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또 검은 옷이야?

by 김선

주재원으로 부임하고 나니 업무가 늘었다. 덩달아 결정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직원들은 부장의 결정을 기다린다. 어떠한 형태로든 내가 결정을 해주어야만 했다. 가벼운 결정도 있지만 회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사결정도 있다.


연이은 의사결정 상황은 심리적인 긴장 상태에 빠지게 했다. 복잡한 의사결정 상황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어려운 의사결정을 하고 나면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었다. 일시적 번아웃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의사 결정을 힘들어하는 상사는 나에게 이런 말을 건냈다.


"김 부장! 관리자 연봉의 50%는 의사결정의 대가일쎄."


심리학자 로이드 F. 바우스마이스터는 그의 저서 <의지력의 재발견>에서 "아무리 합리적이고 분별있는 사람일지라도 연이은 결정을 수행하면 생물학적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평상시의 신체적 피로와 다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는 피곤하다는 사실을 모르지만 정신적 에너지는 고갈된다." 라고 주장했다.


이를 '결정의 피곤함(Decision fatigue)'라고 말한다. Decision fatigue는 의사 결정 피로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의사 결정 피로는 하루 종일 내린 수많은 결정에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말한다. 선택에 대한 심리적 / 정신적 긴장이다.



시대의 거인들을 따라하기로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항상 회색이나 파란색 셔츠를 입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에 대해 결정하고 싶지 않아요. 결정해야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항상 회색 후드 티를 입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도 항상 검은색 터들넥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었다. 그들은 항상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했기에 입는 것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입는 것에 대한 의사결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더 중요한 곳에 쏟기로 한 것이다.



주재원으로 나오니 복장이 자유로웠다. 정장이나 비즈니스 캐쥬얼을 입지 않아도 된다. 캐쥬얼하게 입는 것이 가능했다. 옷에 대한 선택을 줄이기로 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의사결정의 수를 줄이기로 했다. 그리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름에는 검은색 반팔 폴로티, 나머지 계절에는 짙은 남색 맨투맨 여러 벌을 주문했다. 그리고 아침이면 고민 없이 옷장에서 꺼내 입는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1년 동안 필자의 옷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상대방의 옷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오늘도 검은색 폴로티를 꺼내 입는다.




낡아버린 옷이 있어서 다시 옷을 샀다. 배송이 온 옷을 보더니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여보! 또 검은 옷이야? 검은 색 옷 좀 그만 사!"

나는 씨익 웃으면서 '스티브 잡스를 흉내내는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아내가 피식 웃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좋은 리더는 좋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