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하 Sep 04. 2023

당신은 대단합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66

1.

"대단합니다. 두 권 세 권 책을 낸 사람보다 처음 책을 낸 사람이 대단하잖아요. 이전에 보지 못한 세상을 향해 껍질을 깨고 나온 사람에게 그 용기와 도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내가 책을 내고 출판 파티에서 받은 인사말 중에 최고는 바로 "대답합니다"였습니다. 


이전에 한 번 더 이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척추 디스크와 몇 개의 알레르기를 가진 채, 설상가상으로 임신 중에 작은 수술을 감내하면서, 아이를 낳았을 때 누군가 말했습니다. "대단하다 대단해" 그때 그 말은 어지간하다, 못 말린다, 무모하다, 는 의미였습니다.


내가 책을 내고 들은 "대단합니다"이 말은 분명 잘했다는 표현입니다. 



2.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주변에서 몇 명 지인은 끊임없이 책을 내라고 조언과 압박을 강행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가 두려웠고, 부끄러웠습니다. 남의 글을 수정하고 대필하면서 나는 나의 본질을 숨기고 감추는데 익숙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책을 내야겠다고 힘을 얻은 결정적인 말이 있습니다.

"너 첫째 낳고 둘째 낳아서 창피했어? 아니지! 너의 책을 셋째라고 생각해. 셋째 낳으면 부끄럽니? 자랑스럽지! 네가 내는 책은 자랑스러운 거야. 대단한 거야!"


첫째와 둘째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면, 눈물나는 날에는, 엄마 책은 내 손가락 아파 낳은 셋째입니다. 손가락 관절과 늘어난 몸무게를 보상받는 듯 다행 주변에서 쉽게 읽힌다는 얘기를 들어서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습니다. 



3.

오늘 들른 절에는 도반들이 십시일반 공양간 일을 거듭니다. 늦게 도착한 나는 밥값 하려고 빠른 손놀림으로 설거지와 뒷정리합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커피가 마시고 싶은 입모양입니다. 해서 일일 마담 자처해 알커피 한잔씩 대접합니다. 집에 가는 길에 인사차 종무에 들렸더니 좋은 차 있다 해서 삼삼오오 모였습니다. 나를 보더니 내 책 읽은 도반들 한둘 모여와서는 책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얼떨결에 자리 펴고 저자와의 토크쇼가 되어버렸네요.


3.

저는 요런 거 좋아합니다. 거창할 거 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던지고, 생각을 던집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알아차립니다. 무겁지 않게, 심각하지 않게, 툭 건드려지는 이런 자리가 좋습니다. 내 책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한 마디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습니다. 웃음 뒤에 아픔이 있었고, 유쾌함 뒤에 슬픔이 서렸고, 행복해서 그것이 부러웠던 사람은 오랜동안 말 못 하는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살아준 날들에 대해 "대단하다"라고 진심의 말을 전합니다. 이제부터 나아질 테니 살아보자는 힘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나만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나만 억울한 게 아니었습니다. 나만큼 당신도 힘들었고 아팠습니다. 그런데 버티고 살아주었습니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위안과 함께 나아가보자는 격려로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픔과 슬픔을 겪고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나도 당신도 우리는 대단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수정의 시작은 원고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