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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Sep 28. 2015

나는 이제 닭발을 먹지 않는다.

가브리엘 루아 <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

그리고 닭발을 해주던 우리 할머니도, 이제는 없다.


친할머니와의 기억은, 기를 쓰고 끄집어내려 해도 번번이 실패하곤 한다.

내게 있어 "우리 할머니"라고 한다면, 그건 늘 외할머니를 지칭하는 말이었고, 아버지가 들으시면 매우 서운하시겠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언니와 한 방을 쓰는 불편을 감수하며 같은 집에서 산 친할머니보다도

일 년에 두 번 돌아오는 명절 때나 만나던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더 많고, 가끔 찾아오는 진한 그리움도 오롯이 외할머니라는 존재로만 향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나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각각 전쟁 전, 후로 월남을 하신 분들이었고, 2년 만에 부산 영도다리에서 극적으로 다시 만나셨다.

그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어릴 적에 얼마나 반복해서 들려주셨는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이후 태백 탄광촌으로 가셔서 일하시다 탄광촌이 사양길로 접어들며 서울로 무작정 오신 후 쭉 힘들게 사셨다.

명절 다음 날 외할머니네로 가는 길은 꾸불꾸불 험난하기만 했다. 

도착해서의 여정은 더욱 험난했다.

외갓집은 우리 집과는 비교도 안 되게 낡고 더러웠다.

서너 집이 함께 쓰던 화장실은 푸세식이었고 불도 없었다.

그럼에도 어린 내가 외갓집 가는 날만 기다렸던 이유는, 버선발로. 말 그대로 버선발로 달려나와 "내 새끼 왔구나!" 하고 외쳐주시던 우리 외할머니가 있어서였다.

할머니는 항상 뚱뚱했고, 항상 눈이 반달이 되도록 웃고 계셨다. 

그리고 냄새.. 호박전, 제육불고기, 닭발의 냄새.

할머니가 어찌 그 음식만 십 수년 동안 해주셨겠냐만은 내게 할머니는 그 세 가지 음식으로 각인되어 있다.

워낙 어려서부터 양푼에 닭발만 수십 개를 버물버물 양념해 볶아 준 할머니 음식을 명절 때마다 먹었기에 나는 모두 그 음식을 알고, 즐겨 먹는 줄 알았다.

그런데 커가며 친구든, 남자친구든, 닭발 이야기를 하면 기겁하는 것을 보고 평범한 음식이 아님을 알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 식당에서 먹은 닭발은 할머니가 해주던 그 닭발이 아니었다. 

맵기만 하고 먹기 좋게 살만 발라져 있는 그것이 싫어 입에 안 대다 보니 이제는 아예 못 먹게 되었다.

그리고 닭발을 해주던 우리 할머니도, 이제는 없다.




가브리엘 루아의 <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는 1966년에 씌어진 소설이다.

주인공의 나이가 여섯 살, 여덟 살,  열한 살,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이렇게 네 가지의 이야기로 연결이 되는데 다 읽고 나서 작가의 이력을 살피니 이것이 자전적 소설임을 알 수 있었다.

 

 

"이때는 예쁘셨네요."
이 말에 할머니의 두 눈이 잠시 반짝이지 않았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문턱에 서 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소리도 없이 살금살금 올라와 한참이나 가만히 서서 나를 보고 내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내게 쓸쓸하면서도 한없는 다정함이 담김 미소를 살며시 지었다.
그런데 왜 엄마는 나를 보고 그리도 흐뭇한 기색이었을까?
난 그저 엄마가 내게 가르쳐 준 대로 , 언젠가 할머니가 나와 함께 놀아 준 것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 평생에 걸쳐 서로를 이해하려 함께 어울려 논 것처럼, 그렇게 놀기만 했을 뿐인데..

p51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불평하던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가 자투리 천과 낡은 밀짚모자 등을 이용해 완벽하게 예쁜 인형을 만들어내는 것을 본 크리스틴(나)은 할머니가 신이라고 느낀다. 

못 만드는 것이 없는 전지전능한. 세상을 만든 신.

