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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Sep 28. 2015

말이 예술이 될 때.

수전 손택 <수전 손택의 말>





수전 손택은 너무나 유명한 에세이스트자 작가이자 예술. 문화 평론가이자 연출가이지만, 정작 그녀의 책을 끝까지 읽은 것이 없다. 

이번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알게 되고 새삼 놀란 점이기도 한데, 그렇다. 되돌아보니 수많은 그녀의 책을 읽다 만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각각의 경우에 뭔가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읽고 있었는데 마침 그 주에 빨간 책방에서 다룬 책이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었고 중간에 그걸 들으니 어쩐지 책을 다 읽어버린 느낌이 들어 다시 옆으로 밀어두었던 것 같다.

 

그녀의 책 중 한국에 가장 최근에 소개된 이 책은 에디터이자 작가인 조너선 콧이 파리와 뉴욕에서 손택을 인터뷰한 전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였던 79년도 롤링스톤에 인터뷰의 1/3 정도가 게재되었고 실제로 인터뷰를 한 지 35년이 지난 2013년에야 비로소 전문을 담은 책이 나왔다. 

바로 이 책이고, 우리나라에는 2015년 4월에 소개되었다.

비록 그녀의 책들을 끝장까지 읽은 것은 없으나 (읽기 시작했던 책들은 많기에) "미국 지성계의 대모"라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생생한 목소리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에 책이 한국에 소개되자마자 구입을 했고, 드디어 다 읽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 인터뷰집을 통해 그녀의 생각과 삶을 대하는 방식, 작품들의 배경이 된 사상들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기에 읽다 만 책들을 어서 빨리 이어 읽고 싶은 마음뿐이다.

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인터뷰어였던 조너선 콧의 서문에서도 벌써 예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사실들이 여러 가지 소개된다. 

그래서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서문 치고 꽤 긴 콧의 글도 꼼꼼히 읽기를 추천한다.

 

 

 

"산다는 건 일종의 공격이에요. 타인이 점유할 수 없는 공간을 점유하고 걸을 때마다 식물군, 동물군, 작은 생물들을 짓밟게 되죠." 

 


인터뷰에서 사진 (이미지)에 대한 것과 함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은유로서의 질병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건 아마도 인터뷰 시점이 손택이 두 번째 암 수술을 한 지 2년밖에 안 되었을 때이고, 여전히 투병 중인 암 환자이며, 그로 인해 은유로서의 질병이라는 책을 쓸 수 있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모든 것에 대한 은유가 가능하고, 모든 것에 대한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작이 펜이나 연필을 들고 수첩에 적기 시작하는 것이든,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 《오만과 편견》이나 《적과 흑》을 십 대 때 읽고 '뭐가 그렇게 위대하다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삼십 대 초반에 다시 읽고 나서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경험이 쌓여야만 진짜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소설이 있다는 데 저 역시 동감합니다. 그런가 하면 2년 전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다시 읽었는데, 십 대 때와 다름없는, 아니 심지어 더 큰 감동을 받았거든요. 제 말은, 정말로 그 무엇보다 가슴 벅차고 열정적이며 크나큰 영감을 주는 고양된 작품이란 말입니다. 그 책을 읽은 뒤로 몇 주일 동안 날아다니는 기분이었어요.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이제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알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읽은 뒤로 너무나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열일곱 살 때와 정확히 똑같은 감흥이 느껴지더란 말이죠.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읽을 때 나이를 불문하고 항상 무언가를 전달해주는 그런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의 글(말) 중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아무래도  문학 속에서의 또는 인간 본성 안에서의 성적인 부분에 관한 서술이었는데, 이것은 내가 많은 경험을 하지 못한 (혹은 원치 않는) 부분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도 저도 아니면 그냥 개인적으로 언급이 불편한 주제인지도.

 

 

 

끝으로 감히 손택과 나를 비교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어쨌든 독서에 관한 한 그녀의 생각은 나와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그래요.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그러나 제 독서는 전혀 체계적이지 못해요. 굉장히 빨리 읽는다는 점에서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죠. 대다수 사람들에 비해 저는 속독 가라고 생각되는데, 많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유리하지만 어디 한 군데 진드근히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단점도 많아요. 저는 그냥 전부 흡수한 후에 어디선가 숙성되기를 기다리거든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식하답니다. "

 

이 부분은 진정 내 마음 그대로를 옮겨 놓은  듯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자신의 대해 정확하게 글로 표현해낼 줄 안다는 것이고 나(와 대부분의 사람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겠지만.

그러니까 이 글로 보이는 그녀의 삶처럼 나도, 보통 사람들(즉, 책을 읽는 것이 직업과 연결되지 않는 사람) 치고 엄청난 양의 책을 읽는 편인데, 역시 무념무상으로 읽는 시간이 꽤 많고, 사람들이 TV를 보듯 책 읽기를 즐긴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읽다가 잠들기도 하고, 우울할 때 책을 한 권 집어 들면 기분이 좋아지며, 독서는 내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라는 점도.

그녀의 글에 나의 생각을 조금 덧붙이자면, 이런 이유로 인해 책이 없는 여행 또는 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내게는 책이 여행이고, 책이 쉼이며, 책이 출발지이면서 도착지이다.

 

 

 

 

 



 

당신은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양상의 전부와 과거의 우리 모습 모두가 문학 덕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책들이 사라진다면 역사도 사라질 것이고, 인간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요.  나는 당신의 말이 옳다고 확신합니다. 책들은 우리 꿈 그리고 우리 기억의 자의적인 총합에 불과한 게 아닙니다. 책들은 또한 우리에게 자기 초월의 모델을 제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독서를 일종의 도피로 생각할  뿐입니다. 현실의 일상적 세계에서 탈피해 상상의 세계, 책들의 세계로 도망가는 출구라고요. 책들은 단연 그 이상입니다. 온전히 인간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1996. 보르헤스에게 보내는 편지. 수전 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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