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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써니 Jul 06. 2022

Who is the monster?

성(性) 갈등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현재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그렇지만 영문학을 너무 좋아하기에 영문학과에 진학을 한 것이 아직도 너무나 행복하다. 브론테 자매의 작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위대한 개츠비 등등.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영문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배워보고 싶었던 내 꿈을 대학생활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멋진 교수님들의 지도하에 마음껏 현실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개발협력 분야와 문학. 얼핏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두 분야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렇게 문학을 좋아하면서 왜 전공을 살릴 생각은 안 해?’라고 내게 묻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과연 개발협력분야의 다양한 이슈들이 문학과 관련이 없을까?’


 먼저, 나는 개발협력 분야 중에서도 Global Partnership, Education 그리고 Gender Issue에 가장 관심이 많다. 사실 글로벌 파트너십 분야나 교육 분야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분야이지만, 젠더(gender)와 관련된 부분은 대학에 와서 문학을 공부하면서 생긴 새로운 관심사이자, 현재 내 삶을 이끌어주는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이다. 저번 에세이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훗날 지구촌의 모든 여아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지구촌 여전사가 될 것이다. 나의 이러한 꿈은 뒤에서 언급할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을 통해서 생겨난 꿈이다.


 이처럼 문학을 통해 우리는 사회문제에 새로이 눈을 뜰 수도 있고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도 있다. 즉, ‘인문학적인 감수성은 어떤 분야에서도 무시될 수 없는 강력한 무기’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지구촌의 젠더 갈등을 간접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인문학은 어떤 것이 있는지, 어떤 갈등을 경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분석해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Sexual Conflicts가 왜 사회적 문제인지, 해당 갈등의 근원은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루어 볼 것이다. 나의 에세이를 읽을 모든 독자들 또한 인문학을 통해서 젠더 이슈를 이해하는 나의 관점과 방식을 간접적으로나마 함께 느껴보고, 인문학이 가진 힘에 대해서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 문학, 영국 문학, 아프리카 문학 이렇게 총 3개국의 작품을 언급할 것이며 2개의 작품은 영문학과 수업에서 다룬 작품을. 또 다른 1개의 작품은 수업에서 다룬 작품은 아니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던 성(性) 갈등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선정해보았다. 


 첫 번째로, 우리나라의 문학 작품인 오정희 작가의 ‘유년의 뜰’에 대해서 분석해보려 한다. 해당 작품은 문학과 여성 수업을 들으며 접하게 된 작품으로, 예닐곱 살 된 여자아이의 시각으로 전쟁으로 인한 변화의 바람, 가족의 해체를 다루고 있다. 또한 시대에 따른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묘사와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에 대한 묘사 또한 아주 잘 나타나 있는 문학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대로서 주인공 노랑 눈이의 가정만 보아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다. 일례로, 아버지는 전쟁터로 징집되었고, 어머니는 매일 치장을 하고 시장에 나가며, 정분(情分)이 났다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버린 오빠는 가정의 해체를 막고자 밤 외출을 즐기는 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점은 ‘바람’이다. 앞서 나는 위 작품이 시대에 따른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묘사와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여성들의 바람기’와 ‘변화의 바람’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전쟁이 발발되기 전에 당시 시대적 여성들의 정체성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작품 속 남성들의 태도에서 유추할 수 있다. 노랑 눈이의 언니는 밤 외출을 즐기기에 가정에서 억압을 당한다. 노랑 눈이의 어머니 또한 어머니로써의 역할에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보다는 자신의 자유를 찾아 헤매기에 갈보라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아들과도 갈등을 겪는다. 앞서 언급한 여자들은 이처럼 매일같이 밤 외출을 즐겼지만, 시대적 억압이라는 비유를 담고 있는 오빠의 폭력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 기존(=전쟁 이전)의 여성의 성역할 혹은 정체성은 그저 순종하고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로써만 여겨졌을 것이라 예상이 된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혼란 속 이러한 상황을 뒤바꿀 ‘변화의 바람’이 불었고, 그 과정 속 여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바람기’가 생겨났다고 생각된다. 비유가 많은 작품이기에, 여성들이 자유를 찾고자 하는 욕망과 바람기가 ‘밤 외출’이라는 단어로써 표현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여성들이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고 성적인 해방을 원하는 변화를 막기 위해 괴물이 되었던 존재들이 유년의 뜰에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부네의 아버지이다. 그는 부네를 자살의 길로 몰고 간 장본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부네의 아버지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딸이 갈보라는 비난의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이 그간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방식을 그녀에게 행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방식이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된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특정 성(性)을 억압하는 행동, 혹은 특정 성을 억압하기 위해서 폭력을 휘두르고. 더 나아가 특정 인물을 죽음에까지 몰아넣는 행동 양상을 보여주는 부네의 아버지가 과연 괴물일까? 아니면 그를 그렇게 만든 사회가 괴물일까? 물론 둘 다 문제가 있겠지만, 나는 그를 그렇게 길러낸 사회가 더 큰 괴물이자 그 근원이 이라고 생각한다. 달리 말해, 성(性) 갈등이라고 하면 흔히 남자가 여자를 차별하는 것,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사람이 벌이는 일 정도로 많이들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개인적인 문제로써 해당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해당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의문을 던지게 하는 두 작품을 또 소개 및 분석해보며 내 주장을 펼쳐나가 보도록 하겠다. 먼저, 자주적인 여성의 목소리와 시각을 활용해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작품. 여성작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대해서 분석해보겠다. 평소 좋아하는 문학 작품이었지만 나는 그간 해당 작품을 그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써만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영문과 수업을 들으며 내가 그간 지나쳐왔던 사랑 이야기의 이면에 초점을 맞추고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보면서 깨달은 점이 많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

