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현모양처였습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21

by 김선하

1.

내 꿈은 현모양처였습니다. 신사임당, 맹모孟母, 종갓집 며느리 뭐 이런 류의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2.

신사임당은 지금 표현으로 엄친딸의 대명사죠. 시詩, 서書, 화畵에 능했고 예술가로서 명성이 뛰어났습니다. 7남매를 낳은 어머니이자 어질고 현명한 교육자로서 현모양처 하면 신사임당을 따라 올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사임당 남편 이원수는 생전에 첩을 들여 첫째 부인 신사임당과 한집에서 살았으니 부인, 아내라는 자리를 내주어야 했으니 그 속이 어떠했을까요.


맹모는 현대판 강남 돼지엄마입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으며 맹모는 교육계 선구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하니 맹모 입장에서는 남편을 일찍 여읜 후, 의지하고 기대할 사람은 아들 맹자뿐이겠지요. 그러니 맹모는 아들 하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 여겨 아들 학습에 열성을 보인 것입니다. 맹모 또한 자식의 교육에는 완벽한 어머니였지만 오랜 시간 남편에게는 큰 사랑을 받지 못한 가엾은 아내입니다


종갓집 며느리는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세간의 존경과 부러움을 삽니다. 역사외전에는 맏며느리 상당수가 시댁의 위엄과 전통에 갇혀 살았습니다. 여는 종부宗婦는 둘째 셋째 부인에게 안방을 내어주고 화병을 얻는 기구한 팔자의 불우한 여인으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현모양처는 자칫 남편에게는 사랑받지 못하는 인물로 남아있습니다. 재능이 뛰어났고, 자식을 잘 키웠으며, 인품도 뒤처지지 않는 신 여성상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내로서 사랑을 받고 알콩달콩 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남편의 사랑을 일과 자식에게 몰두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3.

내가 그리는 현모양처는 지체 높은 양반 가문의 자식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종부 같은 요즘으로 치면 유교걸 정도였습니다. 위엄 있게 안방을 차지하고 곳간 열쇠를 거머쥔 외유내강의 그런 아내 말입니다. 돌아보니 내가 그린 현모양처상에도 사랑받는 아내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직장을 다니며 일하는 대신 나는 직접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설계하고 거느리며 가정 영역에서 운영자 설계자가 되고팠던 모양입니다. 문화센터에서 한식 요리를 배우고 문화예술 강좌를 등록해서 세련된 여가활동을 하는 팔자 좋은 여자를 꿈꾸었나 봅니다. 여기에 욕심을 부려본다면, 햇빛 잘 드는 창가에 책상을 두고 거기서 글을 쓴다면, 그것이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한 장면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상상했고 상상은 멀리 가지 못한 채 현실 앞에서 깨지는 법입니다.



4.

학 졸업 전에 학업과 동시에 시작된 직장 생활, 늦은 결혼 후 두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과 전업주부로서 완벽하게 해내는 슈퍼우먼이 되었습니다. 되어야만 했습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을 곳이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잘해서 혹은 남들 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양육과 가정 살림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질적 성실과 부지런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처해서 모든 것을 도맡아 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벅차고 힘들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고집의 과정이었으니 미련스러운 곰처럼 불평 없이 묵묵히 해냈습니다. 때론 과부하가 걸려 지쳤다가도 배터리로 움직이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열심히 달렸습니다. 넘어질 듯 일어나고 일어나 보면 다시 넘어질 듯 반복된 날을 버티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내 나이 사십, 그해 여름, 달리던 열차를 쫓던 나는 내 발에 브레이크를 걸고 제자리에 멈추었습니다. 종착지를 앞서 나간 것도 한없지 뒤쳐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옆을 보고 뒤를 보니 달리는 열차 방향이 반대였던 것입니다. 잘못 탔으니 아쉬움도 미련도 없이 멈추어서 주저앉았습니다. 잠시 뒤 넘어진 나는 두 발을 땅에 딛고 다시 섰습니다.


5.

방향을 바꾸어 돌아보니 뛸 때 보지 못했던 것이 파노라마로 회상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20퍼센트 힘을 뺐습니다. 방향 수정을 했고, 내가 그리던 현모양처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글 쓰는 엄마가 되기로 했습니다. 가정, 직장, 나 자신이라는 세 개의 틀에서 나의 비중을 두어 살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내가 그린 내 인생의 청사진에는 글 쓰는 40대의 현모양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보려고 늦었지만 지금부터 시작하면 60대, 빠르면 50대에는 그 꿈이 실현되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름 시간을 쪼개고 계획을 세워 글을 썼습니다. 이른 새벽 경건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시간을 내 글 쓰는 시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때로는 마감 없는 글을 이날 꼭 마무리 지어야 한다며 가족에게 눈치를 주고 희생시키기도 했습니다. 나는 작가 놀이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쓰는 글은 목표도 방향도 기한도 없었습니다. 이것저것 끄적거리는 것으로 시작은 했지만 이렇다 할 만한 결과물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시간 낭비인지도 몰라, 했다가도 분명한 것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나에게 관심사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글을 쓰는 동안, 글과 마주하면서, 생각이 더해졌습니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행복 글쓰기는 책을 내야 한다는 목표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6.

그러나 나는 책을 내기에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내세울 만한 이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파워블로거나 스타강사나 유명 인사는 더욱 아니었지요. 일명 지명도가 없는 무명작가 지망생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나만의 원고 마감시간을 정하고 작가인 것처럼 글을 썼습니다. 내 꿈이 책을 쓰는 현모양처이니 그렇게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은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하여 포기하지 않고 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7.

제부터인가 우리는 “내 꿈은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화법을 잃어버렸습니다. 꿈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움직여야 한다고, 뭐라도 해봐야 한다고, 하다못해 계획이라도 세워봐야 한다고”


이게 바로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입니다. 소중하게 가슴속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 계획을 세우는 것,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는 것, 손에 잡을 수 있게 만드는 것, 그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어야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8.

는 오십이 되었습니다. 내 책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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