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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 명함이 무겁네요

어른 되기, 아직 로딩 중

by 민써니

명함 하나 생겼을 뿐인데


나 이제 학생 아니야?

4월 11일, 첫 출장을 앞두고 명함을 받았다.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명함이라 기쁘고 설렜다. 이제 나도 어디 가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공적 개발원조를 다루는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 소속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 꽤나 뿌듯했다.


"명함 주고받는 거, 드라마에서나 보던 사회인의 모습인데? 나도 이제 그거 할 수 있는 거야? 대박! 근데 그럼 나 사회인 된 거야? 학생 아닌 거네…? 내가 사회인이 되는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그런데 신나기만 했던 기분은 금세 가라앉았다.
그리고 마음 한 켠이 묵직해지는 걸 느꼈다.


그동안 ‘학생이라 아직…’이라는 말 한마디면 미숙함도, 실수도 너그러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실수도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다. 어쩌면 이 기록은 미래의 실적과 연결될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 나는 인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누구나 처음은 서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학생’이라는 보호막이자 핑계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었다.
그래서일까, 인생 첫 명함 한 장이 꽤 무겁게 느껴졌다.


최근엔 알고리즘이 떠준 IU의 <팔레트>를 듣다가 문득 놀랐다.
그 노래에서 말하는 “I’m 25”가, 이제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만 나이로는 24살이지만, 한국 나이로는 25살.


대학교도 졸업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밀려왔다.

“나 정말 사회인이 된 걸까? 엄마는 26살에 결혼했다던데… 나는 지금 애인도, 직장도,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는데.”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쩔 때는 내가 참 어른스럽게 느껴지다가도, 어쩔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같은 내가 사회라는 거대한 세계에 툭— 던져진 느낌이 든다. 어른이 되기 위한 ‘로딩 중’인 듯한, 그런 기분.


지금 잘하고 있잖아. 뭐가 무서워?
네가 눈이 높아서 그런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늘 나를 응원해준다.


복수전공에 4점대 학점, 30개 넘는 대외활동, 4년 넘게 한 봉사, 교환학생, 그리고 지금은 공공기관 인턴.
또는 그냥 ‘너 자체가 의미 있는 사람이야’라는 말까지.

고맙고, 위로가 된다.


하지만 사회에서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과연 나를 그렇게 봐줄까?


요즘은 인턴이 끝난 후의 일을 고민하다가 외국계 광고대행사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나를 그저 지방대 문과생, 이것저것 해본 건 많지만 경력이 없는 평범한 취준생으로 보지 않을까?”


그런 시선이 때론 날 아프게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평가이기도 하다.
가끔은 그런 시선을 견디며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학생 때보다 더 좋은 점도 많고, ‘취준생’이라는 타이틀 속에서 보호받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일례로 인턴으로 일하면서는 적당한 책임감 안에서 직무와 조직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고, 취준생으로 지낼 때는 자유롭게 기업을 찾아보고 면접과 서류 후기를 살펴보며 나와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러면서 나를 더 잘 알아가는 시간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문득 이런 말을 전하고 싶어진다.


혹시 당신도 지금,
자신의 첫 명함을 받고 혼란스럽거나,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하는 기분이 들고 있다면

괜찮다고, 그 감정도 충분히 괜찮은 거라고.


우리 모두 처음엔 서툴고 불안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씩 해내며,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보다 먼저 그 감정을 겪어본 ‘내 안의 나’는 이미 그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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