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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Sep 22. 2022

밤밤언덕(22)

33

할머니는 등산을 참 좋아하셨다. 젊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가 들어 다리가 불편하신 와중에도 집 앞에 자리한 동산을 당신의 정원마냥 거니셨다. 나는 종종 할머니의 손을 잡고 당신이 산책을 하시는 동안 은근한 말동무가 되어주곤 했다. 할머니는 가끔 그런 말씀을 하셨다. 이 동산 위에 영원히 잠들고 싶다고.


“상우야, 만약 내가 죽거든 내가 거닐던 이 산에 나를 뿌려 주렴.”


“네? 할머니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할머니가 죽긴 왜 죽어요? 할머니는 저랑 평생토록 오래오래 함께 사실 건데요.”


“인석아. 그럼 할머니가 나이가 얼만데. 나이가 들면 죽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 가끔 우리 상우가 오가는 길목에 잠든다고 생각하면 나는 죽어서도 참 행복할 것만 같구나. 그럴 수 있겠니?”


나는 할머니의 유골함을 들고 할머니가 자주 오가던 산어귀에 올랐다. 산책로 한 켠에 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할머니는 벤치에 앉아 흐르는 물소리와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곤 하셨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품 안에 안고 있던 할머니의 유골함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나도 할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조용히 벤치에 홀로 앉아 물소리와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조심스레 유골함 뚜껑을 열고는 할머니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 이제 정말 안녕이네요. 잘 가세요.”


할머니를 보내 드린 후 나는 다짐했다. 더 이상은 울지 않을 테다. 감상에 젖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내 곁을 떠나간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기지 않으려면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산과 마을로 방향을 나누는 갈림길에서 나는 큰마음을 먹고 밤밤언덕으로 향하는 산길을 선택했다. 며칠 전 종수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든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마음을 다잡아 보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점점 더 힘든 일이란 걸 깨달았다. 마음속의 짐을 덜어내기 위해서는 그날의 진실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주체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도 쭉 고민의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밤밤언덕으로 향하는 길이 그 어느 때보다 멀고 아득하기만 했다. 발걸음이 이렇게 무거울 수가 있을까. 소희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밤밤언덕에는 다시는 오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에게는 추억의 장소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악몽을 가져다준 곳이기도 하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다시는 밤밤언덕을 찾는 일이 없을 것이다. 머릿속에 온갖 상념을 가득 담아둔 채 조금씩 힘을 내어 가는 길을 재촉했다. 그렇게 1시간여를 걷자 멀지 않은 곳에 밤밤언덕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언덕 정상 한 발 아래에는 그보다 더 큰 높이의 밤나무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밤나무 바로 옆에 커다란 바위가 묻혀 있잖아. 바로 거기야.”


나는 종수가 일러준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밤나무를 올려다 본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막연하게 밤나무 주변을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나는 밤나무 아래 땅속 깊이 박혀 있는 바위 위를 두발로 밟고 올라섰다. 종수가 목격한 게 틀림이 없다면 아버지가 무언가를 묻었던 장소는 바로 이곳이다. 나는 가지고 온 소형 야전삽을 꺼내었다.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조심스레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비가 온 후 단단하게 굳은 땅을 파헤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밤을 지새워서라도 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하고 말 테다.


