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엔젤-나는 머리 냄새나는 아이예요(조문채. 이혜수)
아직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아이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식체 증상으로 보건실에서 약을 먹고 쉬다 교실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달 들어 벌써 세 번 째다.
골격부터 식성까지 어느 하나 아빠 모습은 없고 나만 쏙 빼 닮은 아이라, 새로운 환경에 긴장하면 속이 불편해지는 것마저 닮았나 싶어 마음이 좋지가 않았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간 유치원에서도 몇 달을 화장실을 못 가고 힘들어 한 전력도 있는 터라 유치원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고 낯선 세계일 학교에서는 얼마나 예민해졌을까 생각하며 육아 좀 해봤다는 엄마들이 자주 하곤 한다는 바로 그 실수를 하고 말았다. 마치 의사라도 된 양 이건 신경성이라고 나 홀로 결론 내리고 그저 아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노력을 한 것이다.
그런데 한 달 사이 세 번이라니. 어쩐지 이번은 예사롭지 않아 병원에 데리고 가 검사를 받아보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피검사도 하고 긴장이 되어 마음 졸이는 날들이 흘러갔다. 결과는 내 예상을 전혀 빗나가 있었다.
아이의 통증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진짜로 몸이 아픈 것이었다. 장과 위의 기능이 저하되어있고 성인이라면 매일 구토를 할 정도의 원인 모를 가스가 차있다고 했다. 식이요법을 하고 약을 먹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한시도 마음을 놓으면 안 되는 존재이구나. 그 어느 것에도 내가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아이를 대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또 한 번 얻고 지나간다.
우연한 기회에 읽고 내 보물이 되어버린 책이 있다.
이후로 아이를 키우는 지인에게 책을 추천할 일이 생기면 일순위로 추천하곤 하는 책인데, 아이와 엄마가 일기를 주고받는 독특한 형식의 책 <100% 엔젤-나는 머리 냄새나는 아이예요>이다. 엄마 조문채는 딸 이혜수와 같이 놀기만 했지 한글 가르칠 생각은 전혀 안 한 채 아이를 입학시켰는데 아이는 자기 이름도 제대로 써오지 못하곤 했다. 틀린 글씨로 채워진 아이의 일기를 보며 글씨를 교정해주는 김에 짧게 엄마의 생각을 옆에 적어주곤 하던 글이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엄마가 딸에게 이제 너의 비밀을 가지렴.이라고 말하는 시기가 올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것을 엮은 것이 이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아끼느냐 하면 추천으로 끝나지 않고 선물도 많이 했는데 혹시나 절판이 될까 하는 두려움에 집에 열 권 정도를 구비해두고 있을 정도이다.
이 책은 본래 <너의 자궁을 노래하라>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되었었다. 나는 사실 이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작가이자 출판사를 이끄는 엄마의 강인한 성향이라든지, 아이에게 여성의 건강한 자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잘 느껴진달까.
그러나 우리 문화에서는 여성의 내적인 신체 부분의 명칭이 책 제목으로 쓰이는 것이 영 불편했던지 책 제목으로 적합하지 못하다며 문화부에서 경고조치까지 내려왔다고 하니 참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딸이자 배추벌레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이혜수는 닉네임이 마빡소녀인 엄마와의 교환일기가 막을 내린 중 2 이후로도 무럭무럭 자라 멋진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딸은 엄마의 책을 보고 각 장마다 어울리는 일러스트를 정성스레 그렸고, 그렇게 2010년에 책은 새로운 제목을 달고 새롭게 출판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딸은 일러스트 작업을 하며 그 옛날 엄마와 주고받은 수많은 일기를 찬찬히 다시 읽으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 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기회는 아니지 않은가.
책의 시작에서는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못 쓰던 배추벌레가 책이 뒤쪽으로 갈수록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함께 느끼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며 흐뭇해지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아이는 더 섬세한 고민들에 맞닥뜨리게 되고 세상을 더 자세한 눈으로 관찰하게 된다. 엄마의 답글 또한 더 진지해지고 깊이를 더해간다. 책 속에서 아이와 엄마는 함께 성장해 나가고, 책을 읽던 나도 함께 그 글들에 공감해간다.
처음에는 귀여운 아이의 일기에 달린 현명한 엄마의 답글에 더 공감한다면, 뒤로 갈수록 아이의 글에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머리 감을 때는 엄마가 도와줍니다.
