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남편이 출근을 위해 버스를 타는 곳까지는 약 5km. 마을버스를 타고 그곳까지 간다 해도 내려서 십오분여를 걸어야 한다. 남편의 출근은 늘 짐들이 동반되기에 그렇게 가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절약정신이 투철한 남편이 매번 택시를 탈 리도 만무하다.
그런 이유로 남편의 출퇴근 길 배웅과 마중을 차로 함께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시간이 너무 이르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하는 나로서는 그게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여하튼 오랜만에 오늘 남편은 새벽 스케줄이었고, 그래서 함께 집을 나섰는데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며 둘 다 조금 놀라 어..? 하는 소리를 냈다.
날이 밝아있었다.
얼마 전 이 시간은 까만 어둠이 그대로 내려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해가 이미 떠서 밝아지고 있었다.
그제야 눈에 어두웠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들어온다.
버스정류장들마다 앉거나 서서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빵집 앞에 세워 둔 트럭에서 그날 팔 빵을 옮기는 아저씨.
길게 늘어서서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들.
모두가 나보다 훨씬 먼저 노동의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
집에 들어오며 시계를 보니 6시 50분.
아이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현관문도 신경 써서 소리 안 나게 여닫고 살금살금 걸어가 방문을 여는데 두 아이 다 이미 깨어 들어서는 나를 보며 배가 고프다 말한다. 그래도 할머니를 깨우지 않고 엄마를 기다려주었네.
한 시간 더 자려고 했건만. 이대로 나의 노동의 하루도 시작되었다.
여기, 생생한 노동의 현장을 살아가는 이들의 글이 있다.
위에 삽입된 도서 정보 저자 란에 보이는 만큼의 작가들뿐만 아니라, 투쟁의 현장을 찍는 사진가도 있고, 환경운동가도, 시인도, 우체부도, 요리사도 있다.
물론 그 노동의 현장은 내가 하는 가사노동과 육아와는 어쩌면 비교도 되지 않을 고단하고 지난한 현장일 것이다.
수십편의 짧은 산문들을 이 한 권으로 묶은 이유에 대해 편집자는 삶의 생생한 현장을 담은 글들만 모인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적었다.
너무 오래되지 않은, 동시대의 것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글들로, 생활과 노동에 대한 존중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담긴 글들로, 생존 작가들의 것으로, (그래서 전우익,권정생선생님 글들이 빠졌다고.) 생활인이 공감하고 즐길만한 산문선집을 만들고 싶었다고. 그 결과물이 이 책인 것이다.
읽다 보니 낯익은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최성각 님의 글이 그랬고, 김연수, 성석제 작가의 글이 그랬다. 그런가 하면 조만간 읽으려고 꺼내 둔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에서 발췌된 글도 있어 미리 접해볼 수 있었다.
사실 언제부턴가 삶의 아름다움만을 노래한 글들로 잔뜩 채워진 책은 손에 잡히지도, 읽히지도 않는다.
삶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슬프기도, 어둡기도 하고 때로는 더럽고 처절하기까지 할 텐데 그런 부분은 쏙 빼고 온통 낯간지러운 문장들로만 채워진 책들 말이다.
스무 살 때는 그런 글들에 감동했는데 마흔이 가까워오니 삶은 예쁘고 아름답지 않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걸 알게 된 걸까.
삶은 눈물과 아픔이 있어 더 가치 있고, 노동이 있어 숭고하다.
다만, 노동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그게 문제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어느 정도는 노동을 통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시대를 사셨다고 생각되는데 지금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발버둥 쳐도 원래 가진 것이 없는 다음에야 내 집 한 칸 장만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오늘 레슨을 마치고 나오는데 학생이 국회의원을 뽑는 날이 언제냐고 묻는다.
4월 13일이라고 무심하게 대답하며 학교 안 가서 좋아서 그러나 했더니 그럼 그날 우리나라가 행복해지는지 망하는지 결정되는 거예요? 란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다.
사람들이 주어진 선거권을 저런 생각으로 행사했다면 어땠을까.
맹목적인 지지와 응원이 아니라, 내 한 표에 의해 우리나라가 행복해지는지 망하는지가 달려있다는 생각으로 투표를 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