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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May 24. 2017

서울 사람 시골 사람

예약해 둔 병원에 가는 길. 짧은 거리에 계속해서 신호가 있고, 신호대기가 길다. 신호가 바뀌어도 밀려있는 터라 몇 대 가지 않고 신호가 바뀐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건만 이제는 한산한 외곽에서 산 세월이 훨씬 길어 이런 외출이 있는 날이면 한양 간다며 서로 너스레를 떤다. 이렇게 복잡한 서울에서 어찌 사냐며, 어쩐지 우리 동네보다 공기도 더 안 좋은 것 같다며 맞장구를 치다 조용해진다. 나는 안다. 남편은 서울 속 푸름이 우거진 동네에 살고 싶어 함을. 그러나 서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입을 다문 것임을.


친구의 소개로 온 아이의 병원은 서점 건물에 있었다. 가끔 오면서도 이 건물인 줄 몰랐는데,  병원에 오는 날은 서점에서 놀면 되겠구나 하는 계산에 내심 기뻤다. 호수가 보이는 곳으로 정말 미친 척 떠나버릴까, 아니면 안전하게 언니네 바닷가로 갈까 시끄럽던 속은 아이의 어긋나 있는 어금니 사진을 보는 순간 깨끗하게 정리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이것을 택하면 저것이 미루어지고 저것을 먼저 하면 이것이 나중이 되리라. 


부모 노릇이 이렇게 어렵다. 어려운 결정은 누가 대신해 주면 좋으련만. 네가 지금 그걸 택한다면, 몇 달 뒤에 보았을 때 이게 득이고 이게 실이야. 라며 알려주면 참말 좋으련만. 허허.
상담을 마친 후 두려운 마음으로 병원에 끌려온 아이에게 가지고 싶어 하던 책을 사서 안기니 방긋방긋, 병원에 오길 잘했다며 신이 났다. 행동은 아직 이렇게 순수하고 아가 같은데 남편이 찍어준 사진을 보니 이제는 아이의 머리가 내 턱을 넘어서 있다. 남편은 그 길로 출근을 하고 우리는 서점에서 더 놀기로 한다. 어제 읽은 이태준의 <무서록>과 함께 수필의 쌍벽을 이룬다는 김용준의 <근원 수필>이 있길래 나도 잽싸게 집어 들었다. 아이와 책, 커피와 한낮의 여유. 


sns에 <근원 수필>을 읽고 있다 올렸더니 '이태준과 김용준은 가까이 살고 친구였으며 다른 이유였지만 둘 다 북으로 갔고 체제 속에서 유명을 달리했음’을 알려주셨다. 이태준과 김용준을 읽으며 백석 시인도 오버랩되며 우리나라 역사의 아픔 속에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 또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잃었음에 마음이 아파왔다. 어디 그들뿐이랴.
조금 깊게 읽고 싶어 월북 예술가들에 관한 책을 주문했다. 품절이라 웃돈을 주었으나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날이 더워진다. 봄이 도망간다. 여름이 오려나보다.


사람의 마음이란 너무나 간사한 것인가 합니다.
도회에서 자란 애들이란 나뭇가지에 매달린 감만 보아도 요술이나 되는 것처럼 신기하게 여깁니다.
시골서 자란 애들이란 그따위 것쯤 심상타 못해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둘이 다 불행한 인간인가 합니다.

김용준 <서울 사람 시골 사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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