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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Jan 26. 2021

'췌장암'을 통해 배웠습니다.


"큰 병원으로 가보시죠!"


복부 CT 분석지에는 췌장에 2.5cm 크기의 변병이 보인다는 것과 췌장암이 의심된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머리로 이해하기까지 한참 시간이 걸렸다. '췌장암이라니?'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로 들렸다. 췌장암 같은 것은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스티브 잡스를 사망에 이르게 한 그 병 아닌가?'

'생존율이 낮은 병 아니야?'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故스티브 잡스의 투병 중 모습 >


집으로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평정심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았다. 핸들을 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아내는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울었다.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아내에게 애써 평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가슴은 울었다.

'내가 흔들리면 안된다.'



생각보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췌장암은 생존율이 낮다. 위암과 대장암 생존율이 76%다. 췌장암 생존율은 11.4%다. 죽음이라는 녀석이 바싹 곁에 서있는 것 같았다. 좀 오싹했다.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았다. 분에 넘치는 기회를 많이 누렸다. 감사해할 만한 인생을 살았다. 조금 일찍 생을 마감하더라도 억울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아내와 이제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남편과 아빠가 필요하다.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새벽 출근길에 잠들어있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먹먹했다. '가족들 때문에 이대로 못 간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다짐했다.



췌장암을 공부하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검색했다. 췌장에 관련된 정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췌장 관련 용어라도 미리 공부해야 의사 말을 알아들을 것이 아닌가.' 아내는 '없는 병도 생긴다'며 췌장에 관련된 유튜브를 못 보게 했다. 출퇴근 시간에 췌장암에 관련된 유튜브 방송을 들었다. 힘든 병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투병해볼 만한 병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출처 :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


뒤늦은 건강관리


나는 '빵돌이, 과자돌이'다. 군것질을 좋아한다. 담배를 끊은 이후로 더 자주 간식을 찾게 되었다. 회사에서 입이 궁금하면 과자로 허기를 달래고는 했다. 주말에 집에서 쉬면서 과자 한 봉지 정도는 털어넣어주어야 했다. 특정 과자는 집에 쌓아두고 먹었다. ('오징어땅콩'이다.) 췌장암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자를 끊었다. 몸에 들어가는 음식을 건강한 것으로 채워보기로 했다. 아내는 내가 과자를 끊은 것을 보고 '그게 끊어지네!'라면서 놀라워했다. '궁하면 하게 되더라.'


군것질 대신 췌장에 좋다는 음식을 챙겼다. 브로콜리, 당근, 토마토, 양배추, 청국장, 나또 같은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겼다. 밥을 줄이고 나또를 매일 챙겨먹었다. 먹는 것이 유희가 아니라 '약'이고 '생존'이었다. 감사하게도 회사에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점심으로 웰빙식을 신청할 수 있었다. 혈당/혈압을 관리하는 메뉴였다. 한 달을 먹으니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100일을 금주하다.   


몸의 이상을 느낀 이후로 일체의 술을 끊었다. 코로나 19 영향 덕분에 회식이 대폭 줄어든 것이 도움이 되었다. 간혹 있는 식사자리에서도 양해를 구하고 음료수를 마셨다. 금요일에 아내와 함께 즐기던 치맥도 중단했다. 아내가 가끔 옆에서 맥주를 한 잔 마셔도 마시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장시간 술을 안 마신 기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건강관리 잘하세요!"


각각 두 차례의 CT 검사와 혈액검사를 통해 최종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췌장에 보이던 2.5cm 병변이 췌장암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다. 지방질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추적관찰만 잘하면 될 것 같다는 담당교수 소견이었다. 나이가 있으니 '건강관리에 좀 신경을 쓰라'는 조언을 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떨어질까봐 두려워하던 시험을 합격한 기분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금요일 저녁 아내와 맥주 한 캔을 나누어 마셨다. 100일 만에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알콜은 술술 잘도 넘어갔다. 먹고 싶었던 오징어땅콩은 다시 쌓아두었다. (지금도 꺼내먹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복부 CT 예시 /  게티이미지뱅크>



췌장암 해프닝은 생각을 선물하고 갔다.


첫째,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돈, 집, 성공, 명예 같은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다. 절망적인 순간에서야 느꼈다. 이번 해프닝 덕분에 아내와의 정서적 유대감은 깊어졌다. 장모님은 '사위를 데려가시려거든 자신을 데려가달라'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전해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줄 알았다. 절망의 순간에는 가족이 곁에 있었다.



둘째,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보니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쓰겠지'하고 쌓아 둔 것이 너무 많았다. 그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불필요한 옷과 책을 정리했다. 사무실에 필요없는 잔짐이 넘쳐났다. 언젠가 사무실을 떠날 때 작은 박스 하나면 될 수 있도록 잔짐을 버렸다. 채울 줄만 알았지 비울 줄 모르고 살아온 반백년이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짐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많다.)



셋째, 못할 것이 없다.


지지부진하던 원고를 마감했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니 초인적인 힘이 났다. 진도가 안나가던 글도 써졌다. 머리는 따라가지 못해도 손이 글을 썼다. 엉덩이가 글을 썼다. 정신없이 원고를 마감하고 출판사로 초고를 보낼 수 있었다. '죽기를 각오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을 '타의(他意)'에 의해 실감하게 된 시간이었다.




신께서 사람에게 귀한 선물을 주셨다. '망각'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금요일이면 아내와 맥주도 한 캔 같이 한다. 과자도 챙겨 먹는다. 예전처럼 다시 게을러졌는지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미완성 원고만 늘어간다.  


췌장암 해프닝으로 인해 인생을 바꿀만한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졸필을 매일 써내려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감사하다. 가족과 함께 하는 오늘을 온몸으로 지킬 수 있음이 감사하다.


당신의 췌장은 안녕한가요? <끝>



[추신] 병으로 고생하고 계시는 환자와 가족분께 누가 되는 내용이 없는지 조심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힘든 순간을 보내고 계실 환자와 가족분께 진심으로 위로와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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