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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Oct 30. 2021

불타는 소녀들(C.J.튜더)을 읽고..


소설을 읽다보면 한번씩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인데.. 소설의 흐름과 하등의 관계도 없는데 왜 이렇게도 구구절절하게 표현을 하는 것일까? 특히 인물들의 심경을 표현할 때면 이런 감정은 극에 달한다.


"그래, 알겠어. 충분히 너의 심정을 알았으니 이제 그만해 주겠니?"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인물들의 직접적인 심경묘사가 풍부한 소설들을 그닥 반기지 않는다. 자고로 소설이란, 서사로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과거에 어떤 고난을 겪었고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속으로 표현하고 내뱉는 말들은 그닥 중요치가 않다. 직접 그들이 경험하는 이야기를 들려 주어야 한다. 그들이 실감하는 내적 고뇌는 관념에 가득찬 내면묘사가 아니라 서사적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읽은 소설 '불타는 소녀들'은 너무나 만족스러운 소설이다. 더 할 나위 없이 담백한 문체와 끊이지 않는 서사적 스토리텔링, 시점을 넘나들며 흥미를 자극하는 교차서술방식은 장르문학이 갖추어야 할 모범을 한 곳에 결집시킨 듯 하다. 추리소설과 공포소설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가히, 올해 읽은 소설등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 아닐런지..


과거의 사건들을 역추적해 나가는 방식이 전형적이긴 하지만.. 이만한 스토리텔링을 구현할 수 있는 작품을 언제 또 만나 볼 수 있을까?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라는 진부한 표현이 이 소설만큼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급박한 사건전개와 함께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의 순간들이 과연 이후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여자 스티븐 킹이라 불리는 작가의 위상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구나.


여성 신부인 '잭 브룩스' 는 갑작스런 '플레처' 신부의 죽음으로 그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서식스의 작은 마을 '채플 크로프트' 로 향한다. 그녀가 생활해야 할 마을 예배당과 사택은 왠지 으스스하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마을사람들 역시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고 있다. '잭'과 그녀의 딸 '플로'는 하나둘 마을 사람들을 마주하며 마을에서의 일상을 시작하기로 한다. 역시나 마을에는 충격적인 과거가 존재했는데 그 옛날 신교도들이 이 마을에서 화형에 쳐해 졌다는 사실이다. 순교자들의 후손이란 역사적 사실은 누군가에겐 마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은폐와 조작.. 역사란 잔인한 사람들이 남겨놓은 유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30여년전 실종된 두 명의 10대 소녀가 있다. '메리 레인'과 '조이 해리스'.. 알 수 없는 그들의 유지는 마을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한 껏 돋구는데.. 잭은 직감적으로 두 소녀의 실종이 전임신부들의 죽음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교회 곳곳에서 그들의 환영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다. '플로' 역시 마찬가지다. 마을의 끔찍한 역사와 함께 '불타는 소녀' 들의 환영과 마주하는 '잭'과 '플로'.. 이 마을의 추악한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교차서술과 서술트릭의 우수성을 또 한번 실감한다. 시점을 넘나드는 서술방식은 상황상황마다 내가 직접 그들과 함께 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높은 현장감을 선사한다. 최적화된 서술방식 덕분에 곳곳에 숨어서 독자들을 깜짝 놀래키는 '서술트릭' 역시 온전히 빛을 발한다.

소설의 문체 역시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술술 읽히는 뛰어난 가독성은 장르문학이 갖추어야 할 최대의 덕목이다. 사건 전개의 서사가 뛰어난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작가가 간결하게 서술한 문체적 특성 역시 소설에 빠져들게 하는 최대 매력일 테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소설 '불타는 소녀들' 은 등장인물들의 감정묘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이 느꼈을 참담한 심경을 십분 경험할 수 있었다. 직접적인 감정묘사도 빠질 수는 없겠지만 그보다 이야기전개에서 직접 경험하는 현장감이 나를 그들과 똑같이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입식으로 "나의 감정은 이런 거야. 행복해, 슬퍼, 기뻐, 우울해." 라고 직시하는 것보다 독자들이 스스로 그 감정을 느끼게 함이 중요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소설 '불타는 소녀들' 에 흠뻑 빠지게 된 최고의 매력일 것이다.  소설을 읽는 몇 시간동안 나는 신부 '잭' 이 되었으며, 15살 소녀 '플로' 가 되었고.. 그리고 절실한 감정에 지배당하는 '제이컵' 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끝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상당시간을 할애한 '악인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다양한 매체와 여러 작품들을 통해 늘상 보고 듣고 느끼는 점이지만..


"누구나 악한 행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냥 악하게만 태어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작가의 의견에 다시 한번 공감하게 된다. 이유없는 살인행각을 펼치는 사이코패스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함일까? 아니.. 어떤 유전자가 환경과 결합하면 괴물이 될런지도 모르지. 그러나 속단해서는 안 된다. 결국 인간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을 포용해야 할 책임도 인간에게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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