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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e Jun 17. 2019

'부모 성장곡선' 설명서

출산으로 잃는 것들, 그리고 얻는 것들

아이를 낳고 나서 변하는 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몇몇 산모들은 출산 이후 우울감을 겪기도 합니다. 호르몬의 변화에 따른 것이기도 하겠지만, 앞으로 뒤바뀌는 환경들을 떠올리면서 우울해지는 거죠. 아기는 예쁘고 출산 사실도 기쁘지만 아기로 인해 달라질 삶이 그동안 평온했던 삶과는 다를테니까요. 이런 점에서는 아빠들도 마찬가지일 듯 합니다.


저 역시도 출산 직후에는 "못하는 것"들의 리스트가 떠올랐습니다. 작게는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국내 여행부터(저는 지방 소도시 여행을 좋아했었습니다), 일주일 안팎으로 다녀오는 해외 여행, 그리고 제 커리어에 이르기까지요(음, 커리어 부분은 때가 되면 제대로 한번 쓰고 싶어지네요 조만간...)

이외에도 밤늦게까지 이젠 모임도 못하겠거니, 주말에 늘어지게 책도 이젠 못 읽겠거니 등등 포기할 거 천지로 보였습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얘기해도 돌이켜보면 당시엔 우울감을 겪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신생아 시기가 지나고 보니, 아이가 주는 선물이 더 많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잃는 것도 있지만 그 잃는 걸 포기해도 될만큼의 행복감이 찾아 온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마주하면, 제가 아이한테 대단한 걸 해주는 게 아닌 거 같은데도 이유 없이 방긋 방긋 웃고 너무나 좋아하는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저를 이렇게 좋아하고 이렇게나 많이 좋아함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저 역시도 아이로 인해 제 삶에서 웃을 일이 너무나도 많아졌습니다.

© Victoria_Borodinova, 출처 Pixabay


타인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집니다. 아직까지는 친구나 동료 중 아이 있는 집이 더 많기는 합니다. 결혼 전/출산 전 아이 없는 삶/비혼 가구의 삶을 체득했다면,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그들의 삶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이로 인해 달라지는 일상이나 그 어려움, 아이를 기르며 희생해가는 무언가를 떠올리면 뭔가가 맘이

짠해질 때도 더 많아집니다(물론, 아이가 있어야 꼭 그런건 아닙니다. 아이가 있음으로 해서 "그럴 확률"이 더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 셋을 둔 소설가 이기호 씨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납니다.


아이로 인해 좋은 점이요?
슬픈 건 더 슬프게,
기쁜 건 더 기쁘게
느낄 수 있다는 거죠.


미국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의 윌리엄 새들러가 펴낸 '서드 에이지(Third Age), 마흔 이후 30년'에서는 어른의 성장 곡선을 아래처럼 표현합니다.



마흔 살의 성장곡선이지만, 저는 이를 '부모의 성장곡선'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출처: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새들러는 중년을 심층연구해,  마흔 이후 삶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2차 성장의 시기라고 규정합니다.


요새는 결혼 연령도 늦춰지고 있어서 늦은 나이에 출산하시는 분들은 더 절감하실 수 있을 거고, 서른 안팎에 출산하신 분은 마흔이라고 하면 먼 나이처럼 느껴지시는 분도 있겠지만, 이 그래프를 중년 대신 출산으로 바꿔서 해석해도 좋습니다.

여튼 이를 "부모의 성장곡선"이라고 치면 그래프의 가운데에 까맣게 색칠해져 있는 부분에서 하강하는 부분은 신체적 나이일수도, 뭔가 못하게 되면서 하강하는 기류를 보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무언가는 내리막이지만, 또 다른 무언가는 올라옵니다.



부모의 성장곡선에서 올라가고 있는 건,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일 수도 있고, 타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깊이 일수도 있고 스스로에게는 무언가 이루려는 의지일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아이가 가져오는 감정과 정서적인 부분을 이야기했지만 이는 제게 일과도 연관이 됩니다.


'시간부자'였던 예전과 달리 아이로 인해 보다 빠듯한 시간을 보내다보니,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게 됩니다. 제 일의 특성상 "마감"이 무척 중요한데요, 사실 마감 이전에는 일을 한없이 미루다가, 마감이 닥치면 말그대로 초능력을 발휘해 일을 처리합니다.

퇴근하고 나면 아이랑 놀아주고 아이를 재우고, 시간에 한계가 있다보니, 남아 있는 시간을 쓰는 밀도는 매우 높아졌습니다. 허투루 보내지 않게 되어서, 아이가 자면 책을 읽거나, 혹은 아침에 일찍 출근해 무언가를 쓰려고 합니다.

© annca, 출처 Pixabay


한없이 빈둥거리는 시간이 없어진 점은 슬프지만(이건 어른의 성장곡선에서 하강 국면에 해당되겠죠)

저 나름대로 개인 프로젝트를 설정해놓고 이를 지키려 하면서 어제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이건 성장곡선에서 상승 국면에 해당되겠죠)

Better Than Before

이 블로그를 쓰는 일 역시도 프로젝트 중, 하나인데요. 회사 프로젝트 역시 공교롭게 아이와 연관된 주제로 제안해서 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생각지 못할 일이기도 합니다. 퇴근 시간 이후 집에 종종 걸음으로 가다시피 하지만, 집에서의 시간은 더욱 밀도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위에서 언급한 새들러의 '서드 에이지(Third Age), 마흔 이후 30년'에 따르면


First Age는 배움의 단계로 1차 성장이 이뤄지는 10대~20대,  Second Age는 일과 가정을 이루는 단계로 정착하는 시기, Third Age는 생활을 위한 단계로 제2의 성장을 통해 자기 실현을 향해 나아가는 시기로 규정합니다.
  
예전엔 마흔을 중년의 위기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요새는 오히려 젊은 시절보다 활기차고 즐겁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나아가는 시기로 보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출산이라는 인생의 큰 event를 겪은 부모들에게도 출산 이후의 삶은 '제2의 성장'을 해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시기가 될 수 있습니다.


불과 몇달 전이지만 생각해보면 출산 후 저도 모르게 왔던 우울감은, 아이로 인해 생활이 바빠지면서, 또 회사에 복귀하면서, 그리고 아이로 인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지면서, 역시나 이번에도 저도 모르게 치유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성장의 기회는 몇 차례 있을 수 있겠지만 아이로 인해 부모도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엄마. 여성주의자. 신문기자
이른 아침, 스벅에서 일기를 씁니다
유별나지 않게, 유난하지 않게,
아이를 기르고 싶습니다


뭐라도 씁니다

매일 밤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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