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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e Apr 15. 2019

존재 자체로도 존귀한

임신 초반에는 이러저러한 불안감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더욱이 생애 첫 출산을 하는 초산맘이라면요.


임신했다는 사실 자체도 믿기지 않을 때죠. 내 몸에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니...란 생각을 하면서요. 동시에 내 뱃속에 있는 아기는 건강할까. 팔 다리 제대로 달려 나올까부터 시작해, 혹시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심지어 저는 마흔살 출산에 나선지라 생물학적으로는 노산맘에 속했습니다. 노산맘에게는 각종 검사를 권한다고 하던데...라는 말을 많이 들은터라 웬지모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다행히 저는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난 덕분인지 각종 검사를 최소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아검사를 했는데 만약에 혹시 모를 100000000000000000분의 1의 가능성으로 잘못되면 어쩌지라는 막연한 불안감은 가끔 가끔 튀어 나왔습니다. 

© kellysikkema, 출처 Unsplash


그런 고민을 하는 분께는 최근의 뉴욕타임스 칼럼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가진 생물학자가 썼습니다. 태아검사에서 다운증후군임이 밝혀졌을 경우 이를 어떻게 윤리적으로 받아들인지에 대한 글입니다. 


미국에선 태아때 검사로 다운증후군임이 밝혀지면 80% 정도는 낙태한다고 합니다. 이는 합법적이구요. 필자는 본인도 태아 검사를 통해 뱃속 아기가 다운증후군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낙태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애도"의 과정을 거쳤습니다(의역하면 슬퍼하다가가 낫겠습니다. 애도라 함은 사람이 죽었을 경우인데, 애도라고 번역하려면, 아이가 누리지 못할 소위 평범한 삶, 정확히는 중산층의 삶을 놓친 것에 대한 애도라고 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결국은 아이를 받아들이고 출산을 감행합니다. 그 결과 지금 7,8살 정도가 된 아이는 동물을 아주 사랑하는 아이로 자랐다고 합니다. 


글에는 아이는 사랑스럽고 그 자체로도 귀하다는 생각이 담겼습니다. 아이가 동물을 사랑해 수의사를 꿈꿀법도 하겠지만, 저자는 다운증후군인 자신의 아이가 수의사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한들 어떻습니까. 수의사가 아니라 동물과 같이 지낼 수 있는 직업을 가져서 아이 본인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래도 충분히 좋은 삶이니까요. 부모가 지레짐작으로 행복할거야라고 생각한다면 부모의 욕망이 투영될 수 있겠지만, 아이 본인이 내재적으로 스스로 행복한 것 말이죠. 


필자는 우리가 흔히 아이가 결혼하고 좋은 직업 갖고 그래서 먼 훗날 이 아이가 손자 손녀를 보기까지 중산층의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다운 증후군 아이를 포기하지만(낙태하지만), 아이는 그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글을 끝맺습니다.


뱃속 아기가 다운증후군이라면 출산을 '감행'하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일 것입니다. 다만 저는 이 기사를 읽고 무조건적인 사랑(unconditional love)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 이미 두 아들을 기르고 있는 출산선배인 동생과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동생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보통 부모가 아이한테 사랑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반대야.
아이가 부모한테 엄청난 사랑을 줘.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출산한지 반년 밖에 안됐지만 벌써 알 것 같습니다. 제 얼굴만 봐도 활짝활짝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를 보면 저는 충분히 "좋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드니까요. 

눕혀놓으면 가만히 천장을 보면서 무료하게 있다가도 제가 다가가면 싱긋 웃으면서 힘차게 발차기를 하고, 제가 다른 방으로 사라지면 한참동안 제가 간 쪽을 응시합니다. 분유를 먹일 때에나 이유식을 먹일 때에나 아이는 "내가 의지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아이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존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동시에 저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내오는 이 아이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이 스스로의 존귀한 가치를 지켜주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뉴욕타임스 칼럼의 저자는 캐나다에 삽니다(캐나다는 미국보다도 다운증후군 아기 낙태율이 더 낮다고 합니다). 캐나다도, 미국도 아닌, 스카이캐슬 한국 사회에서 사는 우리가 아이의 존귀함을 어떻게 지켜줄지는 또다른 숙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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