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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e Jun 12. 2019

고독한 모유 수유 패잔병(산후조리원 ver.)

이번에는 산후조리원의 꽃으로 여겨지는 모유수유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산모들이 산후조리원에서 기대하는 사항으로는 모유수유 관련이 가장 많습니다. 조리원이 '모유수유 훈련소'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도 괜한 이유가 아닐 겁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 산후조리실태조사 결과 분석'에 따르면 산모들이  산후조리원 교육과 관련해 가장 필요하다고 한 교육은 모유수유 교육(94.2%)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실제로 조리원에서 산모가 가장 많이 받은 교육도 모유수유 교육(91.4%)였습니다.  

PublicDomainPictures, 출처 Pixabay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출산 병원 수유실에서 모유수유에 실패했지만, 조리원에 가면 다를 것으로 생각 했습니다. 모유를 먹이지 못해도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아직, 첨이라 젖이 안돌아 그래. "
"산후조리원에 가면 모유 수유 잘 배울 수 있을거야 "

그리고, 조리원에 입소하고 드디어 첫 수유콜을 받았습니다.  

신생아실 선생님은 시크하게 아이를 건네주셨습니다 아이를 안고, 한쪽은 발 받침대에 발을 올리고 수유 쿠션 위에 작은 아이를 올리고 해봤죠.
 
어땠을까요.

사실 산후조리원이라고 해도 특출난 방법은 없었습니다.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유 수유라는 것도 시간과 인내심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수유 자세가 왜이리 어색하기만 한지요. 몸에 익숙치 않은데다 같은 자세로 있으려니 온몸이 뻐근하기까지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기처음에는 빨려고는 했지만 아기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이내 얼굴이 시뻘개지면서(불타는 고구마처럼요!) 버둥거리며 울었습니다. 혹은 바로 잠들어 버리던가요.

신생아실 선생님이 한 마디 합니다.

"빠는 힘이 없어서 그래요"

자는 아이에게 분유 젖병을 물려봤습니다. 눈감고 있던 아기는 어찌나 쪽쪽 잘 빨아먹던지요.
(스트레스 1단계 레벨 UP)

신생아실 선생님은 수유 방법을 나름 잘 가르쳐 주려 하지만 뜻대로는 되지 않습니다. 아기는 벌써 분유에 길들여져서 편하게 먹는 방법을 알게 됐던 겁니다.

다들 많이 읽으시는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의 '삐뽀삐뽀 119'에선 이런 내용이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출산 병원이나 조리원 등에서 아기에게 반드시 젖병을 물리지 말라고요. 불가피하게 물려야 할 경우에는 컵수유를 하거나 수저로 분유를 떠먹여주라고 권합니다. 아기가 젖병에 익숙해지게 하면 안된다는 이유인데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출산하고 정신 없는 와중에 신생아실에 "저는 모유수유할겁니다. 우리 아기 컵으로 분유 떠먹여 주세요"라고 얘기하기는 힘듭니다. 아기를 여러 명 돌봐야 하는 조리원 신생아실에서도 마찬가지구요. 모유 수유는 많이 물리는 게 답이라고 하지만, 결국 모유 안먹는 아이에게 분유를 줘서 배를 채우게 하고 분유에 더 익숙하게 만들어 엄마 가슴보다는 젖병에 익숙케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거죠.


뿐만 아닙니다. 수유실 풍경이란 예상치 못한 광경이기도 했습니다. 수유복은 원피스에 앞단추 서너개가 달려 있죠.  서로 처음 만난 산모들이 제각기 앞단추를 풀어헤치고, 가슴을 내놓고 모유를 주는 장면이 뭔가 적응이 안됐습니다.  가슴까지 보이는 이 광경. 목욕탕도 아닌 것이 몹시 생경하기만 했습니다.  
(스트레스 2단계 UP UP)

조용하지 않은 환경도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우리 아기는 잘 못먹고 있는데 옆에 있는 산모가 “우리 동그리(애칭) 잘먹지 블라블라” 이야기하는 것조차 거슬리기까지 했습니다. 반대로 저희 아기가 울음을 터뜨려서 ‘민폐'가 되기도 했구요.
(스트레스 3단계 UP UP UP)

아이가 젖을 잘 먹지 않자 수유실 선생님이 아이 목덜미를 잡아서 가슴에 대어주는 것 역시도 엄마인 저는 편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기 귀가 접힌 채로 울고 있는데 억지로 가슴에 갖다 대려니 아이도 힘들고 저도 힘들고...
(무한 스트레스 스트레스 스트레스 스트레스...)


