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술 취한 사람들의 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려오고, 서로 욕하며 싸우는 소리, 귀를 찢는 자동차 경적 소리, 오토바이 소리, 사이렌 소리, 가난에 쫓기는.. 속도와 급정거가 교차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온갖 불길한 상상이 난무하는 바로 이 곳, 초라한 여성전용 원룸이다. 이 곳에서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은 지긋지긋하기만 하다. 처절하고 음울한 현재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휩싸여 있다. 한 때 이런 스타일의 대학가 원룸건물에 살며 느꼈던 개인적인 쓸쓸함이 떠올랐다. 매일매일 벗어나고자 꿈을 꾸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쳇바퀴 도는 일상에 좌절하고야 마는 그들의 일상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어느 날, 303호의 연인이었던 '그'가 3층 복도 계단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용의자는 3층 원룸에 살고 있는 여섯명의 그들이다. 과연 누구의 소행일까?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의 죽음.. 과연 이 건물은 누구의 말마따나 귀신이 씌여진 것일까?
301호에 사는 그녀는 무속인이다. 소위 무당이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아랑곳하지는 않는 그녀이지만, 오늘도 마주하는 귀신의 모습에 그녀는 덤덤할 수 있을까?
302호에 사는 그녀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이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없다. 오빠가족은 늘 돈이 궁색할때만 자신을 찾는다. 함께 고민을 터 놓고 얘기하고픈 누군가의 존재가 가끔은 그리워진다.
사회복지사인 303호의 그녀는 직업의식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돌봐야 하는 그녀이지만 그저 직업상 만나야 할 하나의 개체에 불과할 뿐이며, 그들의 안위보다 자신의 그것이 더 중요하다 믿는 사람이다. 피해자의 연인이었기에 첫번째 용의선상에 오를 수 밖에 없는 그녀, 과연 그녀도 선의의 피해자일까?
304호의 그녀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지적장애 3급의 장애인이다. 범죄소설에서 지체장애인은 언제나 범죄자들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순수하기만 한 그녀 역시 범죄에 이용되고야 만 것일까?
305호의 그녀는 노점 액세서리 판매상이다. 온몸이 타투로 휘감긴 그녀의 첫인상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불러 일으킨다. 인간 내면의 본성을 떠나 밖으로 보이는 외면의 모습이 중요한 세상이기에.. 그녀에 대한 시선은 곱지가 않다.
건물의 청소관리자인 306호의 그녀는 안하무인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의 험담을 일삼는 데에 여념이 없다. 첫번째 살인사건(?)의 최초 목격자인 그녀는 과연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걸까?
공모전이나 평단의 평가 없이, 오로지 입소문 하나만으로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소설 '네 번의 노크'는 급기야 종이책 출간에 이어 영화판권계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시점을 넘나들며 서술되는 소설 특유의 전개방식이 영상으로 구현될 때 더 할 나위 없는 긴장감을 부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말 그대로 참, 독특한 전개방식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각 호실의 그녀들이 전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사건의 인상은 독자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그도 그럴 것이, 독자들이란 작가가 극중 인물의 입을 빌려 서술하는 정보에 종속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사실을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과연 그들이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거짓을 고하는 것인지 판단하고 검증해야 할 몫은 오로지 독자 스스로의 역량에 달려 있다.
아쉽게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소설의 결말부가 가히 유쾌하지만은 않다. 충분히 유추해 볼 수는 있으나,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않는 서술방식도 그러하다. 놀랍기는 하나 개운하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앞서, 각각의 인물들이 전하는 개인적인 감상의 크기를 줄이는 대신 사건을 행할 때의 심경이나, 심리묘사에 일정 부분 할애를 했어야만 한다. 분명 그들의 범죄행각은 쉬이 덮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경찰의 1차 참고인 진술당시 이러쿵 저러쿵 그렇게나 휘앙찬란했던 그들의 심경은 어째 사건을 행할 당시에는 종적을 감춰 버렸던 것일까? 그저 이러이러했다라고 일갈해 버리는 결말부의 아쉬움이 302호의 처절함도, 304호의 안타까움도, 305호의 눈물도.. 전혀 내것이 아닌 남의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구성의 위대함과 사건해석의 아쉬움이 공존하는 소설이다. 그러나.. 짧은 페이지안에서.. 스토리텔링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만족스럽다. 서사를 중시하는 개인적인 호불호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소설을 읽고 느끼는 감상의 크기는 역시나 같지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