 오만과 편견은 실제로 19세기 영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주요한 화두였던 결혼 전의 남녀의 이야기를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해당 소설은 당시 시대적 세태와 인물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서 작품을 전개하고 있으며, 오히려 작가는 주인공들의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부부의 삶에 대해서 밝히는 형식은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왜 그랬을까? 답은 오프닝 문장 “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 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ne, must be in want of a wife.” (Pride and Prejudice, p.9)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만과 편견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사람도 알만한 아주 유명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과연 저 문장을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모든 독신남들에게는 아내가 꼭 필요하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기에) 해당 문장이 유명한 것 일까? 수업을 통해 얻은 새로운 시각으로 소설을 자세히 음미해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당대 가부장적인 시대에 대해서 인물들의 세세한 감정선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그렇기에 해당 문장이 매우 중요하고 유명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작품에서 엘리자베스는 감기에 걸린 제인이 걱정되어 3마일의 진흙길을 홀로 걸어 네더 필드에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 빙리 자매는 지저분한 모습의 그녀를 보고 언제나 단정해야 하는 여자가 험한 길을 혼자서 헤쳐왔다며 그녀를 비난한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를 통해 보이는 요소는 순종적이고 보이는 것 만을 중시하는 시대적 관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色)과 도덕성을 가진 엘리자베스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당시 시대적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그녀의 모습에 빙리와 다아시는 감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녀는 빙리 자매를 가부장적인 당시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상징으로 그려내며, 그녀들의 태도를 주변 인물들의 태도를 통해 오밀조밀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제인 오스틴이 추구하는 바에 대해서 유추해보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당시 모든 사람들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냥 조건이 맞는 사람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다음 세대를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삶을 산다고 해서 그저 남들처럼 ‘개성 없이 복사되는 인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서로에 대한 오해와 갈등을 직접 겪고 그것을 풀어가는 등의 상호 간 교류를 통해서, 진정한 교양과 도덕에 대해서 배우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가며 스스로 선택하는 삶의 중요성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영문학과에 재학하며, 나는 다각도로 문학 작품을 해석하는 연습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수업에서 다룬 작품은 아니지만 자주적인 여성과 그렇지 못한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을 통해 올바른 성평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는 책을 추가로 분석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고른 작품은 바로 와리스 디리의 책 ‘사파 구하기’다. 아프리카 대륙의 소말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책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당신은 ‘FGM’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여성 할례라는 표현으로 국내에는 더 많이 알려져 있는 FGM은 female genital mutilation. 즉, ‘여아 성기 훼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로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는 해당 풍습은 ‘문화’라는 가면 뒤에 숨어져 행해지는 폭력이다. 비의료적인 목적으로 3~8살 여아의 성기를 면도칼 등을 이용해 잘라낸 뒤, 아카시아 나무 가시 등으로 면봉 머리 하나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구멍만 남기고 꿰매어버리는 행위가 FGM이다. 이러한 풍습이 행해지는 이유는 단 하나. 여성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다. 놀랍게도 이 폭력은 지금도 11초에 한 번씩 행해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소말리아 태생의 와리스 디리는 슈퍼모델로써 인기와 유명세를 얻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FGM 중에서도 가장 가혹하다고 여겨지는 파라오식 할례를 받은 것을 밝힌 후에 현재는 자신의 영향력을 인권운동가로써 활용하고 있다. 그런 그녀는 자신과 같이 주체적인 태도를 갖추고 있고, 앞으로의 아프리카 소녀들을 지켜낼 잠재적 힘을 가진 사파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래서 사파가 올바른 교육을 받고, FGM을 받지 않도록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그러나 사파의 부모님은 말한다. 사파는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으니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결국 할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그래서 위 책은 와리스 디리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여성 할례로부터 사파를 구해내기 위해 함께한 시간들을 다루고 있다.

