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과 딸,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든든한 남편.. 메러디스의 일상은 언제나 그렇듯 평온하기만 합니다. 산모 도우미로 일을 하느라 매일매일이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가족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속의 응어리가 눈녹듯 사라집니다. 행복한 나날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랬는데.. 이를 시기한 누군가의 장난일까요? '지옥에서 썩어 문드러져 버려. 메러디스'.. 메러디스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협박문자를 받고 크나큰 충격에 휩싸입니다. 살면서 나쁜 짓을 한 적도 없고 남에게 해를 가한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토록 벌벌 떨어야만 하는 걸까요? 궁금증을 해소하게 되었던 그 때쯤.. 그녀는 딸 '딜라일라'와 함께 마을에서 깜쪽같이 사라져 버립니다.
마을곳곳에서 경찰의 탐문수사가 이뤄지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모녀의 행방을 찾지 못합니다. 남편 '조시'의 가슴은 타들어 갑니다. 아내와 딸아이를 찾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대체 누가 그들을 데려가 버린 것일까..
그런데 마을에서 사라진 여성은 그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메러디스의 도움을 받던 산모 '셸비' 역시 메러디스가 사라지기 얼마전 행방이 묘연해져 버렸으니까요. 과연 이 작은 마을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오늘의 소설은 전작 '디 아더 미세스'라는 작품을 통해 충격적인 결말을 선사했던 작가 '메리 쿠비카'의 신작 소설 '사라진 여자들'입니다. 제목이 알려주는 그대로 소설 '사라진 여자들'은 마을에서 연쇄적으로 실종되는 세 명의 여성과 그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변인물들의 내적 사투를 처절하게 파헤치는 고도의 범죄심리소설입니다.
저 역시 정말 재미있게 소설의 마지막장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눈을 뗄 수 없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전개방식으로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픈 작가의 노력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 덕분에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을 땐 잔혹한 인간의 민낯을 마주하며 씁쓸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사실, 이번 소설에서 제일 두드러지는 점은 바로 '교차서술'입니다. 매번 추리소설을 읽을 때마다 '교차서술'의 우수성을 새삼 실감하곤 하는데요. 이제는 흔하디 흔한 서술방식이라지만 '사라진 여자들'은 교차서술의 정점에 서있는 작품이 아닐까 느껴질 정도로 전개방식을 적극 활용합니다.
11년전 사라진 여성 '메러디스'의 시각과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 시점에서 메러디스와 딜라일라의 흔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친구 '케이트'의 시선, 그리고 11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의 시점에서 극적으로 귀환한 누나 '딜라일라'를 연민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레오'의 시선이 교차로 서술됩니다. 각기 다른 시간대, 각기 다른 인물들의 시각에서 펼쳐지는 시점의 전환은 독자들을 소설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매번 소설의 시점이 교차할 때마다 사건의 전말을 한번 더 머릿속으로 곱씹어 봅니다. 단순히 화자를 바꾸는 역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진실이 남의 눈에선 어떻게 느껴지는지 재구성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인지 '사라진 여자들'은 독자들이 스스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범인을 특정짓는 등..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참 풍부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작가는 전에 없던 다양한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시키고자 노력합니다. 1부라 명명한 소설의 첫번째 챕터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만큼 처절하고 지독한 생존을 마주하게 되다니.. '딜라일라'의 생존일기가 뼈에 사무치듯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보다 더 가혹할 수가 없습니다. 몇번이고 입술을 깨물고 북받쳐 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혀야만 합니다. 드디어 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그녀의 생환이 모든 이에게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부터 과거와 현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교묘한 방식으로 독자들을 시험에 들게 합니다. 역시나.. 서술트릭이 사용되었군요.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해야 할 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작가는 잔혹한 인간의 민낯을 경험하는 동시에 희망의 메세지를 말하고픈 유의미한 결말로 소설을 마무리합니다. 일관성 없는 범인의 실체가 안타깝습니다. 과연 나였다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이번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피해자의 심리는 더할 나위 없이 극적으로 묘사하는 반면, 가해자의 심리는 철저히 가둬 두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과연 '그'가 느낀 감정의 크기는 무엇이었는지.. 피해자의 그것과 교차되는 아득한 감정을 아직도 저는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