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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e Apr 15. 2019

여유로운 캥거루케어, 사치일까

아, 드디어 아기가 나왔습니다. 때는 어느 여름 날 휴일 아침 9시 28분.


양수가 새서 전날 병원에 입원했는데, 진통의 기미가 전혀 없다가 새벽 어느 순간 자궁문이 화악 열려 무통주사도 못맞고 바로 출산했습니다. 새벽 4시부터 살살 진통이 시작됐는데 아기가 내려올 기미가 없다고 해서 자연분만은 힘들겠구나 싶었던 찰나에 아침 7시 전후로 갑자기 분만실들의 물건들을 재배치하는 소리가 후다닥 들리더니 간호사들의 움직임이 바빠졌습니다.
(저는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는데!!!) 실제 분만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필자: 무통주사는요?
의사: 무통주사 놓다가 아이 나올 수 있어요. 없이 갑니다.
필자: 으아악

실질적인 진통은 새벽 6시부터였으니까 서너시간 진통하고 출산을 한 것 같습니다. 아기가 세상에 나와 처음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찌나 비현실적인지요. 아이를 만났다는 감동보다는, 솔직히 이야기하면 아, 아픈 거 끝났구나, 이제 쉬어도 되겠구나란 생각이 먼저 들었던 걸 고백합니다.정신을 차려보니 멀찍이서 남편이 아이를 보고 어깨를 들썩이면서 울고 있었고, 저는 아, 이제 아픈거 끝끝끝, 이런 생각만. 아이를 낳고 나서  양 다리가 저절로 후들후들 떨리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걸 경험했습니다.


© Sanjasy, 출처 Pixabay



서두가 길었습니다. 이제부터가 본론입니다. 이 시간부터, 제가 다시 출산한다면 할 일과 하지 말았어야할 일을 복기해보겠습니다. 병원에서 분만하는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아쉬운 사항들이 있지만, 여러 한계 속에서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가 될, "출산"을 보다 잘 맞이하기 위한 방법들을 써봤습니다. 동시에 이 글은 한국의 분만 병원들에 개선을 요청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물론, 이 저출산 시대에 출산 병원을 유지하고 있는 그 의지는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캥거루 케어입니다. 기본적인 처치를 어느 정도 끝낸 뒤에는 병원에서 제 가슴 위에 아기를 안겨줍니다. 정말로, 고작 손에서 팔꿈치 정도의 길이인, 아주 작은 생명체가 흰색 면  속싸게에 싸여서 제 가슴 위에 놓여 집니다. 이보다 비현실적인 경험은 없을 것입니다. 내 몸에서 나온 아기라는 점도 믿을 수 없는데, 내가 출산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는데, 그 생명체가 바로 제 가슴 위에 올려져 있다니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엄마 가슴 위에 있는 캥거루 케어. 출처 https://www.blossomandberry.com 캡처


더 신기한 건 이겁니다. 분만실이 떠나갈 듯 찢어지는 목소리로 울던 아가는, 신기하게도, 제 가슴 위에 올려지자마자 바로 울음을 그칩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마치 마법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쉽게 느낀 부분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첫 출산이고, 출산 직후 경황은 없는 게 당연하겠지만. 아기가 제 가슴에 머문 시간은 10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신기하고도 신비로운 경험이 겨우 10분이었다는 게, 지금 와서는 몹시 후회가 됩니다. 캥거루 케어는 산모뿐 아니라 남자도 가능합니다. 대개의 경우 아이 아빠도 같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함께 해도 더 좋았을 것이구요.

특히 막 태어난 아기는 극도의 공포와 긴장으로 목청 높여서 엄마를 찾는다고 합니다. 아기가 산도를 빠져나올 때에는 '카테콜라민'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이 호르몬은 아기의 신경세포에 작용해,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2시간 동안 아주 또렷한 의식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전문 서적(?)들은 바로 이때에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 아기는 안정감을 찾으며 두 시간 후 깊은 잠에 빠져든다고는 합니다만, 여기서 저는 이때 아기에게 젖먹이는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산모의 몸에서 젖이 바로 도는 건 아닐테니까요.