 해당 작품은 왜 국제사회가 젠더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문제가 계속해서 심각해지고 있는지,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할례가 법적으로 금지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없어지지 않고 있는지 우리가 생각해보도록 이끌어준다.

 대표적으로 사파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느낀 점들에 대해서 다루어보겠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다. 그래서 여성의 몸으로 유럽 국가에서 성공한 와리스 디리를 보고 유럽에 가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그의 고향인 소말리아에서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Cutter(할례 집행자)밖에 없기 때문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이다.

 그래서인지 작품 초반에서 와리스 디리가 FGM철폐를 위해 창설한 재단 사람들을 이용해 돈을 뜯어내 마약을 하고, 여성들을 무시하며, 사파에게 할례를 집행할 것을 고집하는 그의 모습은 사파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놀랍게도, 책장을 넘길수록 그의 태도가 변하는 과정이 나타난다. 그는 FGM을 받지 않으면 여성들은 자신의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미쳐버린다고 배웠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알지 못했으며, 자신이 살던 소말리아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는 남녀가 자신의 성별과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고 한다. 그는 그저 자신이 속한 사회에 걸맞은 남성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사파의 부모가 FGM이라는 끔찍한 폭력을 자신의 딸에게 집행하고자 하는 관념을 가진 것이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만 다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그가 처한 사회가 그를 괴물로 길러낸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비슷하게,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빙리 자매가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는 인물들을 상징한다고 위에서 언급했다. 그렇다면 그녀들의 태도도 과연 개인의 문제이기만 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빙리 자매 자체가 부도덕적이고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듯한 암시는 넣지 않았다고 나는 판단했다.

 이처럼 사파 구하기, 오만과 편견, 유년의 뜰 세 작품 모두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생겨난 사회적 뿌리를 우리가 생각 없이 계속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결국 괴물을 계속해서 길러낸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성별을 떠나서,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앞서 언급한 세 문학이 주는 교훈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세 작품에서 나타나는 괴물의 근원은 무엇인지, 그 악행이 대물림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문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 또한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경우, 영문과 수업에서 배운 대로, 단순히 있는 그대로만 문학을 받아들이지 말고 그 이면에 숨겨진 뜻은 무엇이 있을지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민하는 태도를 가지고 다양한 문학을 접해보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오늘날의 내가 배우고 느낀 점들을 계속해서 갈고닦아 다각적인 시각으로 인문학을 해석하는 감수성을 갖춘 여전사가 되길 바라며, 에세이를 마무리한다.


*작가의 글 작성 의도: https://blog.naver.com/queenrin6/222807737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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