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했다. K컬쳐(한국 드라마, K팝)가 좋아서 한국어를 배우러 온 3명의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인도네시아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어 기초 학습서를 공부하고 인강을 들었다. 열심히 인도네시아 어휘와 문장을 공부했다. 수업 때 인도네시아 대학생들과 간단한 인도네시아어로 소통했다.
김 부장이 가르치는 인도네시아 학생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인을 대표하는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한정식을 대접했다. 서울의 명소를 안내했다. 김 부장이 인도네시아어로 소통하니 가족들이 깜짝 놀랐다. 한국의 중년 아재가 인도네시어를 하니 신기했으리라... 김 부장 인도네시아어가 많이 서툴렀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기본적인 소통은 되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중국어 기초 학습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국어는 4개의 성조가 있다. 같은 발음이라도 성조에 따라서 그 뜻이 달라진다. 혼자 공부하니 성조가 입에 잘 붙지 않았다. 중국어를 공부하다가 잠시 내려놓았다.
2022년 뜬금없이 중국으로 발령이 났다. 이제는 취미가 아닌 생존으로 중국어 공부를 해야 했다. 중국의 공부에 대한 몰입도가 달라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아내가 인터넷 쇼핑을 하면서 쇼핑몰 내 중국어를 물어보았다. 대충 읽고 설명해 주었다. 정확하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직원들과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다. 이렇게 중국어가 다가왔다.
영어 공부할 때는 참 스트레스가 심했다. 공부를 해서 절대적인 점수를 평가받는 것이 재미없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새로운 언어 공부를 '취미'라는 마음으로 접했다. 자격증을 따거나 시험을 보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워서 현지인과의 소통을 즐겼다.
인도네시아어는 공부한 지 오래되어서 많이 잊어버렸다. 잊어버렸다고 해서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다시 공부하면 된다. 취미라고 생각하면 쉬었다가 다시 공부할 수 있다. 취미로 공부하는 언어는 즐겁다. 이러한 마음가짐 덕분에 지난 10년 동안 '영스 / 포이프 / 독인중'을 꾸준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김 부장이 처음에 9개 국어를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내도 믿지 않았다. 영어나 제대로 하라는 반응이었다. 스스로도 믿지 못했다. 9개 국어 계획을 수첩에 적었다. 외부에 공개하면서 힘이 생겼다. 실행력이 생겼다. 외국어를 공부할 기회가 찾아왔다. 현지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김 부장은 본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지 회사에서 글로벌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다양한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 평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솔직히 현재 김 부장 언어 능력이 회사에서 과대평가받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래도 외국어 공부 취미 덕분에 다양한 글로벌 경험의 기회가 찾아왔다.
요즘 막내 녀석 때문에 살짝 고민이다. 아빠의 허세를 은연중에 닮아간다. 아내는 '그 아빠에 그 아들'이라면서 혀를 끌끌 찬다. 나는 아들이 허세가 싫지만은 않다. 아들 녀석의 허세가 긍정의 에너지로 전환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