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ue Jun 24. 2019

회사를 때려치우게 싶게 하는 것들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에서 찾은 퇴사의 변

최근 몇 년 사이 퇴사가 화두입니다. 퇴사라는 키워드의 부상은 ‘요즘 젊은 것’들의 유행이라고 보기엔 조직에서 스스로 문제점을 진단할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하고 싶은 일 해서 행복하냐 묻는다면?>이라는 책에서는 제목 그대로 3년 이하 퇴사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퇴사의 변. 업종이 달랐기에 이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점도 있습니다.


층층 시하의 조직


관악구에 독립서점을 차린 엠프티플러스의 김소정 씨는 대기업 계열 문화공간 운영 사업을 맡았는데, 일 자체는 재밌었지만 조직 인프라에 부딪혔다는 점을 꼽습니다.


기획서에 '스웩'이라고 써서 올리면
'멋짐'으로 바뀌어 내려온다든지...


이런 일은 비단 그녀 혼자 겪는 일은 아닐겁니다. 이를테면 많은 기업들이 요새 핫하다는 애자일(Agile)을 주창하고 있는데 사실은 수사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애자일을 도입하겠다고 조직을 개편하고, 팀을 새로 만들며, 팀원들의 호칭까지도 바꾸면서 여전히 층층시하의 보고 체계를 갖춘 곳도 적지 않습니다.



웬지 안 그럴 것 같은 스타트업에서조차 다르진 않습니다. 일명 판교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스크럼(scrum)이라면 이 모든 과정이 길어도 십오분 이내로 끝나야 했다. 하지만 우리 대표는 스크럼을 아침조회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심히 문제였다. 직원들이 십분 이내로 스크럼을 마쳐도 마지막에 대표가 이십분 이상 떠들어대는 바람에 매일 삼십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스크럼은 애자일 정신에 따라 매일 짧게 각자 맡고 있는 분야를 이야기하고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스탠드업 미팅으로, 팀원들이 대등한 위치에서 수평적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인데, 한국에선 아침 상사가 부하사원을 달달 복고, 업무를 채근하고,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는 시간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거죠.


보고를 위한 보고


마찬가지로 조직의 문제인데요. 조직이기에 보고도 중요합니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일하다가 디저트 가게를 차린 김희정 르페셰미뇽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회사에선 보고서 작성이 주 업무였는데,
언제든 숫자로 장난칠 수 있다는 게 너무 싫었다


실무자가 보기엔 ’이건 아닌데, 아닌 건 아닌데’, 위로 올리는 보고서는, 우리가 지금 잘 한다고 쓰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일명 '분식 보고서'이죠. 보고서를 그렇게 써야 우리 조직이 살아 남을 수 있고, 그래야 우리 팀장님이 좋은 평가를 받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이걸 쓰는 실무자는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실무자는 이런 생각이 들죠. 나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차라리 조직 성과를 위해 일하는 거면 몰라도, "분식보고"로 꾸며대는 일을 하고 있자니 ‘내가 기껏 이런 일 하려고 학교에서 공부해서 취업했는가’란 생각이 들죠.


삶을 소진하게 하는 시간


삶을 소진하게 하는 시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의미한 야근이나 반대로 몸이 으스러져라 일해야 하는 일들. 책에 나온 디자이너 출신의 대표는 첫 직장은 새벽 네다섯시까지 일하고, 회사에서 잔 적도 많았다고 고백합니다. 두번째 회사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충격적입니다.


두번째 회사는 좀 더 편해졌다. 야근해봐야 새벽 1~2시까지 했고 주말엔 쉴 수 있었다.

어찌보면 주말 휴무는 어찌보면 당연한데, 이 당연한 휴식 시간이 굉장한 것으로 느껴질 때면, 더 이상 있어야할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이 되는거죠.


한계가 벌써 보이는 앞날


마찬가지로, 김희정 대표는 말합니다. 10년을 회사 다녔어도 여기서 내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승진도 어느 순간에 이르면 어려울 것 같고, 회사는 어느 순간 그만 두게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10년을 다녔는데도, 회사 밖에 나가면 나의 경쟁력이 무엇인가..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리는 거죠.



회사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것은 지금 하는 일에서 재미도 의미도 없는 일이라고 느껴질 때인 듯 합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 힘든 건 일 안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조직 입장에선 조직원들에게 이런 회의감을 심어주진 않았는지 먼저 되짚어봐야할 것입니다.


개인 입장에서는요? 사실 제 지론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주의입니다. CEO나 C레벨이 아닌 이상, 한 개인이 조직 문화를 바꾸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듭니다(현실적으로요). 하지만 퇴사가 답일까요? 책에서 퇴사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돈 때문에 불안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월급 없는 삶의) 불안함을 택하겠다...고생이 곧 불행은 아니다. 편함이 행복이 아니듯...


퇴사한다고 해서 돈을 훨씬 많이 벌지도, 자유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한 개인을 지키면서 사는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보입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퇴사 후의 삶 역시도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책에선 계획하고 회사를 나오는 걸 권합니다. 예컨대 가게 인테리어 하는 기간에도 가게 월세를 내야 하는 사실을 모르고 무작정 가게를 구했다던지, 물건 납품 받는 체계에 대한 스터디 없이 연락만 하면 도매상에서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가게를 오픈했다든지 등등의 크고 작은 실수가 나옵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퇴사를 꿈꾸지만 퇴사 이후의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으며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삶을 포기하는 것 역시 쉽진 않을 듯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인정해야 하는 현실. 회사 밖은 엄혹합니다. 굳이 회사 밖이 아니어도, 지금의 환경을 바꾸거나(가령 팀을 옮긴다든지), 회사 일은 그대로 하되 개인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하던가(재미와 의미를 줄 수 있는) 어떤 방안을 강구해야곘죠.


결국, 불안한(정확히는, 불안할 수도 있는) 삶을 택할 것이냐, 안정적이되 개인을 희생해야 하는 삶을 택할 것이냐는 개인의 판단의 문제인 듯 합니다(물론 둘 다를 충족하면 이상적이지만 그건 이상이니까요)



엄마. 여성주의자. 신문기자
유별나지 않게, 유난하지 않게,
아이를 기르고 싶습니다
일하는 엄마도 행복한 육아를!


매일 밤 뭐라도 씁니다

매일 밤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다음 글이 궁금하면 "구독하기"를

도움이 되셨다면 "하트"를 눌러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워킹맘, 가끔은 ‘꽃모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