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귀신 들린 것처럼 굴어도 괜찮아
“헤어지자.”
나갈 때 쓰레기봉투 좀 내다버려라, 뭐 그런 말투였다. 너무 버석거리고 무신경해서 입 안에 가득 차있던 잔치국수가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하필이면 점심 때라 양쪽 테이블도 만석이었는데 B의 폭탄 투하 직후에는 주변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무료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직장인들에게 지금 이 상황은 얼마나 단비 같을까. 지들 돈까스 다 먹고 카페 갈 때 분명히 말이 나오겠지. 대리님, 아까 옆 테이블 들었어요? 어머, 나 깜짝 놀랐잖아. 누가 분식집에서 그런 얘기를 꺼내. 내가 다 체할 뻔. 나는 입술을 조금 벌려 그 안으로 국물을 조금 흘려 넣고 난 다음 국수를 계속 씹었다. 국수가 잘게 잘리다 못해 죽처럼 변해버릴 때까지. 그동안 B는 젓가락으로 비빔국수를 뒤적이고 있었다. 장국이 식어갔다. 입에 든 걸 꿀떡 삼킨 나는 턱짓으로 B 앞에 놓인 그릇을 가리켰다.
“비빔국수 맛없어?”
“헤어지자니까.”
“여기 앞접시 두 개 주세요.”
정적 속에서 앞접시가 달그락거리며 테이블 위에 놓였다. 나는 접시 하나에 내 잔치국수를 덜어 B의 앞에 밀어주었고, 다른 하나에는 B의 비빔국수를 한 젓가락 떠담았다. B를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덜어온 비빔국수를 한 입에 해치우고 말했다.
“다대기에 생강 맛이 좀 과하네. 잔치국수 먹어. 맛있어.”
“내 말 듣기는 한 거야?”
“어.”
“그래서?”
B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등받이에 등을 대며 퉁명스레 물었다. 아, 오늘은 쉽지 않네. 엊그제는 이쯤 되면 끝났었는데.
“그래, 밥 다 먹고 헤어지자.”
나는 숟가락으로 잔치국수 국물을 더 덜어주었고, B는 그런 나를 갑갑하다는 듯 쳐다보다 젓가락을 다시 들었다. B가 잔치국수를 먹는 것을 확인하며 나는 찬 물로 입 안을 헹궜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오늘로 23번째라 적응될 법도 한데 난데없는 이별 통보는 늘 새롭게 뒤통수를 때린다. 더 먹을래? B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애호박도 줘? 절레절레. 그거 말고 계란. 나는 계란지단을 전부 건져내 앞접시에 담았고, B는 비빔국수 그릇을 아예 앞으로 밀어 공간을 만들었다. 옷 조심해. 나는 B의 밝은 회색 셔츠에 국물이 튀지 않게 조심조심 앞접시를 내려놓았다. B는 계란지단부터 쏙쏙 건져 먹기 시작했다.
“맛있지.”
“응.”
“그럼 계속 사귈래?”
B가 눈을 흘겨 뜬다. 이건 안 먹히는 날이군. 실수.
“알았어. 마저 먹어.”
“헤어질 거야.”
“그래.”
고여 있던 공기가 움직이고, 재빨리 식사를 마친 옆 테이블 사람들이 먼저 일어났다. 나는 B의 앞접시가 비어가는 걸 가만히 쳐다보며 비빔국수 그릇은 내 쪽으로, 잔치국수 그릇은 B쪽으로 조금 밀었다. 그리고 밑반찬을 깨작거렸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으면 B가 지금 당장 헤어지고 싶다고 마음을 바꿀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잔치국수가 훨씬 나아.”
“그래? 다행이네. 그거 다 먹어도 돼.”
“넌 안 먹어?”
“응.”
내 말에 B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는다.
“난 비빔국수도 괜찮아서.”
젓가락을 재빨리 옮겨 비빔국수 몇 가닥을 돌돌 말자 B가 내게서 시선을 거둔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비빔국수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어느 새 비어있는 B의 컵에 새 물을 따라주자, 고마워, B가 담백하게 말했다. 이럴 때면 나는 씰룩이는 입술 사이로 삐져나오는 웃음을 어찌할 줄 모르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B는 정말 뭐랄까, 귀신 들린 집이 따로 없다. 속에 방이 여러 개인데 각각 제멋대로 움직인다. 온 집안 문이 닫혀있어서 바람이 들어올 곳이 없어도 갑작스럽게 창문이 덜컹거리고 커튼이 휘날리고 돌덩이처럼 굳어있던 안방 문이 쾅 소리를 내면서 닫힌다. 사람이 그곳에 세를 들면 3개월을 채 못 버티고 전부 도망쳐버린다. 누구는 미쳐버려서 정신병동에 입원했다고 하고, 누구는 원인 모를 가려움증에 시달렸다고 하고, 또 누구는 식탁 의자를 밟고 올라가 거실 전구를 갈아 끼우던 중 수상한 인기척에 심장마비가 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흉가에 머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시사철 냉골 같은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사계절을 나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다.
“에그타르트 먹으러 갈래?”
