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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Sep 29. 2015

저항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으면.

프랑크 파블로프 <갈색 아침>


어느 날 정부에서 갈색이 아닌 고양이는 모두 죽여야 한다는 법을 만든다.
이유는 도시에 고양이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과학자들이 여러 실험을 해 본 결과 갈색 고양이가 도시에서 살기 가장 적합한 요소를 갖추었다며, 다른 색의 고양이는 모두 죽이기 위해 독이 든 고기를 군인을 통해 나누어주기 시작한다.
시민들은 슬펐지만 고양이가 너무 많아 밤낮없이 야옹 야옹 소리가 들리는 것도 사실이기에 그 법에 따른다.
한 달 후, 정부는 갈색을 제외한 개들마저 모두 죽이라는 지시를 내린다.
사람들은 뭔가 꼭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침묵한다.
며칠 뒤, 정부와 갈색법을 비판하는 거리일보가 폐간되고, 나라에는 정부를 지지하는 갈색신문만이 남게 된다.



정부는 이것을 두고 국가반역죄라고  말한다.



얼마 뒤 거리일보처럼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조금이라도 담긴 책을 펴낸 출판사는 정부로부터 줄줄이 소송을 당하기 시작한다.
주인공과 친구 샤를리는 키우던 얼룩 고양이와 검은색 개를 갈색법 때문에 잃은 아픈 경험이 있지만, 정부의 지시에 따라 조용히 살고 싶었기에 조용히 갈색 개와 갈색 고양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그렇게 살면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며.
그러나 어느 날 군인들이 집으로 찾아오고, 샤를리가 전에 키우던 개가 검은색이었다는 이유로 샤를리를 잡아간다.  최근에 갈색동물로 바꾸었다 해도 마음까지 바뀐 것은 아니며, 다른 색 동물을 기른 적이 있다면 그게 예전이라 해도 법을 어긴 것이라는 것. 
정부는 이것을 두고 국가반역죄라고 말한다. 심지어 본인이 아니더라도 가족 중에 누군가가 갈색이 아닌 동물을 기른 적이 있다면 가족 모두를 벌하겠다고 한다.
주인공은 두려움에 떨게 된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 때, 정당하지 않다고 느꼈을 때 저항하며 맞서지 않은 결과는 이렇게 다가온다.




밤이 되었습니다.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우리가 어리석었어요.
그들이 처음 갈색 법을 만들었을 때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눈치챘어야 해요.
우리 모두 아무 말도 못하고 법을 따르기만 했어요.
그때 그들에게 맞서야 했어요.
하지만 어떻게요? 모든 것이 이렇게 빨리 움직이고 있는데...
해야 할 일도 많고, 걱정거리도 산더미 같은데...
나만 침묵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조용히 살겠다고 그저 보기만 하고 있잖아요.







믿기지 않지만 이것은 그림책이다.




믿기지 않지만 이것은 그림책이다.
그림책이지만 지금 당장 우리 어른들이 모두 읽어야 하는 책이다.
다른 책 리뷰를 올리려 앉았다가 서둘러 이 책부터 올리는 이유는, 프랑스 작가 프랑크 파블로프에 의해 쓰여진 이 책이 지금 우리나라에 꼭 들려주고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부당한 일들에 침묵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1998년에 처음 발표된 이 책이 바로, 국가 권력의 횡포와 독재에 침묵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책 뒤에 저자가 설명해 놓은 것에 의하면, 실제로 이 작품은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당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갈색 아침현상'을 일으켰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극우파 후보인 장 마리 르펜이 결선 투표에까지 진출하는 이변이 벌어졌는데, 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청취자들에게 "갈색 아침"을 소개했고 그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이 책을 읽고 동요함으로써 장 마리 르펜은 치명타를 입었다고.

이것을 두고 갈색 아침현상이라 한다는데, 이것이 정의로운 사회가 만들어지려면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산과 강을 이미 부를 대로 부른 저들의 배를 더 기름지고 살찌우게 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훼손하며,

눈 앞에서 자식 잃은 이들과 함께 울고 함께 저항한 이들을 감옥에 가두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제 몸과 손 발을 쇠사슬로 엮은 할매들을 강제로 끌어가는 나라.

서민의 목을 졸라 부자의 허리띠를 늘려주는 나라.

지금의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모습.

아프고 또 아프다.








-추천사를 쓴 박상률 작가의 글 중.-

[어느 날 갑자기 옷 색깔이며 머리카락 길이며 치마 길이 등을 법으로 정해 그 기준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모두 처벌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들까요? 
아마도 모두  어이없어하며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정한 머리카락과 치마 길이에 따라 사람들을 처벌했지요. 
1970년대에 벌어진 일이니 아주 오래 전의 일도 아닙니다.

-중략-

이런 일은 개성을 죽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갈색 아침"은 어느 날 갑자기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서 일상을 누리지 못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로지 갈색 털을 가진 고양이나 개만 길러야 한다는 법이 생겨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갈색 고양이를 제외하고 그 밖의 고양이는 다 죽여야 한다는 법이 생기고, 이어서 갈색 개만 남기고 나머지 개는 다 죽여야 한다는 법도 생깁니다. 
털이 갈색이든 흰색이든 얼룩무늬든 모두 똑같은 고양이고 개인데 말이에요. 어이없고 황당무계한 일입니다.
이렇게 독재정부는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벌입니다.
사람들의 평안한 일상을 깨뜨리려는 것이지요. 정부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뭘까요? 
일반 시민들에게 공포를 불어넣어서 자기들 입맛에 맞게 시민들을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과 신문 이름에도 갈색이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커피를 주문할 때 자기도 모르게 "갈색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어느 새 모든 말에 "갈색"이라는 단어를 붙이게 된 것입니다. 
경마 게임에서 돈을 건 갈색 말이 우승하자, 정말 갈색이라면 뭐든지 좋은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어느 순간부터 "갈색 법"에 적응하게 됩니다. 정부의 행동에 도리어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요.
하지만 독재 정부의 비정상적인 행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예전에 갈색이 아닌 다른 색깔의 동물을 키웠던 사람들까지도 처벌합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요? 
그렇다면 정부는 누군가가 과거에 갈색이 아닌 동물을 기른 사실을 어떻게 알 까요? 
독재 정부는 그런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이웃을 조사합니다. 
이웃은 이웃의 사정을 잘 알 테니까요.
독일의 독재 정권인 나치 치하에 살았던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의 시가 떠오르는군요.


나치가 유대인을 잡아갈 때 / 나는 유대인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가톨릭을 박해할 때 /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가둘 때 / 나는 당원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노동조합원을 잡아갈 때 / 나는 조합원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지
그들이 막상 내 집 문 앞에 들이닥쳤을 때 / 나를 위해 말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갈색 아침"에 등장하는 일화는 단순해 보이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일상이 깨지는 것은 곧 평화가 깨지는 일이라는 의미를 새기게 합니다.
나라끼리 벌이는 전쟁만이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아닙니다. 
독재 정부도 세상의 평화를 깨뜨립니다. 
지키기 어려운, 아니 지킬 필요가 없는 악법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그것을 따르도록 강요합니다.
독재 정부는 일상을 못 누리게 합니다.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지요. 
그럼 일상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독재자는 자기가 다스리기 편하도록 모든 사람이 똑같아지기를 원합니다. 
개성 있게 살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갈색 아침"을 읽고 나면 누구든 독재 정부가 왜 나쁜지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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