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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Jul 13. 2017

어떤 마음.

제임스 설터의 데뷔 소설 『사냥꾼들』을 읽다.


책을 읽고 있는데 남편이 퇴근해 들어온다.
읽고 줄 테니 이어서 읽어봐, 하며 표지를 보여주니 F86, 세이버? 라 답한다. 뭐? 하며 반문하니 그 전투기 말이야, F86이잖아. 란다. 표지 안을 찾아보니 Duncan Hannah, F-86 Sabre Jet이라 적혀있다. 놀라 고개를 드니 멋쩍은 얼굴로 그래도 내가 전투기 조종사였잖아…. 하며 슬쩍 웃는다. 나는 텍스트를, 그는 그림을 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명분 있는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에 전쟁을 대비하는 훈련을 하는 전투기 조종사라는 그의 직업이 늘 불안하고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일에 젊음과 열정을 모두 바칠 수 있었던, 그래서 후회도 미련도 없이 떠나올 수 있었던 그의 지난날을 존경한다. 제임스 설터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전투기 조종사 클리브 코넬의 시점으로 쓴, 그 자신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경험한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을 이야기일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어쩔 수 없이 계속 남편을 떠올려야 했다. 물론 실제 전쟁과 전쟁을 대비하는 훈련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은 간극이 있을 테지만, 그가 묘사한 조종사의 삶에서 전쟁을 배제한 부분은 남편도 15년이라는 조종사 생활 동안 매일같이 느꼈을 것이기에.




남편은. 그는 매일같이 썼던 조종 헬멧의 느낌을 기억할까. 퇴근하던 그의 얼굴에 남아있던 마스크 자국에 덜컹했던 마음이, 터져있던 어깨 실핏줄에 분노했던 감정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어떠한 영화를 통해, 어떠한 신념을 위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꿈으로 삼을 그 직업이 나는 여전히 안타깝고 서글프다. 나의 이런 생각이 분단국가이자 휴전국이라는 이 나라의 현실 속에 매일같이 목숨을 걸고 훈련을 하시는 선후배님들에게 누가 될까 싶어 조심스럽기도 하다. 사냥꾼들이라는 제목도 슬프게 다가오긴 마찬가지다.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 이야기하자면, 이렇게 자세하고 정확하게 전투기 조종사의 하루를 적어낸 소설이 또 있을까 싶다.

조종사의 하루하루를 설명함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준다. 그 속에서는, 전쟁이라는 그 비정상적인 상황 안에서는 적기를 한 대도 격추시켜보지 못했는데 전쟁이 끝날까 봐 걱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조종사의 모습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칠판에 적힌 조종사의 이름 옆에는 그가 떨어뜨린 적기의 수만큼 별이 붙고, 그것은 존경과 선망의 척도가 된다. 그리고 그들을 압박하는 검은 다섯 줄의 적기, 케이시 존스.


작가는 어떻게 이런 기억들로부터 빠져나왔을까. 그는 처음엔 군 동료들로부터 샌님이라는 놀림을 당할까 봐 설터라는 가명을 사용해 책을 내었고, 나중에는 과거를 단절하기 위해 계속해서 설터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아마도 겪어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전쟁이라는 최악의 아수라장 속에서 지명과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고 기억하여 소설로 적어내는 과정을 통해 그 삶에 완벽한 이별을 고했던 것은 아니었을지 내 마음대로 생각해본다.

책 속에서 서울,김포 등의 익숙한 지명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2년여 전만 해도 국내에 제임스 설터 책이 몇 권 없어 아쉽고 궁금했는데 꾸준히 번역되어 나오니 반갑다. 뒷표지에 적힌 출간예정작 목록을 보니 이어서 나올 책들도 몹시 기대가 된다.


“서울은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질척한 거리에는 오가는 차량 없이 창문 두어 개에 희미한 불빛만이 어려 있었다. 유리창도 판자벽도 없이 뼈대만 남은 건물 사이로 텅 빈 전찻길이 길게 뻗어나가는 그곳은 유령의 도시였다. 큰길을 걷고 있자니 마치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고대 유적지를 배회하는 듯했다.”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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