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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e Jun 07. 2019

논쟁적인 임산부 배려석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려석은 늘 논쟁적이죠. 임산부 배려석이 '남녀 격전지냐'라는 말도 나옵니다.

서울의 경우 서울지하철 1~8호선(서울교통공사 운영)을 기준으로 객실 1량마다 가운데 7석 중 양 끝 2석을 임산부 배려석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전체 임산부 대비 임산부 배려석이 많기는 할겁니다.이론으로 따지자면 임산부 배려석은 남아 돌아야 맞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 tuten, 출처 Unsplash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 건수가 2만7000여 건, 하루 평균 70여건 들어온다고 합니다.  실제로 임산부 배려석에 대해 임산부들은 생각보다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출산 경험이 있는 임산부를 대상으로 설문한 응답자 88.5%는 결과 배려석 이용에 불편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먼저, 임신했을 적 개인적인 경험부터 꺼낼까 합니다. 저 역시도 임산부석 양보를 안받은 적이 참 많았습니다. 퇴근길이면, 건장한 남자분들 혹은 아예 나이 많은(누가 봐도 가임기는 많이 지난 게 확실해 보이는) 여성분들이 앉을 때도 있습니다. 젊은 여자 분도 예외는 아니어서, 7~8cm 하이힐을 신고 임산부 좌석에 앉고 있는 경우도 더러 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에서 느꼈던, 가슴 찡했던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겨둘까 합니다. 이름하여, 지하철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시민들께 드리는,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연쇄 글!!
 



퇴근길은 언제나 만원이죠. 지하철을 타자마자 문 앞에 서 있는 학생(대학생 정도로 추정) 저한테 저쪽 자리로 손가락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빽빽해 첨에는 안보였는데 노약자석은 한 개 비어 있었습니다....덕분에 편히 앉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했었습니다




한산한 지하철인데, 그렇다고 자리가 있는 지하철도 아니었습니다. 회사를 안가는 쉬는 날 평일 오전 11시 정도쯤. 여튼, 임산부 좌석이 아닌 일반석에 서 있었습니다. 어떤 외국인 여자분이 지하철 다른 칸에서 다음 칸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루트는 직진.  


하지만 직진하던 그녀는 back을 하더니, 제 바로 앞에 있는 분에게 제 배를 가리키며 "She is pregnant"라고 굳이 설명했습니다. 앉아 있던 분이 일어서지 않을 도리가 없던 상황이었고 저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40대 초반 정도로 추정됐던 외국인 여자 분, 그래서 감사했었습니다. 




임산부 좌석에 임신한 게 명백하지 않아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길래 그 앞에 한 번 서봤습니다. 저도 피곤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남자 분은 계속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남자분 옆자리 그러니까 제 앞에 앉아 있었던 분 역시도 계속 자리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제 옆자리 좌석이 나자 바로 앞에 있던 여자 분은 앉지 않고 서 있습니다. 그 틈을 타서 다른 사람이 앉으려던 찰나, 좌석 앞자리 여자 분은 저에게 앉으라고 길을 터줍니다. 덕분에 저는 자리를 앉았고 곧바로 여자 분의 무거워보이는 가방을 들어드렸죠. 갈 길도 멀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한테 양보까지 해주셔서, 그래서 감사했었습니다.




역시 외국인 이야기입니다. 지하철에 탔는데 일반석 앞에 서 있었습니다. 제 바로 앞은 아니고 옆쪽으로 외국인 여자분과 그녀의 아들, 딸(3,4세 정도)이 나란히 앉아 있었죠.


외국인 여자분은 제가 서 있던 지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3좌석 정도 옆) 불구하고, 굳이 일어나서 저에게 자리를 내어줬습니다. 엄마 입장에선 아이랑 옆에 나란히 앉는 게 좋고, 굳이 저에게 양보하지 않아도 됐던 상황이었는데도요. 그래서 감사했었습니다.



이름 모를 시민들에게 이렇게 감사함을 꺼내 드는 이유는 좌석을 양보 받았던 입장에서, 배려 받았던 입장에서 다수의 선한 시민들에게 진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시민들은 "굳이" 양보하지 않고 자신이 앉아서 가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저에게 좌석을 기꺼이 내줬습니다. 저는 이 "굳이"라는게 성숙된 사회의 의식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임산부였지만 길거리에서 임산부 명찰을 달고 지하철이나 버스에 힘겹게 오르는 여성 분을 보면, 괜히 맘이 짠해져 왔습니다. 저는 따로 임산부 명찰을 달고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웬지 양보를 강요하는 것 같아서, 그게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찰을 "굳이" 달고 다닌다는 것은, 당연히도! 임산부 배려석 등등 때문에 차고 다닐 확률이 높습니다. 저는 임신으로 몸에 부담이 아주 많이 간 상태는 아니었지만 동료 임산부들 얘기를 들어보면 발이 퉁퉁 부었다, 허리 아파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다 등등 고달픈 몸으로 고생을 하니까요.

저는 임산부 배려석이 괜한 남녀 논쟁으로 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여동생(누나, 언니 등)일 수 있는 임산부들이 감수할 신체적인 부담을 알아주고, 본인이 희생해주는 것이니까요.


앞선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저는 임산부 좌석이야 말로 우리가 약자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를 보여주는 리트머스지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힘든 사람도 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임산부 역시도 신체적 약자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실 임산부 배려석을 위해 지자체도 고육책을 짜내고 있습니다.

현재 부산시는 임산부에게 비콘(근거리 무선 통신장치)이 설치된 펜던트를 나눠주고 있답니다.이 펜던트가 좌석 근처로 가면 자동으로 불이 켜지구요. 불을 통해 '주변에 임산부가 있구나.'를 인지하게 되고, 그 때 양보를 유도하게 되는 것이지요. 좌석 활용도는 높아지며, 임산부들도 편해지니까요.




임산부가 앞에 서면 버튼이 깜빡깜빡 거리는 부산 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 출처 부산지하철공사


대전은 "넛지"를 이용했습니다. 임산부 배려석에 곰인형을 앉혀 두는 거죠. 임산부라면 곰인형을 치우고 앉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곰인형을 치우고 앉기란 스스로에게 민망해지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을 포함해 다른 도시의 지하철도 이런 방법을 택하고 있진 않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임산부를 위한 가장 좋은 건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는 것입니다. 그래야 임산부도 부담없이, 그리고 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앉을 수 있으니까요. 임산부 배려석 논쟁도, 이게 임산부 자리다 아니다라는 전투적인 논쟁보다는, 약자를 위해 양보해주고 배려해주고, 임산부 또한 양보 받고 배려 받는 소프트터치로 화두를 끌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한가지 첨언을 한다면, 임산부 배려석에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라는 안내문은 웬지 불편합니다. 뉘앙스의 차이지만 여성의 몸은 아이를 출산하는 몸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출산하기 위한 몸은 아니니까요. 임산부 좌석은 임산부 스스로를 위한 자리가 맞습니다. 임산부 배려석은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나온 걸로 보기보다는 임산부의 건강권 차원에서 봐줬으면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엄마, 여성주의자, MBA, 신문기자
출근 전 스벅에서 일기를 씁니다
유별나지 않게, 유난하지 않게
아이를 기르고 싶습니다


일하는 엄마도 행복한 육아를!

일하는 엄마의 임신 출산 육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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