그러나 할머니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고, 할머니는 사라져간다. 원래 할머니들이 모두 그렇듯.

할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좋은 친구인 생 틸레르 할아버지와의 우정 이야기를 지나 경험해보지 못한 삶에 대한 갈구로 이어진 세 번째 이야기를 지나 책은 마지막 이야기이자 할머니의 나이가 된 엄마의 이야기로 옮겨간다.    




어쩌면 나는 내가 엄마에게 좋으리라 생각한 것과 다른 것을 바라는 엄마를 조금은 원망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늙고 때때로 지쳐 있는 엄마가 아직도 젊은 날의 열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나는 청춘시절이야말로 세상을 알기 위해 앞으로 돌진해야 할 때이고, 노년시절은 푹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도 백 번은 엄마에게 이렇게 잔소리를 하곤 했다.
"쉬세요, 일은 질릴 만큼 하지 않았어요? 이제 푹 쉬실 때라고요."
이런 내 말에 엄마는 마치 모욕이라도 당한 듯 되받아 쳤다.
"나더러 쉬라고! 안 그래도 그렇게밖에 못 할 시간이 곧 올 테니 두고 보라고!"
그리고는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나도 우리 엄마가 늙어 보였을 때 똑같은 말을 골백번도 더 했단다. 나도 엄마에게 푹 쉬라고 했지. 그런데 이제야 내가 엄마를 얼마나 성가시게 했는지 알겠구나." 

p182    




어떤 책들은 꼭꼭 숨겨뒀던 이야기들을 꺼내어 먼지를 털어내게 만든다.

그건 음악과도 비슷한 것인데, 지난 날들 속에 어떠한 사건과 연관이 있는 음악을 들었을 때 그 음악이 그 시절 속으로 우리를 강하게 끌어들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대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이 책을 읽으며 어쩐지 나는 내내 우리 외할머니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얼마 전, 외할아버지마저 우리 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는 1919년에 함경도에서 태어나셨다. 
실제 나이는 그보다 조금 아래시라는데, 그 당시 있던 흔한 실수들로 인해 서류상에는 1919년생으로 기록이 되셨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늘 유쾌하고 농담도 잘하시며 타고난 이야기꾼의 모습이셨다.
내가 어려서부터 이야기들을 좋아하고, 이야기 읽는 시간을 사랑하게 된 것이 그런 외할아버지의 영향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문득 든다


좁은 방 한 칸에 언니와 사촌오빠와 배를 깔고 누워 뒹굴거리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던 어린 시절..
나이를 좀 더 먹으며 어쩐지 외가 쪽에는 시끄러운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눈으로 보던 무조건적인 푸근함에서 벗어나 십대 소녀의 눈에 비친 그 모습들은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여린 감수성에는 천박하게만 보이는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외국생활로 인해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시간은 점점 짧아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은 꽤 강력하여서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냄새와  할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들, 할아버지가 해 주던 이야기들, 집 밖에 화장실이 있던 외갓집의 모습에 강한 향수를 느끼며 살았다.



오전 8시에 막내 이모의 전화를 받았다.
바로 그 전날 오후에 할아버지의 안부에 대해 전화통화를 한 터라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모와 나는 별다른 용건 없이 평소에 전화를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우는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전해지는 순간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를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할아버지까지 할머니 곁으로 가시고 나니, 이제 나는 외갓집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외갓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나는 언제나 어린아이 같았는데 이제 정말 어른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특별한 존재였던 할아버지.

내가 지금껏 본 남자 중에 제일 잘생겼던 할아버지.

그 어떤 사람보다도 재미 난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할아버지.

유머감각이 뛰어나셨던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얼굴은 천국을 가진 자의 표정이었고, 90세가 넘은 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셨다. 
할아버지. 이제 할머니랑 만나셨겠지. 재미난 시간 보내고 계시겠지. 

그런데 보고 싶다. 
할머니 때도 그랬지만 할아버지도 연세 드신 거랑 상관없이 더 오래오래 사실 줄 알았다. 

왜 그랬는지.



할머니가 해 주시던 닭발을 먹고 싶다.

할아버지가 허허 웃으시며 이북 사투리로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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