산새 지저귀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가 귓전을 괴롭혔다. 게다가 한참을 파헤쳤는데도 땅속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종수가 잘 못 본 것은 아닐까.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질 즈음 이번에는 뻐꾸기가 머리 위에서 울음소리를 전했다. 잠시 후 마침내 삽 끄트머리에서 무언가 딱딱한 물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찾았다!! 형체를 드러낸 것은 그리 크지 않은 나무상자였다.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나무상자를 파헤쳤다. 한참을 파낸 후 나는 가까스로 나무상자를 바깥으로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아무런 무늬가 없는 평범한 나무상자였다. 나는 잠시 가쁜 숨을 내쉬었다. 과연 이 안에 뭐가 들어 있을까? 뭐가 들어 있길래 아버지는 산속으로 가져와 은밀하게 묻어 두었을까?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어디서 본 듯한 낯설지 않은 가방 하나가 들어 있었다. 어디서 봤더라. 그래! 아버지가 출감하던 날, 당신이 신줏단지 모시듯 끌어안고 가지고 나오신 바로 그 가방이다. 전에 창고안에서 가방을 열어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는 분명히 가방 속이 비어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창고 안에 있던 가방을 최근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여기에 가져다 놓으셨구나. 그런데 왜?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조심스럽게 가방 문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종이 꾸러미가 한 묶음씩 묶여져 들어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이다. 이게 대체 뭘까? 나는 몇 개를 꺼내어 종이를 펼쳐 보았다. 잠시 후 나는 종이 꾸러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수감생활 동안 나에게 쓴 편지였다. 모든 편지의 말머리에는 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의 아들 상우에게..’ 순간 내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편지에는 아버지가 매일매일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꿈꾸며 살아가는지 교도소안 일상의 기록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나와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은 희망의 이야기들이었다. 아버지가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계셨구나. 미쳐 알지 못했다. 교도소안의 생활이 분명 고되고 힘들었을 거라는 건 알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린 적이 없었다. 10년이란 세월이 나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당신의 마음을 보듬어 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편지 수십 통을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어느새 내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불과 1시간 전만 해도 이제는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왜 이렇게 자꾸 눈물이 흐르는 것인지.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또 한 장의 편지를 펼쳐 들었다.      


잠시뿐일 거야

곧 끝날 거야 또 해가 뜰 거야

갑자기 왔다 적시고 간다

소나기 소나기

날이 참 좋았는데

화창했는데 말없이 내리네

갑자기 왔다 적시고 간다

우산 없이 살다가 아주 흠뻑 젖었네

정신없이 살다가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어야지 소나기

내가 눈을 떠야 세상이 있어

눈 감으면 되잖아

잠시 꿈을 꾸며

그리고 눈을 뜨면 괜찮아

내가 찾아가야 인생이 있어

또 내일이 있잖아

오늘 하루만 소나기     


시를 적은 것인가? 낯설지 않은 글이다. 이게 뭐였더라? 맞아. 아버지가 평소에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의 가사구나. 아버지는 교도소안에서부터 이 노래를 좋아하신 모양인지 편지 곳곳에 노래 가사를 적어 놓으셨다. 나는 바위에 걸터 앉아 마음속으로 조용히 노래를 따라 불렀다. 얼마 전까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 번쩍하고 섬광이 비추었다. 낯설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뭐지? 이 기억은.. 나의 기억은 일순간 소희의 손을 놓았던 그 날밤, 비 오는 언덕 너머로 향해 있었다.


“소희야, 소희야. 어디 있어?“


나는 소희의 이름을 미친 듯이 외쳐댔다.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고 있기만 했다. 그 순간, 멀지 않은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렸다. 빗소리에 섞여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음악소리였다. 음악소리.. 


‘우산 없이 살다가 아주 흠뻑 젖었네. 정신없이 살다가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어야지 소나기.’


분명 이 노래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노래.     


나는 정신없이 뛰었다. 나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집으로 가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상우 왔니?”


나는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가 아버지 소지품을 뒤적였다. 아버지의 흔적이 닿아 있는 안방 곳곳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풀어 헤쳤다. 한참을 지켜보고 있던 엄마가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상우야, 왜 그래? 대체 뭘 찾는 거야?”


내 귀에는 엄마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정신이 나간 듯한 내 모습에 걱정이 되었는지 엄마가 가까이 다가와 내 손을 붙잡았다. 


“상우야,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뒤돌아서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핸드폰. 아버지 핸드폰 어디 있어요?”


“아버지 핸드폰은 경찰이 이미 가지고 갔잖아. 그런데 그걸 왜 찾는 거야?”


“아. 경찰에서 가져갔다고요? 그럼 엄마, 혹시 아버지 핸드폰 벨 소리 뭔지 기억해요?”


“핸드폰 벨 소리? 뭐였더라. 아버지가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였는데.”


나는 황급히 내 핸드폰을 꺼내어 아버지가 자주 부르시던 노래 제목을 검색했다. 이윽고 핸드폰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이 노래. 이 노래 맞아요?”


엄마는 잠시 흐르는 노래를 듣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이 노래야.”


온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다. 나는 그제야 모든 걸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 대신 누명을.. 아니 당신 스스로 죄를 뒤집어쓰신 것이다. 그날 밤 나와 소희가 있던 그곳에, 내가 소희의 손을 놓았던 그 시간에..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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