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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Nov 10. 2021

완전한 행복(정유정)을 읽고..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한국이라는 이 좁은 나라안에서도 전혀 상상치 못한 다른 세상속에 살고 있는 그들을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왜 그들은.. 누군가에게 한없이 종속적일 수 밖에 없는가? 왜 그렇게 길들여진 것일까? 길들여지고 조종되고 황폐화되는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나약한 것이구나.


소설 '완전한 행복'을 읽으면서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숱하게 보아 왔던 그들의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작가도 이를 의식하였는지.. "누군가의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지면을 빌려 밝혀 둔다." 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책을 읽은 이라면 필연적으로 그 누군가가 떠오르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고유정' 사건과 참으로 흡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의붓아들의 살해과정은 소설속에 똑같이 재현되었기에.. 그저 허구라고만 일갈하기엔 무책임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작가 정유정의 힘을 보았다. 이토록 사건에 몰입하여 그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은 보기가 힘들 것이다. 생생한 상황묘사와 더할 나위 없는 감정묘사는 한 순간도 책장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장르가 범죄소설이긴 하지만 범인을 알아맞추거나, 결말이 시시각각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추리적 요소가 전무하기에 혹자는 아쉬움을 느낄런지도 모른다. 한없이 악하기만 한 악인과.. 관계하는 인물들의 감정묘사에만 소설의 전부를 할애할 뿐 사건의 방향성은 불보듯 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이만큼이나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쯤은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지 않을까? 그게 바로 작가의 힘이겠지.


이제는 폐가가 되어 버린 할머니집, 그 곳에서 지유는 엄마와 아빠와 오랜만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엄마(유나)는 참으로 냉정하고 무서운 존재이다. 엄마의 눈밖에 나서는 안 된다. 지유에게 엄마는 하느님이자 구원자인 셈이다. 아빠가 떠났다. 지유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그 사실을 입밖에 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엄마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또 그녀가 무슨 일로 화를 낼 지 알 수가 없다. 은호는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만 할까 걱정스럽다. 점점 그녀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은호는 그녀와 함께 할 의지를 잃어버린다. 아들의 죽음 이후 이혼을 결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하는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난 이렇게.. 그녀에게 길들여져 버렸구나.

재인에게 동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유나와는 그저 피를 나눈 자매일 뿐 단 한번도 애정을 갖고 대한 적이 없다. 나에 대해 참담한 이야기를 쏟아내며 나의 남자까지 가로채버린 그녀. 몇년동안 그녀를 만나지 않으려 노력했건만.. 상황은 점점 재인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다시금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며 살았던 탓이 아닐까?


교차되는 그들의 시선이 마치 실재하는 내 것처럼 느껴져 가슴이 아프다. 생생한 상황묘사와 감정묘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뒷이야기가 뻔히 그려질 것만 같은 이야기지만 그들 시점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상황에 빠져 버리고 만다.

어린 나이의 지유에게 엄마는 자신의 전부를 좌지우지할 유일한 존재이다.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어릴 때에는 엄마의 말이 진리였던 시기가 분명 존재했다.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나서야 반항이라는 것을 하게 되지만 그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작은 세상에 매몰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의 역량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어린 시절, 자아형성에 최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이가 부모라는 이름의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비단 딸 지유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은호는 그의 아내, 유나에게 철저히 길들여져 간다.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리고 두번째 결혼만큼은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때문에 은호는 그녀에게 복종하며 살아간다. 아버지의 기대에 반하지 않으려고 유나의 냉혹한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재인 역시 마찬가지다. '가스라이팅'이라고 했던가.. 인간이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길들여짐. 참으로 무서운 인간의 마음이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나니 정작 유나 본인의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 또 놀라웠다. 

오로지 자기중심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 그녀는 왜 악녀가 되어야만 했는지.. 흔히 악인의 내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타의 소설들과는 차별점을 이룬다. 면죄부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을까? 그 때문인지 몰라도 유나라는 인물에 대한 공포심이 더욱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힘든 가정형편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야만 했던 2년이란 세월이 그토록 폐부를 찔렀던 것일까? 선천적인 악인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부모에게 버려진 그 2년이란 세월이 그녀의 인생을 결정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순간,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유나와 재인의 자리가 바뀌었다면.. 그녀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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