B가 숟가락을 내려놓자마자 나는 쉴 틈 없이 제안했다. 테이블에 팔꿈치를 얹고는 깍지 낀 손에 턱을 얹는 건 덤이었다. B는 내가 이렇게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좋아하니까.
“근처에 유명한 집 있어?”
“걸어서 7분 정도.”
“가깝네.”
나는 티슈를 뽑아 B에게 건넸고, B는 그걸로 입가를 한번 닦은 뒤 다 먹은 그릇들을 한 곳에 깔끔하게 쌓아 정리했다. 이어 가방을 챙기고 나가버리나 싶었는데, 휙 돌아와 자기가 앉았던 의자를 안으로 밀어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기 할 일을 전부 마치고 당당하게 가게를 먼저 나가버리는 꽁지머리에는 이 순간 어떤 생각이 들어있을까? 아마 내가 백만가지 추측을 해도 그 중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나는 B가 가르고 지나간 공기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이 문을 나섰을 때 B가 갑자기 사라져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B가 그렇다. B와 함께 있으면 30초 후의 일도 예상할 수가 없다.
-내가 이 물을 마시고 갑자기 쓰러지면 어떡할 거야? 막 입에 거품 물고?
-그럼 앰뷸런스를 불러야겠지.
-그거 기다릴 시간이 어딨어. 응급처치 같은 거 안 해?
-너 내가 널 살려놨으면 좋겠어?
-아니.
-거봐.
B는 어디 가지 않고 문 밖에서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끔찍하리만치 건조하게 헤어지자고 했던 정신은 국수집에 두고 온 건지, 원. B는 익숙하게 내 손을 붙잡아왔고 나는 남은 손으로 B의 외투를 여며주었다. 안 추워? 괜찮아. 햇빛 때문에 한쪽 눈을 애매하게 감은 B는 늘상 그랬듯 내 검지손가락에 자기 손톱을 꾹꾹 박아 넣어 자국을 냈다. 내가 앞장을 설 때에도 B는 이런 식으로라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 잠깐만. 고양이.”
갑자기 멈춰선 B가 내 손을 놓고 가방에서 고양이 간식을 꺼냈다. 횡단보도 뒤쪽 화단에 작은 길고양이 하나가 잔뜩 겁을 먹은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B는 간식 포장을 뜯고는 발소리를 죽여 화단에 가까이 다가갔다. 고양이들은 B를 좋아한다. 항상 그랬다. 새끼들을 곁에 두고 털을 바짝 세운 어미 고양이마저도 B가 다가가면 머리부터 비비고 본다. 나는 B의 손에 들린 간식을 넙죽 받아먹는 길고양이를 흘끗 보고, 가방에서 깨끗한 종이컵 하나와 물병을 꺼냈다. B는 그런 나를 확인하고는 남은 손을 내 쪽으로 뻗었다.
“목말랐지-”
B가 어린 아이를 다독이는 목소리를 내며, 내가 건넨 물 한 컵을 고양이 앞에 내려놓았다. 찰박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가 목을 축이는 것을 확인하자 B는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 손을 잡아왔다. B는 내가 너무 익숙하다. 그래서 내가 종이컵을 왜 들고 다니는지, 언제부터 들고 다닌 건지, 몇 개나 챙겨 다니는지와 같은 것은 굳이 묻지 않는다. 그냥 나와 내 모든 것이 그에게 당연할 뿐이다. 나는 B가 다시 내 손바닥에 손톱을 꾹꾹 박아 넣는 것을 느끼며 초록 불에 길을 건넜다. 슬쩍 확인한 B는 입가에 편안한 미소를 걸친 상태였다. 아마 우리가 배를 불린 길고양이와 곧 먹게 될 에그타르트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귀신 들린 집이라면야….
“너 거는 디카페인으로 할게.”
“응.”
B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한 후 가게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안쪽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천장 쪽에 뻗어 에어컨 바람이 어디 오는지를 확인하더니 맞은 편 의자로 옮겼다. 그런 B를 히죽거리며 쳐다보던 내가 고개를 돌려 주문을 하니, 주문을 받던 직원은 내 어깨 너머의 무심하고 무정한 흉가 B를 한번, 그리고 나를 한번 쳐다보고 내 카드를 받아 들었다. 애인이 저렇게나 매정한데, 이 사람 제대로 호구 잡혔구만. 직원은 분명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카드를 돌려받고 나서도 그냥 커피와 에그타르트가 나올 때까지 카운터 근처에 서있다가 트레이와 함께 B가 앉은 구석으로 향했다.
내가 자신의 맞은편에 앉으니 B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모양이 망가지지 않도록 에그타르트를 조심조심 들더니 끄트머리를 조금 베어 먹는다. 내 목덜미로는 에어컨 바람이 날아와 꽂히고 있었고, 나는 냅킨을 크게 펼쳐 B의 아래에 깔아주었다. 타르트 부스러기가 그 위로 떨어졌다.
B는 사람들 모두가 지나다니며 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한 흉가는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입소문을 타서 매니아층이 생기는, 그런 종류의 흉가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인근 동네에까지 소문이 자자해지기는 하나, 카메라나 둔기를 가지고 들이닥쳤던 어른들마저 모두 당해낼 수 없던 B는 사실 의외의 면모를 –현재까지는 나만 알고 있는 것 같다- 가지고 있다.
