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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Nov 26. 2021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매트 헤이그)를 읽고..

시간 여행을 다루는 소설들은 자칫 전형적이고 진부한 스토리로 빠져 버리기 쉽다. 현재의 삶을 후회하고 절망하는 '나'에게 과거를 엿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있다. '나'는 과거 선택의 순간들로 돌아가 현재와는 전혀 다른 삶을 하나하나 경험한 후.. '삶이란 참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구나.' 라며 새삼 깨닫게 되는 전형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흔해 빠지고 고루한 상기의 스토리는 수십년이 지나도록 참 많은 사람들의 인생서로 자리잡으며 지금까지도 즐겨 찾는 주요 소재이다. 나 역시 시간여행을 다루는 소설들을 참 좋아한다. 지금은 보일 것만 같은데.. 그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던 과거의 나에게로 돌아간다면 후회가득한 선택을 결코 하지 않으리라. 현실세계에서도 몇 번이나 곱씹어 보는 이야깃거리다.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제약들이 산재한 소설속 세계에 있어서 시간여행이란 사건전개를 참 풍부하고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오늘 읽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역시 시간여행의 전형적인 스토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현재의 삶을 비관해 삶을 마감하고자 하는 주인공이 하나하나 현재와 다른 삶을 경험해 본 후, 죽지 않고 삶을 충실히 살아가게 된다는 흔해 빠진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몇 주간 국내외 서점가 베스트셀러를 독차지 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삶이 성공한 삶이건 아니건, 무엇이 되었던 간에 내가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이룩해 낸 것이 아니라면 전적으로 나의 인생이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자정의 도서관이 안내하는 삶이 성공적인 인생이라 하더라도 내 몸에 맞지 않는 후회의 감정은 매순간 찾아 온다. "인생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야. 그냥.. 사는 거야." 종국에 이르러 깨닫게 되는 주인공의 감정이 그렇게 가슴속에 와 닿을 수가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과 멀어지고 직장마저 잃었으며 키우던 고양이까지 떠나 보내는 '노라 시드'는 자신의 삶에 회한만 가득하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과거 선택의 순간들을 되돌아 본다. 만약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은 삶을 마감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믿으니까. 감은 눈을 뜬 그녀의 앞에 12시 정각의 도서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어린 시절 기억속에 남아 있는 도서관 사서 '엘름 부인'이 자신을 맞이한다. '엘름 부인'은 죽음을 각오한 그녀에게, 다른 세계에서 그녀가 살았을 또 다른 삶들로 안내한다. 만약 다른 선택지를 받아들었다면 누렸을 또 다른 나의 인생!! '노라 시드'는 그렇게 본인의 다른 인생들을 하나둘 경험하게 되는데.. 


나에게는 참 많은 삶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소설의 세계관이 마음에 들었다. 혹자는 그런 얘기들을 한다. 만약 내가 저 부호들처럼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났다면 훨씬 큰 사람으로 성공한 삶을 살았을 거야. 혹은, 천재적인 두뇌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는 발명가,과학자,사업가들이 만약 가난한 빈민국에서 아무런 지원과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살았더라면 세상을 바꾼 그 '아이디어' 들은 꽃을 피우지 못했을 거라고.. 

거기에 덧붙여 나는 한가지 생각을 더하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자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 자체에게도 무수히도 많은 다양한 삶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모르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는 내가 그나라의 대통령일지도 모른다. 이름난 스포츠선수이기도 하고, 빌보드차트를 휩쓰는 가수일 수도 있고. 혹은 사업에 실패해 전전긍긍 살기도 하며, 가난에 허덕이다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였고, 그 선택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노라 시드'는 참 많은 인생을 경험한다.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올림픽 1등을 하기도 하고. 밴드 가수로 성공해 전세계 투어를 다니기도 한다. 어린 시절 막연히 꿈꿔 봤던 북극 연구원의 삶을 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거나 헤어지는 삶을 살기도 한다. 참 다양한 모습으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삶에서는 그들과 더할 나위 없는 유대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삶에서는 더 없이 악화된 철천지 원수가 되기도 한다. 사람의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사소한 것이라 생각하고 지나쳤던 자그마한 선택하나가 시간이 지난 후에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지금 내 모습이 하찮다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난 할 수 없어.' 라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어딘가에서 자신감에 가득차 살고 있을 또 다른 '나' 라는 존재는 무기력한 현재의 '나'를 보며 가슴을 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연유로 소설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는데 매번 새로운 삶을 경험할 때마다 마주했던 '노라 시드'의 이해불가한 감정때문이었다. 성공과 실패가 반복된 많은 삶을 경험해 보았음에도.. 그녀는 그 어느 삶에서도 쉽게 만족을 하지 못한다. 나의 직업에 성공을 맛보았다면 인간관계는 삐그덕 거릴 수도 있는 것이다. 반대로 인간관계가 예전 삶보다 안정적이라면 호주머니 사정이 전보다 못할 수도 있는 법이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줄 수는 없다. 더러는 작은 것들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노라 시드'는 포기를 몰랐다. 과연 죽음을 결심할만큼 쓸쓸함을 느꼈던 그녀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거듭된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볼 때마다 만족하지 못하고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라 시드' 가 급기야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그녀 역시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줄 삶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삶이라 선택한 인생은 성공한 직업을 갖고, 든든한 남편, 사랑스러운 딸아이와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결국 이것인가. 클리셰의 정점을 찍는 것 같아 허탈하기도 했으나 모든 이들의 궁극의 목표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자정의 도서관은 그마저도 허락해 주지 않는다. 그 삶이 노라 본인의 삶이긴 하지만 자신이 지난 십수년간을 직접 경험하고 이룩해 낸 날 것 그대로의 본인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자정의 도서관은 '노라 시드' 본인이 스스로 그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한 시험대였던 셈이다.

  

노라의 인생은 전혀 바뀐 것이 없다. 그녀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어져 있고, 여전히 실직 상태이며, 여전히 사랑스런 고양이를 떠나 보내야만 한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전과 크게 달라졌다. 그저 꾸역꾸역 살아가고자 마음 먹은 것이 아니라.. 만족스러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경험하고 직접 일궈내며 살아갈 것이다.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일자리를 되찾으며,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것도 현재의 삶을 살아갈 '노라 시드' 본인의 몫이다.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냥 열심히 살다 보면 나중에, 한참 나중에 가서는 '나쁘지 않은.. 삶이었구나.' 저절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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