오늘도 엄마가 리본을 풀어주고 샴푸를 묻혀 주었습니다.
“머리 냄새가 많이 나는구나.” 엄마가 말했습니다.
자주 감는데도 내 머리에선 유난히 머리냄새가 많이 납니다.
머리가 길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샴푸 거품을 내면서 엄마가 물었습니다.
“너네 반 아이 중에 공부를 못하거나, 가난하거나, 더럽거나,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아이가 있는데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면 너는 어떡하겠니?”
나는 샴푸 거품 때문에 눈을 꼭 감은 채 가만히 엎드려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예쁘고 명랑하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요.
엄마가 머리카락을 천천히 문지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너는 머리 냄새나는 아이다. 꼭 기억해라. 가난하거나, 더럽거나, 다리를 저는 아이를 보거든 아참! 나는 머리 냄새나는 아이지. 하고.. 그러면 그 아이들과 네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배추벌레의 일기 ‘나는 머리 냄새나는 아이예요’ )
수많은 일기와 엄마의 답글 중 이 일기는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제일 인상적이었던 글이자, 그 후에도 계속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내게 말해주는 글이었다. 내가 되고 싶은 엄마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아이에게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엄마가 쓴 것은 장편소설이었단다. 소설이란 시 하고는 다르더구나. 무지막지하게 매달려야 하더라. 엄마는 미술공부를 했지, 문학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엄마 생각에, 나는 문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문학을 체험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는데 내가 읽은 바로 그 책들이 문학이 뭔가를 알려준 것 같다. 그리고 너와 함께 살아가는 이 시간들이.
(마빡소녀의 편지 ‘소망하는 순간, 희망은 가까이 와 있단다’ )
작가의 딸아이는 어느 여름, 글을 쓰느라 밥 먹는 것도 잊고 앉은뱅이 책상에만 구부정하게 앉아있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며 일기를 썼다.
엄마가 한 일이 대단한 일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한 번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엄마처럼 악착같이 해야 된다는 것을 느꼈고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윗글은 그 글에 대한 엄마의 답이다.
아이는 늘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나는 늘 마흔에 등단하신 박완서 선생님을 동경해왔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늘 되뇌어 왔다. 나도 언젠가는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소설가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언젠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선생님처럼, 고단한 삶을 어느 정도 살아낸 다음에도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는 열릴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글을 쓰겠다는 꿈은 뒤로 미루고 많은 글들을 읽기만 하며 살았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정작 나는 내 꿈에서는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내가 꿈이라 생각했던 그 길이 바란다고 가게 되는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내가 겪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상상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그것은 학창 시절에 누가 볼까 가리며 끄적거리던 습작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흔한 말로,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들 하는 것에 완벽하게 동의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겪은 일에 대해서는 적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마빡소녀 엄마의 장편소설만큼은 아니지만 내게는 아주 의미 있는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악기를 기똥차게 연주하는 멋진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얼마나 감사한 삶의 여정인지 모르겠다. 저 글에 빗대어 적어보면 음악공부를 했지 문학을 전공한 엄마는 아니지만,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쌓인 시간들과 틈틈이 읽어온 책들이 지금 나를 도서관 책상에 몇 시간째 붙어 앉아 글을 쓰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아이가 네 살이었다.
나는 막연히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나도 딸과 이런 일기를 주고받기 시작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나이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일단은 내가 머리로만 어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각한 대로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해야만 좋아하고 팔을 잡아 끄는가 하면, 사사건건 너와 친구 안 할 거라 으름장을 놓는 친구가 있다며 속상해하는 아이의 말에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그만, 그건 나쁜 말이니까 그런 말하는 친구랑 놀 이유도 없어. 맘대로 하라 그래.라고 내뱉어 버렸다.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남옴과 동시에 아차 싶어 공기를 살피니 아이가 짧은 한숨을 뱉으며 말한다.
엄마. 그러면 똑같이 나빠지는 거잖아.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아이는 늘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아이는 배추벌레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나는 아직 마빡소녀가 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가 내게, 엄마는 머리 냄새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엄하게 말해올까 봐 몸이 움츠러든다.
(작년 봄, 글을 쓸 기회가 있었을 때 썼던 글. 그 기회는 그 봄이 다 지나기 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