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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Sep 18. 2022

밤밤언덕(20)

30

정말 그랬다. 장 형사님의 말처럼 우리 집 앞에는 몇 날 며칠이고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겠다고 진을 치고 있었다. ‘10년 전 자신을 기소한 검사의 딸을 살해하다.’, ‘또다시 범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살인마’ 하루가 멀다 하고 검증되지 않은 자극적인 기사가 난무했다. 그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대중들은 더더욱 분노했고 그 화살은 자연스레 우리 가족에게로 향했다. 매일매일이 지옥 같은 하루였다. 장 형사님은 우리 가족에게 대중의 관심이 누그러들 때까지 잠시 피해 있을 공간을 마련해 주겠다고 호의를 베풀었지만 우리 가족, 특히 할머니의 고집이 완강하셨다. 할머니는 끝까지 아버지가 그럴 분이 아니라고 항변하셨다. 십 년 전의 그때처럼 경찰의 강압수사가 아버지를 억울한 범죄자로 내몰았다고 말이다.


나는 소희의 죽음과 아버지의 자백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았다. 불행이 반복되다 보니 과연 이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애석하게도 나에겐 나의 마음을 추스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또다시 아버지를 보내야 하는 현실에 충격을 받은 할머니와 엄마에게 나까지 힘든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감정 정리를 어떻게든 잠시 미뤄둬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동안에도 아버지 회사 동료들만큼은 발 벗고 나서 우리 가족을 감싸 주었다. 특히 생산팀 직장이라 불리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가장 적극적으로 아버지의 범행을 부인하시며 큰 소리를 내셨다. 이름이 고병욱이라고 했던가.


“어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박명훈 씨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거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명훈 씨가 무죄로 풀려날 수 있도록 우리가 있는 힘껏 돕겠습니다.”


병욱 아저씨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는 다정하게 웃으셨다.


“네가 상우구나. 나는 박지훈이라고 해.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나같이 하찮은 놈도 딴 건 몰라도 그건 잘 알아. 너희 아버지는 절대 살인 같은 걸 하실 분이 아니라는걸.”


병욱 아저씨뿐 아니라 태석 아저씨, 그리고 아버지에게 큰 빚을 졌다며 내 어깨를 두드리던 지훈이 형도 우리 가족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이 봐, 당신들. 여기서 대체 뭣들 하는 거야?”


병욱 아저씨는 내가 보는 앞에서 집 앞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쳤다. 할머니께 다정하게 웃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사실, 며칠이 지나고 나니 집 앞에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 제대로 된 기자라곤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대중의 관심을 바라고 가십에 열을 올리는 일부 개인 방송사들이 범죄자 가족의 일상을 찍겠노라 남아 있을 뿐이었다.


“너희들, 어떤 사람들인지 내가 다 알아. 생산적인 일이라곤 전혀 할 생각도 없이 그저 남의 치부만 들춰내려는 기생충 같은 놈들”


“뭐야?”


개중 몇 명이 화를 내었지만 병욱 아저씨는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험상궂은 얼굴로 한 발짝 성큼 눈앞에 다가서면 누구라도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사건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지만 어느새 집 앞을 둘러싼 그들의 모습은 금세 자취를 감춰 버렸다.     


대중의 관심도가 높은 사건이라 그런지 아버지가 기소되고 재판이 열리기까지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엄마는 변호인을 선임하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다녔지만 누구 하나 흔쾌히 변호를 맡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이미 10년이란 긴 세월을 복역한 범죄자가 또다시 살인사건에 연루된 케이스인데다 당신 스스로 범인이라 자수를 하지 않았던가. 재판에서 아버지에게 유리한 정황은 피해자의 시신을 어디에 묻었는지 먼저 자백을 했다는 점, 단지 그 하나뿐이었다.


1심 재판이 있던 날, 나는 힘겨운 발걸음으로 법정으로 향했다. 나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대체 왜? 대체 아버지가 왜 소희를 살해한단 말인가? 계획범죄라니.. 매스컴에서 말하는 살해 동기는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10년 전 사건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였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야. 그 기간 동안 더 소중한 걸 깨달았거든. 바깥세상에서 뒤처진 것은 남들이 한 발짝 걸을 때 나는 두, 세 발짝 더 걸으면 되니까.”


