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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꿈꿔온 공기업 입사. 근데 한 달 만에 매너리즘?

나는 왜 뽑혔을까? 입사 후의 공허함, 그리고 우리의 가치

by 민써니

4월 1일 만우절은 우리 회사의 회사 창립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주 (2025년 4월 1일) 화요일은 회사를 안 가고 하루 종일을 집에서 보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넷플릭스로 밀려있던 미국 드라마 "하우스"를 보았다.

천재의사 그레고리 하우스와 그의 팀 (포어맨, 체이스, 캐머런)이 알 수 없는 병명을 가진 환자들을 치료하며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의학드라마이다.

시즌 1에서 그리고 이런 장면이 나온다.

닥터 하우스 팀의 포어맨과 체이스, 캐머런이 각가 자신의 스펙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중 캐머런은 자신의 스펙이 다른 팀원에 비해 월등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00 의대를 나와서 00 병원에서 레지던스를 했지."


"나는 00 의대에서 수석으로 졸업을 했고 아버지도 이 분야에서는 최고로 유명한 의사지. 그래서 뽑힌 게 아닐까 싶어."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를 갔고 학점도 나쁘지 않았지만 유별난 장점이 있는 것은 아닌 캐머런.

그녀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닥터 하우스에게 왜 자신을 뽑은 것인지 묻는다.


넌 예쁘잖아.

그 얼굴이면 모델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의대를 진학했어, 넌.

그것만으로도 네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니까 뽑았어.

뭐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 같았어.


문득 이 이야기를 보다 보니 3주 전, 입사 한 달 차 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연수사업실의 유튜브채널에 올릴 홍보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인턴들끼리 아이디어회의 및 스토리보드를 짜면서 각자의 스펙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https://youtu.be/lHmkVOKeG9E?si=mpTWnBO-GIC3Djli

(그렇게 완성된 유튜브 콘텐츠)


누구는 제2외국어 능력자, 누구는 유관경험은 딱히 없지만 공공기관에서의 경험이 있고 누군가는 관련 자격증이 있고...


인턴십 면접 때도 다대 다 면접이었기에 정말 많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지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또 이렇게 각자의 능력을 까놓고 비교하다 보니 '나는 어떤 부분에서 강점이 있어 보였기에 여기에 뽑혔을까?' 하는 고민을 잠시나마 했었던 것 같다.


그날 회의가 끝나고 나서도, 촬영을 마치고 완성본을 보면서도 한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21살 개발협력 분야에 대해 꿈이 생기면서부터 국내에서 유일하게 공적개발원조를 담당하는 기관에서 인턴십을 하기를 꿈꾸며 4년간 끊임없이 노력했는데.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던 이 분야,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약간은 불안한 마음이 계속 들었고 그래서인지 업무에 집중도 잘 안되고 평소 안하던 실수도 했다.


그래서 집에 오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면접관들은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나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분명 나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아직도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게 외국어 실력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겠지.

아니면 정말 수치화로 했을 때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이 나였을 수도 있고.

근데 무엇이 되었든 어쩌면 더 중요한 건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아니었을까.


하우스가 캐머런을 뽑은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남들보다 특별한 스펙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그는 그녀가 '뭐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캐머런은 팀에서 꾸준히 성장하며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나도, 그리고 우리도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각자의 이유로 선택받았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결국 우리는 해낼 사람들이라는 것.


엄청 고군분투 하는데 미숙하고 에너지만 있고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중인 신입 인턴이지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는 스스로를 증명해 낼 것이다.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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