“시원하지.”
B가 에어컨을 가리키며 묻는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알바는 절대 모르겠지, 내가 더위를 많이 타니까 네가 나를 위해 이 자리를 비워줬다는 것을.
B는 사람을 가리는 흉가다. 예컨대, ‘영령의 수호자’라고 스스로를 일컫는 꼬맹이들이 B를 다녀가기도 했는데, 와중에 그 애들은 너무 어리다고 판단하기라도 한 건지 짖궂은 장난을 하나도 치지 않았다고 한다. 불이 붙기 딱 좋은 소파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그들이 귀신을 소환하겠다며 성냥을 6개 켜고 설쳤으니 전등을 멋대로 껐다 켜거나 멀쩡한 찻잔을 선반에서 떨어뜨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소리다. 오히려 따뜻하게 밤을 날 수 있도록 그 애들 중 하나를 홀려 성냥불 하나를 벽난로에 던져 넣게 하면 했지.
“너 그거 알아? 츄르가 사실 고양이한테는 불량식품 같은 거래.”
“그래?”
“어. 근데 어차피 길고양이는 아무 것도 못 먹고 살 테니까 그게 불량식품일지라도 일단 주는 게 낫고.”
“다행이네. 오늘 마침 너한테 츄르가 있어서.”
오늘은 무슨. 나는 B의 가방 속에 남아있는 고양이 간식이 5개는 족히 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안다는 티를 내면 너는 괜히 부끄러워져 다락방 창문을 와장창 깨버릴 타입이니까 나는 모른 척을 한다. B는 귀신 들린 집인데, 분명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흉가다. 에그타르트 어때? 내가 물으니 B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연다.
“겉이 바삭바삭해.”
“안은 촉촉하고?”
“응.”
B는 파이나 도넛, 타르트 같은 디저트를 베어 물 때 코를 찡긋거리는 습관이 있다. 집중력이 오래 가는 것은 아니지만 B는 뭐 하나에 꽂히면 주변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는 편이라서, 나는 흘러내린 B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다 먹었어?”
B의 손에 아직 절반 이상이나 남은 에그타르트가 들려있지만 나는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듯 상냥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도 안 되는 내 질문에 B가 표정을 이상하게 구기며, 에그타르트에 고정했던 시선을 내게로 옮겼다. 나는 새카만 B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아주 담담한 톤으로 말했다.
“너 다 먹으면 헤어질 거라서.”
“….”
“아까 못 헤어졌잖아, 우리.”
B가 자꾸만 나를 깜짝 놀래킨다면 나도 B를 깜짝 놀라게 해야 한다.
나는 이 집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 그게 바로 내가 귀신 들린 집의 귀신으로 살아가야하는 이유다. 출처 모를 핏방울이 천장 목재 결을 타고 흘러 내 이마에 주르륵 떨어지면, 나는 몰래 냉동실에 숨겨놨던 누군가의 머릿가죽을 꺼내 식탁에 올려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집이 잠잠해지면 아무리 장작을 때도 냉기가 가시지 않는 벽난로 앞에서 반쯤 죽어 있다가, 또 문이 쾅 닫히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 온 수도꼭지를 다 열어야 하는 것이다. 집안이 다 물바다가 되도록. 나는 그렇게 이 집의 주파수에 맞추면 된다. 스산하면 더 스산하게, 충격적이면 더 충격적이게, 잔인하면 더 잔인하게.
“아니면 그냥 지금 당장 헤어질까?”
B는 내 말에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남은 에그타르트를 가리킨다.
“저건 다른 맛이야?”
“크림브륄레처럼 위에 슈가코트를 했대. 너 그런 맛 좋아하잖아.”
B는 무표정하게 입에 든 것을 우물거릴 뿐, 새로 한 입을 먹지도 않고서 다른 타르트 하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먹던 타르트를 접시 위에 내려놓더니, 그 접시를 통째로 들고 카운터에 가서 도로 포장해오는 것이 아닌가.
“그만 먹을래. 배불러.”
“그래. 그럼 집에 가서 먹어.”
“아니. 질렸어. 오늘은 타르트 더 안 먹을 거야.”
B는 커피를 쭉 들이켰다. 나도 B에게 눈을 두고 빨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나는 이 흉가에 평생 살 자신이 있다. 어디 한번 비바람 부는 날에 대문과 창문을 모두 열어보시지. 그건 아마도 내가 스스로 1층 거실 기둥에 내 몸뚱이를 칭칭 묶어 놓은 이후일 걸. 나는 이 집이 마음에 들어서 떠날 마음이 추호도 없어. B의 커피 잔이 허연 밑바닥을 보이고, 내 컵의 표면에 맺혔던 물이 종이 코스터를 흠뻑 적실 쯤에 우리는 에그타르트집을 나섰다. 나란히 걸을 때 B는 내 팔뚝을 붙잡고 꼬집듯이 만지작거리는 동안, 나는 일부러 두고 나온 타르트 포장 봉지를 떠올리며 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