아버지가 출소하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를 쳐다보며 웃음 짓던 아버지의 표정이 절대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만약, 내 생각이 맞는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소희가 묻혀 있는 장소를 알고 계신 걸까?


법정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먼 발치서 소희 부모님이 차에 내려 계단 위를 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희 아버지를 둘러싼 기자들의 관심은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기자들에 둘러싸인 채 법정 안으로 다가오는 소희 아버지를 무심코 쳐다보다 그만 눈이 맞아 버렸다. 나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 짧은 순간에도 소희 아버지의 눈에 나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에도 소희 아버지는 여전히 험상궂은 얼굴로 나를 노려 보고 계셨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옆에서 소희 어머니가 그를 붙잡았다. 나는 소희 부모님이 눈에서 멀어지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재판 과정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곳에 남아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피고는 한소희 양이 10년 전 피고를 기소한 한지용 군수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네, 그렇습니다.”


검사의 질문에 명훈은 힘없는 말투로 대답을 했다.


“아들 박상우 군이 한소희 양과 교제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눈이 뒤집혔겠군요. 아니, 오히려 복수를 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렇죠?”


순간, 법정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의 있습니다. 지금 원고 측은 피고에게 유도신문을 하고 있습니다.”


변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의를 제기하자, 재판장은 잠시 헛기침을 했다.


“인정합니다. 원고 측은 주의해 주세요.”


법정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술렁임은 여전히 잦아들지가 않았다. 재판장이 큰 소리를 냈다.


“정숙해 주세요. 잠시 휴정하겠습니다. 1시간 뒤에 재개하겠습니다.”


참관석에 앉아 있던 재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명훈은 시종일관 무기력한 얼굴로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검사가 제기하는 모든 혐의는 순순히 인정했다. 마치 나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어서 나를 벌해달라고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보였다.

대기실에서 명훈과 마주 앉은 국선변호인은 한숨만 내쉬었다.


“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그대로 다 인정을 하면 어쩌겠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계획 살인이 되는 겁니다. 차라리 그럴 거면 아예 묵비권을 행사하세요. 네? 계속 이런 식이면 형량만 더 늘어난다니까요.”

명훈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답답한 듯 가슴을 내리치는 변호인은 이제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마음대로 하세요. 나도 이제 모르겠으니까.”


오후에 재개된 재판도 오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가 않았다. 명훈은 검사가 주장하는 혐의점에 대해 어떠한 반론도 제기하지 않은 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명훈의 살해 동기를 입증하기 위해 10년 전 피고를 기소한 검사 자격으로 지용이 증인석에 착석했다. 순간 법정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증인은 10년 전 여기 있는 피고 박명훈을 기소한 검사였습니다.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 당시 증거조사 과정이 미흡했다거나 검사 의견 진술과 판결에 부당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정확하게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사건을 조사하고 구형했다고 자부합니다. 재판부 또한 그 점을 인정하여 제대로 판결했다고 생각합니다.”


지용은 천천히 명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명훈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던 그때, 명훈의 눈이 살며시 지용에게로 향했다. 오늘 재판의 클라이막스는 바로 그 순간 일어났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었는데 명훈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지용의 머리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지용은 증인석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명훈에게 달려들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 지용은 큰 소리로 욕을 하며 명훈의 멱살을 잡았다.


“너 때문에.. 너 같은 버러지 놈 때문에 내 가족의 인생이 망해 버렸어. 이런 빌어먹을..”


경찰들이 달려들어 지용을 제지했다. 명훈은 놀란 토끼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참관석에 앉아 있던 재이와 동호도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용은 경찰들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퇴정하는 와중에도 울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씩씩거렸다. 법정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재이가 법정에 참관한 이래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가까스로 재개된 재판에서 검사는 명훈에게 계획적 살인이란 명목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선고가 내려지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지만 검사의 구형만으로 법정 안 곳곳에서 환호와 탄식이 뒤섞여 들려왔다. 명훈의 회사 동료들은 말도 안 된다며 고함을 질렀지만 경찰들의 제지에 이내 잠잠해졌다. 명훈은 가슴속에 회한이 가득한 듯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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