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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Jun 05. 2016

나도 골목에서의 삶이 그립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

골목의 느낌이 생생하다.

대문은 파란색이었다. 기억 속의 집이 몇 번 바뀌는 동안에도 대문은 계속 파란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부르기는 애매한, 그런 색이었다.

열 살 봄까지 살던 쌍문역 옆 창동의 집은 마당이 있었다. 할머니가 더 크면 늑대가 된다며 개장수에게 팔아버린 강아지를 키운 곳도 그 마당이었고 엄마가 7월 초인 내 생일에 큰맘 먹고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상을 차려준 것도 그 마당이었다. (집 안은 좁아서 마당에 차렸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그 집 전에 살던 집도 마당이 있었다. 

그때는 아빠가 더 가난할 때여서 방 하나에서 엄마 아빠랑 언니랑 같이 살았다. 그 집에 살 때 더 어렸는데 선명한 사진처럼 토막 같은 기억이 더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화장실이 밖에 있었다. 화장실 칸 옆에 수도가 있었는데 내 생애 첫 혼자 머리 감기를 그 수도에서 했다.

엄마가 시킨 건 아니었는데 언니도 혼자 감으니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비누인지 샴푸인지를 범벅을 하고 물을 틀려는데 거품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꼭지를 수도꼭지를 찾으려니 눈이 너무 따가와 헹구지도 못하고 퐁퐁 울다 엄마한테 야단맞은 기억이 난다.

그 집에서도 강아지를 키웠었다. 그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는 더 생생하다. 내 동생이었으니까. 이름이 두샘이었다. 한샘이 동생 두샘이.

두샘이는 열린 대문으로 개장수 아저씨가 들어와 훔쳐 갔다. 동네에 개도둑이 극성이라고 했는데, 두샘이를 도둑맞을 줄이야.

엄마가 옆 골목에서 두샘이 목줄을 발견했다. 엄마는 계속 그 작은게 먹을게 뭐 있다고,를 연발했다. 나는 그 말이 더 무서워서 울었다. 나쁜 개도둑. 

친구들은 학교나 학원 친구가 아닌, 동네 친구들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는 같은 학교에 간 친구도 있었지만 아닌 친구도 있었다. 상관없었던 이유는 어차피 매일 만나 노는 건 같은 골목에 사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까지 계속 주택에 살았다. 집은 조금씩 넓어지고 아빠의 사업은 점점 잘 되는 것 같았지만, 엄마는 아파트라는 곳을 경계하는 것 같았다.


열일곱 살 고 1 때 빌라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빌라는 주택과 달리 경비실이 있어 신기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파트 호수에 숨은 비밀을 알지 못했다. 내가 그걸 알게 된 건 그 해 어느 날인가 한 친구가 자기 집 주소를 알려줬는데 내가 몇 층에 살아? 하고 물었을 때다. 그 친구는 나를 정말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908호니까 당연히 9층이지! 친구 표정을 보는 순간 너무 부끄러워졌다. (친구의 정확한 아파트 호수는 기억이 안 난다. 그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니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창피했는지는 기억이 난다.)  

이제야 소심하게 말해본다.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스물하나. 방학이라 들어와 보니 엄마는 짐을 싸고 있었다.  유학 중에 터진 IMF 여파였다. 

용인 신도시로 간다고 했다. 수원도 지방이라고 느낄 때였다.

갓 딴 면허로 엄마의 차를 몰아 이삿짐 차량을 따라서 용인으로 갔다. 아파트였다. 산 옆이라 공기가 좋은 것처럼 느껴졌다. 빌라도 2층, 그런데 로마에서 살던 집도 2층. 2층 위로는 살아 본 적이 었어서인지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아 어쩐지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뜬금없이 내가 살았던 집에 대해 이런 두서없는 글을 늘어놓은 이유는 오늘 읽은 한 책 때문이다.

실내건축디자이너인 아내와, 영화일을 하는 남편이 서울에 작은 집을 짓는 여정을 담은 책.


권희라. 김종대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

용인 신도시에 아내가 디자인한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곧 여러 가지 불만을 가지게 된다.

집 안이 넓고 좋으면 뭐 해, 집 밖에 나가면 대로와 자동차 흉물스러운 아파트 단지들 뿐.

문화생활도 할 수 없고 산책도 만족스럽지 않은 동네.  (백화점 근방이라 한 걸로 보아 죽전 근방으로 추정된다.) 등등. 서울이 그리운 백만스물두가지 이유들.

그래서 이 부부는 서울로 가기로 한다.

맞벌이이기에 서울 사시는 부모님이 용인으로 옮겨오셔서 아이를 봐주셨는데, 아예 서울에 집을 지어 함께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부모님 돈, 부부 돈, 대출까지 전 재산을 부어 서울에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여정이 모든 정보와 함께 이 안에 다 담겨있다. 

정말이지 집을 지을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정말 도움이 될 고급 정보들을 아낌없이 쏟아놓은 느낌이랄까. 

맞닥뜨릴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와 문제점도 다 담겨있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문제들을 겪으셨기에 더 자세히..) 

반 정도 읽기까지는 이 부부가 집에 대해 생각하는 관점이 우리와 너무나 닮아있어서 그래, 바로 이거야. 우리도 이렇게 집을 지어야 해. 부딪혀서 공부해야 할 것들을 이렇게 자세히 적어놓은 책을 발견하다니, 이건 행운이야! 하며 흥분해서 읽었는데 다 읽고 책을 덮고 나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일단, 남편분은 영화일을 하시니 아니라고 쳐도 아내가 이 분야에서 십 년 이상 일하신 전문가이다. 남편도 이 분야는 아니지만 글 쓰신 걸로 미루어보아 그 꼼꼼함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시공사에 맡기는 공사가 아니라, 건축주가 하나하나 관여해서 나온 결과물이 그들의 집인 것이고, 모두가 그런 공사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두번째로는, 역시 경제적인 문제가 걸린다.  저자는 부모님의 집과 자신들이 살고 있던 집의 전세금 또는 매매로 인한 수익 같은 어느 정도의 기본 자금이 있었으니 대출도 감당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서울에 땅을 (혹은 구가옥을) 사고, 그것을 철거한 후 설계를 하고 집을 짓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만난 골목이 있는 삶은 매력적이다.

골목에서 쌓인 추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읽는 내내 떠오른 옛 시절들이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이미 어린 시절을 고층 건물들 속에서 보냈다.

많은 생각이 스친다.

우리가 꾸는 꿈은 어디쯤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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