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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민 Jul 07. 2023

초췌한 시기에 받은 사랑스런 위로들

 싱크대에서 세수를 하고 아기로션을 바른다. 아기가 언제든 물고 빨고 할 수 있게 편하게 늘어난 티를 입거나 샤워를 하다가도 뛰어나갈 수 있게 원피스를 입게 된다.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밥은 세 번 이상 씹기 힘들다. 생명수 같은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배터리는 달랑거리지만 아기는 이제 시작인 눈치일 때 아기를 유모차에 싣고 동네를 돌기 시작한다. 10분에 한 번씩은 아기를 향해 인사를 하거나 웃거나 말을 건네는 사람들을 만난다.

살면서 이렇게 절대적인 호의로 가득한 세상을 사는 게 낯설기도 부끄럽기도 감사하기도 하다. 서울 출산율 0.59명 시대에 아기엄마라니 참 인생은 타이밍이다 싶기도 하면서 40살의 출산이 기특해지기도 한다.


"아기 보기 귀한 세상인데 너무 귀엽다 잘 키워요" 라는 말이 대부분이고 본인의 교육관을 설명해 주시는 분도 계시고 아기를 보고는 꽃이 피듯 얼굴이 환해지시는 노할머니도 계신다. 덩달아 나를 향한 사랑의 시선이 동반되는데 ‘아기를 키우는 엄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뻐 보인다’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된다. 부스스한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옷가지를 대충 걸친 나를 예쁘다고 하는 이웃들에게 받은 위로로 어느샌가 코가 찡하다. 예쁘기로 치자면 교복을 입은 생기로움의 아이들과 20대의 풋풋함에 비할까. 30대의 정돈된 아름다움 또한 얼마나 빛나는가.


 

 그러나 역시 여성성이 빛나는 순간은 아기를 품에 안은 모습인 듯하다. 작고 소중한 생명을 보살피는 존재가 발하는 에너지가 모자관계라는 하모니를 가질 때 우리는 아름다운 세계 속의 장면들을 목격하게 된다. 남녀의 사랑이 관능적이라면 모자의 사랑은 그저 순수하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요가로 만나기에 그 자체로 진정성 있는 만남이자 의미 있는 연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언가 빠져있다고 느껴졌다. 세팅된 요가강사의 모습으로 책에서 배운 삶의 철학을 아는체 하는 모습이라 느껴졌다. 영성에 대한 접근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요가를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내가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에게 많이 치여 가능하면 마음을 닫으려했던 내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사람들과 조금씩 연결되고 있다. 흔히 육아는 몸빵이라고 한다. 인생도 몸빵을 동반할 때야 진실을 통과하는 것 같다고 해뜨는 새벽,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며 손가락 사이 기저귀에 묻은 똥을 닦아내며 생각한다.


인간은 존재로써 설득한다


 참 좋아하는 글귀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내가 편안해지고 있다.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되어서야 말이다. 수식어들이 떨어지고 순간순간에 반응하고 있는 1차원적 인간이 된 듯한 이러한 때에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는 통합의 경험을 어떤 식으로든 남기고 싶었다.




스와스띠야 swasthya, 자신이 되는 것이란 나에게 생각보다 긴 여정었다. 물론 지금도 헷갈릴 때가 있고 힘센돌이 에고가 부득부득 나를 끌고 가려 하기가 부지기수다. 다만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땀으로 닦아낸 스와스띠야의 과정이 일상의 순간에서 빛을 발해줄 때가 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각의 순간이며, 꽤나 가볍고 유쾌해지는 이 경험이 물러서지 않는 평안의 확장을 불러온다.



 중학교 동창인 친구가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또 다른 지인이 내게 해주던 대답을 했다. 힘든 만큼 행복하고 행복한 만큼 힘들다고. 그러자

그건 행복한 힘듦이야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안타깝지만 날로 먹는 행복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타륜이 행복한 방향으로 전환된 듯해서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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