아이에게 엄마의 체온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게 해주는 게 중요한데, 이를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캥거루케어는 원래 임신 37주를  못채우고 태어나거나 출생 몸무게가 2.5kg 이하인  이른둥이들이 부모 품에서 일정 시간 보내게 한 데에서 유래했습니다. 면역 체계가 덜 발달한 아기들이 엄마 품에 있으면 체온도 무리 없이 상승해 신생아 체온 유지에 도움될뿐 아니라 아이의 규칙적인 심장박동과 호흡을 유도해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상 분만아여도 캥거루케어로 출산 후 모자 접촉을 늘려 교감하면 엄마와 아기의 맨살 접촉을 통해 교감하고 애착 관계를 증진시킨다는 것입니다.  또 엄마와 아이가 맨살을 맞대면 아기 발달을 능동적으로도 도울 수 있다고 합니다  

아기와 더 오래 머물 수 있다면, 아기를 위해서뿐 아니라 산모나 아이 아빠를 위해서도 훨씬 더 좋은 일일것입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모든 게 믿기지 않는 출산이라는 일이 벌어졌는데, 출산을 해냈음을 가리키는 , 손에 닿을 수 있는 "그 실체"를 신생아실로 떠나보내면 다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긴가민가' 모드가 됩니다.

이런 점에서 갓 태어난 아기와 더 오래 방에 머무를 수 있었다면, 그래서 가족만의 끈끈한 무언가를 더 느낄 수 있었다면 출산이라는 과정이 훨씬 더 성스럽고 의미 있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물론, 출산을 잘 해내서 아이와 만나게 된 사실 자체도 그렇습니다만, 욕심을 더 내자면 그렇습니다). 지나온 40주간 아이를 잘 품고 있었던 스스로를 칭찬하고, 40주간 잘 지내서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를 환대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을 곱씹는 거죠. 뱃속에서 초음파로 어렴풋하게나마 보았던 아기의 눈코입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기의 팔 다리는 어떤지 등등을 살펴보면서 느끼는 출산의 감동이요.  


© adroman, 출처 Unsplash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아기는 10분 뒤에 신생아실로 향했습니다. 워낙 정신 없고 경황 없는 상태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아기는 그때부터 다시 찢어져라 울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저는 2시간 정도 분만실에서 쉬다가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아주 나중에서야 아기를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캥거루케어를 비롯해 갓 태어난 아이와 더 오래 머무는 것은 "자연주의 출산"을 택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저도 자연주의 분만을 감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무통주사 안맞을 자신도 없고
(출산이 급속하게 진행되어 못맞았지만요),
진통이 10시간 넘을 경우 그 고통을 참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고 쌩으로 아이를 낳을 자신도 없었습니다.

분만 비용이 비싼 것도 비싼 것이지만, 여러모로 자연주의 출산을 위해 제 몸을 그 정도로 희생(?)할만한 자신은 없었습니다(자연주의 분만을 택한 엄마들의 희생은 respect하지만요)


저는 자연주의 분만에서 가능한 일이라면 일반 분만에서도 캥거루케어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돈"이 문제겠죠.

물론 분만 자체가 병원에 남는 장사는 아닐 것입니다. 보험 수가도 의사나 병원이 바라는만큼 높게 책정되지 않으니까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자연분만의 경우 32만 원, 제왕절개는 36만 원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맹장 수술 수가보다도 낮고, 강아지 출산 수가(50만 원)보다도 적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더욱이 효율성을 따지자면 출산 직후 2시간 동안 아이를 산모에게 두고 그 과정을 기다리는 것은, 병원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꺼려지는 일이 될 것입니다. 혹여 모를 안전사고 우려도 병원에선 제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분만 전, 사전에 의사에게 이야기 해서 요청을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저출산으로 출산 일정이 밀려있지 않는 한 어느 정도 유두리 있게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제도적으로 풀어져야 할 부분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비용 문제라면 지불 의사가 있는 산모의 경우 이런 옵션이 있다고 알려주고 돈을 받은 뒤 2시간을 아기와 같은 방에서 보내는 방법도 있겠죠.

저는 "아이를 온전하게 맞이할 산모의 권리"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는 갓 태어나 세상이 무서운 아기가 온전하게 엄마 품에 안길 수 있는 아기의 권리이기도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굳이 공장식 분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는 상식적인 차원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후기)
나중에서야 마주한  저희 아기는 하필이면 양 미간, 그러니까 눈썹과 눈썹 사이에 줄 두개가 그어져 있었습니다. 깊이 패인 두 줄. 울때 더 패이는 줄은, 지금도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엄마 손길을 안받고 너무 많이  울어서 그런게 아닐까, 라는 막연한 추측을 해봅니다. 다음 글에서는 나중에서야 마주한 이유들을 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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