결국 수유실에서 철수하고 방으로 터벅 터벅 들어옵니다. 패잔병처럼 말이죠, 그때부터는 핸드폰으로 모유 수유가 왜 안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검색의 무한루프에 돌입합니다.

 

© hamann, 출처 Unsplash


그러다가 조리원 2주차에 들어서니 아기가 모유를 먹을 줄은 알게 됐습니다만, 양이 많지 않아서 분유로 보충을 해줘야 했습니다.


직접 수유를 양쪽 10분 씩 하고(총 20분), 분유도 먹이고(약 10~15분), 안고서 트름까지 시키면(약 10분) 40~50분이 꼬박 들었습니다. 물론 작은 생명체에 이 정도 시간을 투자하는 게 맞기는 하지만 제 몸이 힘든건 엄연한 팩트였습니다.

또 많이 먹지도 않는 아기여서, 매일 아침 신생아실 앞에는 "성적표"가 똭 붙어 있습니다. 세로축은 입소한 아기들 이름, 가로축은 아기 몸무게죠. 매일 아침 아기 몸무게를 재어서 붙여 놓는거죠.

© nhillier, 출처 Unsplash


음. 기분 묘합니다. 오로지, 아기 몸무게로 산후조리원에서의 나의 생활이 "평가"를 받는 기분이었달까요? 학창시절, 중간 기말 고사를 다 보고나서, 교실 뒤에 성적 순으로 나래비를 세워놓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저희 아기는 항상 꼴찌였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집 아기들의 몸무게가 안보일려야 안보일 수가 없는데, 자의든 타의든 비교라는 걸 하게 되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산후조리원 퇴소 후 한 달 뒤 경부터 어찌저찌해서 모유 수유에 성공했습니다. 조리원 초반에는 완분을 하다가 2주차부터는 혼합으로 했고 퇴소 후에도 혼합이었으나 모유를 더 많이 먹였던 거죠.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면, 몸 추스리기도 바빴던 2주 동안 모유 수유가 뜻대로 되지 않는 데에서 오는 부담이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은 쉽게 하는데, 왜 난 안되지? 왜 난 못하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데, 모유수유 어렵습니다!

모유수유를 하기로 했다면 조리원에서부터 모유를 많이 먹이면 좋겠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조리원 퇴소 후 한 달 뒤부터 본격적으로 모유수유를 했으니까요. 그 시기엔 아기에게 가슴을 갖다주면 아기가 자연스럽게 쪽쪽 빠는 시기가 어느 순간 올 수도 있으니까요(물론 그 과정까지는 수유 자세 등등 부단한 노력이 있었죠) 그러므로, 혹여라도 뜻대로 모유수유가 안되는 분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너무 스트레스 받거나 조바심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산후조리원은 비슷한 집단을 모아둔 곳이다보니, "비교"라는 걸 하게 됩니다. 남들처럼 못하는 모유 수유, 남들처럼 못빠는 우리 아기, 남들처럼 몸무게가 안나가는 우리 아기. 

학창시절 성적표가 안좋게 나와도 그저 태평하게 버티고 있었던 성격이었는데, 그런 저마저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비교라는 걸 하면서 스스로를 죄었던 것 같습니다. 산모별 개인차가 있고, 아기별 개인차가 있는데 이런 점들을 무시하고 딱 '그 시점'에서의 상황만 단순 비교하게 되면 스스로를 행복하지 않게 만들게 되는 거죠.


물론! 모유 수유 안해도 됩니다. 모유 수유를 하건 안하건 아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으니까요. 중요한건 엄마의 마음입니다. 앞서 언급한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산모들이 모유 수유를 계획한 이유로는 아기의 건강(72.1%), 정서적 발달(17.9%)을 꼽았습니다만, 요새 나오는 분유들 성분이 좋아서 아기가 자라는데에 꼭 필요한 영양을 줍니다.


정서적 발달도 분유로 불가능한건 아닙니다. 흔히들 모유 수유를 하면 아기와 교감할 수 있다고 하는데 분유 젖병을 물리면서도 아이와 교감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젖병을 물리고 아기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말이죠! 


결국 글은 길게 썼지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단 하나, 간단합니다. 모유 수유, 하면 좋지만 안해도 된다. 그러므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는 내용입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엄마를 쳐다보는 아이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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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여성주의자. 기자
이른 아침 스벅에서 일기를 씁니다
유별나지 않게, 유난하지 않게,
아이를 기르고 싶습니다


일하는 엄마도 행복한 육아를!

일하는 엄마의 임신 출신 육아기는 매일 밤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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