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사랑을 줄게

하늘이 바다인지 바다가 하늘인지, 여름이라 사랑하는지 사랑해서 여름인지

by 퀘이사


“대체 누가 이렇게 단 걸 먹지?”

“그러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너는 스푼을 꽉 채워 아이스크림을 뜬다. 물론 아주 신중하게, 미간을 찌푸린 채로 종이컵 벽면에 슈가 스프링클을 덜어내기는 하지만. 네가 모르게 너를 쳐다보는 것은 항상 즐겁다. 양 눈썹이 춤을 추다가도 금세 일직선으로 굳어지고, 곧 넘어질 것처럼 휘청대며 걷다가도 뭔가에 꽂히면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앞장서고. 너는 종잡을 수 없어서, 그래서, 나마저도 종잡을 수 없는 짓들을 하게 된다. 으으, 그런 거 알아? 입에 넣자마자 온몸이 설탕을 흡수하는 느낌. 저녁 먹고 나서 후식으로 먹었다가는 완전 뜬 눈으로 밤샐 것 같은 거 있잖아. 네가 몸을 부르르 떨며 투정을 부리니, 나는 혹시 몰라 따로 챙겨왔던 젤리 토핑을 얼른 숨길 수밖에 없었다.


“안 먹어도 되는데….”

“싫다곤 안 했어.”


너는 내 말을 단호하게 끊고는 한번 더 크게 아이스크림을 떠먹었다. 또 다시 미간이 좁아지는데도 아이스크림 컵을 놓지 않는다. 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그걸 흘끗거리다가 내 손등 위로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감각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네가 피스타치오 맛을 좋아한다고 했던 친구의 말만 머릿속으로 되뇌다가 뜬금없이 내 것은 콘으로 시켜버린 탓이었다. 나는 녹아버린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걸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휴지, 휴지! 하며 내 팔을 찰싹 때리는 네게로 다시 눈을 돌린다.


“휴지 없지? 잠깐만 기다려.”


너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왔던 길을 돌아간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아이스크림 트럭 뒤로 모습을 감췄다가, 한 손에 휴지를 한 주먹씩이나 쥐어들고 돌아오는 것이다. 나 손 모자라니까 네가 알아서 가져가. 네 눈썹 꼬리가 아래를 향하고 있다. 처음 보는 표정.


“어어, 빨리! 너 옷 버린다니까?”


너는 아주 재빨라서 내가 바보같이 멀뚱거리는 동안에 이미 휴지 뭉치를 통째로 내 손에 가져다 댄다. 쿡쿡 누르는 손길이 보기보다 조심스럽다. 나는 네 작은 손에서 머지않아 새어나갈 것 같은 휴지를 받아 들었다. 고마워.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나. 너는 특별한 대꾸 없이 다시 네 스푼을 집어 들었다.


“해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입에 든 아이스크림을 열심히 굴리느라 네 말이 뭉개졌는데도 나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린다. 응. 거의 다 왔어. 저기 저 햄버거 집 뒤에 작게,


“…지금 사람 아무도 없어!”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네가 끈적거리는 내 손을 덥석 붙잡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손에는 여전히 아이스크림 컵을 붙들고. 나는 네게 속도를 맞추기 위해 보폭을 키웠다. 그거 버려도 되는데.


“원래 해질녘 바닷가에서는 이렇게 달아빠진 거 먹는 거야, 멍청아.”

“그래?”

“어. 남들 하는 건 다 해봐야하지 않겠어?”

“알았어.”

“그러니까 이따가 그 젤리도 마저 줘.”


너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 씩 웃더니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네 주머니 속에서 젤리 다 녹은 거 아니야? 내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전에 설마-하는 마음이 먼저 들어 네 손을 놓고 주머니 위를 더듬고 말았다. 그러자 너는 나를 보며 호탕하게 웃는다. 이런 데에는 영 재간이 없어 아마 숙맥처럼 보였겠지. 나는 애꿎은 휴지를 조물거리며 네 시선을 피한다.


햄버거 집 사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는 가게 뒤에 작게 난 문으로 빠져나갔다. 네가 먼저 움직이면 내가 뒤를 봐주고, 내가 걸쇠를 푸는 동안 네가 망을 봤다. 열여섯만도 못한 행동에 참고 있던 웃음이 내 잇새로 새어나오는데, 네가 홱 뒤를 돌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댄다. 미안. 내가 스스로 입을 손으로 가리며 작게 사과했다. 미안해, 나도 모르게. 지금 이렇게 너와 단 둘이 어리게 구는 게 너무 행복해서 그만.


바다가 가까워지니 공기에 짠내가 배어있다. 마지막 쪽문이 열리자, 한적하고 작은 해변이 나타났다. 예쁘다. 네가 그렇게 말하곤 샌들을 벗어 손에 들고 모래사장을 걸어 들어간다. 바다는 사람을 홀리니 늘 조심히 놀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는 듯 했고, 나는 사실 바다가 아닌 다른 것에 홀리는 거라는 생각을 하며 네 뒤를 따른다. 하늘 색깔이 변하기 시작한지 오래인 듯 했다. 네가 물에 뛰어드는지 하늘로 날아오르는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모래에 내 발이 푹푹 묻히다 못해 이대로 여기 망부석이 되어도 좋을 것만 같다.


너는 네 컵 속의 아이스크림이 거의 다 녹은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걷다가, 마침내 파도에 발가락을 적실 때 나를 돌아본다. 단순한 그림이다. 하늘이 있고, 바다가 있고, 그 사이에 네가 있고, 짠내 섞인 바람이 분다. 단순하고 충분한 그림. 꿈. 네가 내게 손짓하고, 줄 것이 없는 나는 나를 네게 건넨다.


무한한 사랑은 어때? 네가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가져가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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