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인도소설을 읽었습니다.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인도 소시민의 일상을 가벼운 마음으로 엿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만.. 소설 마지막장을 덮고난 후 이렇게 마음이 무거워 질 줄은 미쳐 알지 못했네요.
마지막 열차노선인 보라선 슬럼가에 살고 있는 어린 친구들이 차례차례 실종됩니다. 친구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9살 소년 '자이'는 동급생 친구 '파리','파이즈'와 함께 마치 자신이 셜록홈즈가 된 것 마냥 수사에 착수합니다. 그들의 여정에서 호그와트로 모험을 떠나는 '해리포터,론,헤르미온느' 가 연상되기도 하고, 만화 명탐정 코난속 '어린이 탐정단'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소설의 전개자체가 상당히 가볍고 유쾌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1인칭 화자인 '자이' 의 눈에서 바라본 세상은.. 꾸밈이 없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자이'는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어 주지 않는다며 누나 '루누'에게 불만이 가득합니다. 누나와 다투기도 하고, 학교에서 쫓겨나 땡땡이를 치기도 하고 엄마,아빠 몰래 유령시장을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출때마다 자신이 직접 범인을 찾겠노라 탐정놀이를 시작하는 자이의 모습은 참 순수하고 귀여워서 몇번이나 웃음을 지었는지 모릅니다. 특히, 인도 하층민의 일상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참 만족스럽습니다. 그들의 일상이 담긴 애니메이션 한편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습니다. 곧이 곧대로 믿어도 좋습니다. 아직까지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어린 소년들이기에..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편견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 인도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경험이 소설속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습니다. 제 3자의 눈으론 가볍게 지나쳐 버리고 말겠지만.. 실제로 경험한 이의 처절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테죠. 어린 소년의 시각에서 꾸밈없이 묘사되는 장면들이 눈에 하나둘 밟히기 시작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때로는 살며시 웃음 짓기도 하고 때로는 실소를 머금기도 하는 등.. 유쾌하게 책장을 넘겼지만.. 100여페이지를 남기고 마주하게 될 진중한 분위기는 급격하게 분위기를 반전시킵니다. 소설의 이미지가 극명하게 갈리는 순간이라 쉬이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누나 '루누'가 실종된 후 자이가 느낄 쓸쓸한 감정이 이보다 더 아련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밉기만 한 누나였는데.. 왜 그럴까요? 자이는 누나의 부재에 대해 단 한번도 슬픈 감정을 내비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슬픔은 감정을 말로 내뱉는 것보다 쓸쓸히 받아들여야 할 때.. 더 깊어지나 봅니다.
"지금이 아침인 것도 같고 밤인 것도 같고, 어제인 것도 같고 내일인것도 같고 지난주인 것도 같고 다음 주인 것도 같다." 직접적인 자신의 감정은 드러내지 않지만.. 충분히 느낄 수가 있는 대목입니다. 순간 누군가를 떠나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괜히 센치해지네요.
작가가 소설을 집필한 가장 직접적인 의도는.. 인도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빈부격차와 인권문제를 고발하기 위함입니다. 마치 희화화된 풍자소설을 연상케 합니다. 언젠가는 실종된 아이들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거라 믿었던 독자들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 버립니다. 그제서야.. 소설은 절정을 맞이합니다. 게다가 정작 범인은 누구인지 화를 풀어야 할 대상은 명확히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인도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어린 친구들이 실종되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괜히 애꿎은 사람들이 범인으로 지목이 되어 곤욕을 치룬다고 하네요. 피해자 대다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아웃사이더로 인식되는 사람들, 혹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인도의 인권문제를 고발하고 싶었던 작가 '디파 아나파라'의 꿈은.. 정작 그녀가 인도를 벗어난 후에야 이룰 수 있게 되었군요.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던 나의 마음이 책장을 덮을 때엔 굳은 심경으로 바뀌어 버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더 큰 목소리가 앞으로도 쭉 이어지길 바래 봅니다.
'누나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아직 남아 있지만, 누나가 옆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긴 세월, 누나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살아가야 할 '자이'의 쓸쓸함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