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루리 Jan 10. 2022

단절 - 링 마

코로나가 몇년째 장기화 되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각종 변이 바이러스가 더 창궐한다면.. 우리가 예전에 당연시하며 살아왔던 평범한 일상이 깡그리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국가를 비롯한 여러 연구단체에서 사활을 걸고 치유할 것이기에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어디에선가는 늘상 최악의 수를 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불과 2년여전만 해도 세상 모든 이들이 똑같이 마스크를 써야만 거리를 활보하게 될 거라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팬데믹현상은 자연스레 문학작품의 소재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매년 시행되는 각종 공모전에선 최근 대다수의 투고작품들이 코로나와 함께 하는 소시민의 일상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기성작가들도 코로나로 인해 파생되는 각종 뒷얘기들을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링 마'라는 중국계 미국작가의 소설 '단절'을 읽었습니다. 그녀의 데뷔작품이라고 하는군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작가의 실제 경험이 소설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소설 '단절'은 어린 시절 '푸저우'에서 '뉴욕'으로 삶의 거처를 옮긴 '캔디스 첸'의 시점에서 서술한.. 미주 이민자의 고뇌를 그린 심리소설이자, 창궐하는 팬데믹의 위기앞에 좌절하고 극복하려 고군분투하는 성장소설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이 2018년에 씌여진 소설이라는 점입니다. 코로나가 아직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고 생활을 하며, 매일매일 확진자수를 체크하고, 건물곳곳에 방역을 실시하고, 재택근무를 하는 등.. 지금의 일상과 너무나도 흡사한 풍경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전 세계 국민 대다수가 '열병'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스스로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작가는 어떻게 2,3년후의 세상을 점지한 것일까요? 실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상을 마치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레 서술한 작가의 기획력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와 더불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바이러스가 정말 소설속의 그것처럼 더 큰 재앙을 불러 일으키게 될까 봐 말입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부모님과 떨어져 한동안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야만 했던 '캔디스 첸'은 여섯살이 되어서야 미국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자상하지만.. 늘상 밖에서 일만 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딸의 일거수일투족에 그저 냉담하기만 어머니의 영향은 아이의 성장에 결코 무시하지 못할 요소입니다. 성인이 된 캔디스는 어떻게든 뉴욕에서 정착하여 살아가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자신의 일이 이제는 자신의 모든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녀는 이 곳에서 살아남아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떠나버려도 그녀는 이 곳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민자의 지위에서.. 부모마저 하늘로 가 버린 지금, 자신의 고향은 바로 이 곳 뉴욕이기 때문입니다. 그 즈음, 전세계적으로 '선 열병'이라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합니다. 회사 동료들마저 직장과 삶의 터전을 포기하고 하나둘 뉴욕을 떠나가지만.. 캔디스는 끝까지 홀로 남아 그 곳을 지킵니다. 그런 그녀를 움직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요즘은, 교차서술이 대세인가 봅니다. 캔디스의 시점을 중심으로 시간을 넘나들며 교차되는 서술방식이 소설의 성격과 잘 어울립니다.


미드 '워킹데드'에서 좀비로 변한 그들에게 함락되어 버린 세상을 등지며 좌절하고 투쟁하고 갈등을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소설 '단절'에서도 똑같이 연상됩니다. 물론, 전작의 그것처럼 극도로 잔인하고 냉혹하기만 한 세계는 아니지만.. 나약한 인간이 느낄 극한의 심리는 별반 다르지가 않을 것입니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이겨내려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을 이민자라는 소수의 지위에서 경험하는 남다른 시선에 공감합니다. 비단 중국이민자뿐만이 아닐 테죠. 지금은 그 정도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80년대 이후, 온갖 차별을 감내하고 미국본토에 뿌리내리고 정착하려 했던 아버지,어머니세대의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무리안에서 통치자의 규율에 따라 어떻게든 굴복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요? 홀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수없이 많은 또 다른 그녀들이 어떤 좌절과 번민을 마주하고 극복하게 될런지 궁금해 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 번의 노크 - 케이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