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의 비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세인이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우선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몇 번을 해도 질리지가 않고, 진짜 꼭 하고 싶은 말 “사랑한다”라는 말이야. 엄마는 너를 낳기 전까지 “사랑”이라는 말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 같아. 내 몸을 다 주어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너를 통해서 알게 되었지.
너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의 가슴을 졸였던 아이였단다. 엄마가 늦은 나이에 너를 임신한 탓도 있었지. 아마 그게 가장 큰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건강에 대해서는 늘 자신만만했었거든.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져 본 적도 없고, 늘 운동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건강한 아이를 낳을 꺼라 생각했어.
그런데 병원에서는 너에게 다운증후군 증상이 보인다는 말을 하더라. 그래서 엄마한테 물었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때 양수검사를 하면 조금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말을 해 주시더라. 너무나도 당황스러웠어. 이런 이야기를 전화로 한다는 게. 엄마한테는 엄청난 일인데, 그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자신의 일을 하는 것뿐이라는 말투였어.
그 전화를 받고 엄마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더라. 너무나도 화가 나면서 당황스러우니 눈물밖에 안 나더라고. 엄마의 이런 모습을 보신 사장님은 나에게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으시더니 힘들 텐데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 하셨어. 벌써 그때가 7년 전의 일인데, 엄마는 그때 그 시간, 엄마가 입었던 옷, 그리고 사장님의 말투까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는구나. 모든 것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대로 멈춰져 있던 그날이었지.
집으로 돌아가 양수검사라는 것을 검색해 보니 좋은 이야기보다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검색이 되더라. 아마 엄마의 심정이 그랬기 때문에 유독 그런 글들이 마음에 남았나 봐. 양수검사를 했다가 양수가 세서 엄마와 아이가 잘못되었다는 글을 읽고는 엄마는 양수검사라는 것을 선택할 수가 없었어.
내가 원해서 가진 너인데 엄마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가 너를 지울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어. 그건 엄마가 결정할 일이 아니었어. 혹시나 양수검사를 해서 네가 다운증후군이라고 판정이 난다한들 내가 어떻게 너를 지울 수가 있겠니. 그래서 엄마는 양수검사를 받지 않기로 했단다. 그리고 네가 어떤 모습이건 너는 내 딸이고, 내가 사랑해야 할 아이라는 것이지.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더라. 그리고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까지 이 사실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단다. 혹시 외할머니나 이모들이 알게 된다면 너를 지우라고 할까 봐... 엄마도 연약한 사람이기에 그렇게 되면 흔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았어.
이런 엄청난 비밀을 엄마 혼자 가슴속에 넣고 있었는데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아무한테도 이야기할 수가 없어서 교회에 가서 혼자 엄청 울면서 기도했단다. 그 전에는 가끔 생각날 때만 갔던 교회인데 네가 잘 못될 수도 있다고 하니 정말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었어. 내가 하나님이어도 엄마를 보면서 참 염치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 꼭 무슨 일만 생기면 와서 부탁하는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는데, 그때는 염치고 뭐고 없었어. 그냥 너를 놓고 엄마는 눈물로 기도 했단다. 한 번도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나 아닌 너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더라. 너만 생각하면 왜 이렇게 눈물이 났는지... 정말 무슨 사연 있는 여인처럼 그렇게 교회에 가서 울며 기도했단다.
“하나님. 이 아이만 건강하게 태어난다면 저의 남은 인생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 아이만은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 주세요. 아파도 제가 아프게 해 주시고요. 어딘가 잘못돼도 이 아이가 아닌 제가 대신 잘못되게 해 주세요.”
이렇게 눈물로 기도하면서 나는 저절로 모성애 가득한 엄마가 되어갔던 것 같구나. 병원 갈 때마다 “어디가 안 좋은 것 같아요.”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 초음파 사진을 찍어도 등을 돌리고 있거나 발바닥 사진밖에 찍을 수가 없어서 그것도 엄마의 애를 태운 것 중에 하나였지. 네가 태어나던 날도 엄마는 잊지 못한단다. 예정일보다 한 달 정도 빨리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건 네가 갑자기 태동이 없어서였어.
그 전날까지 태동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니 네가 좀 이상한 것 같다고 하더구나.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오라는 말에 엄마는 병원 주위를 돌면서 제발 아무 일 없기를 기도했단다. 그리고 다시 검진을 받았는데도 네가 움직이지 않는 거야. 선생님은 계속 이상하다..라는 말만 하고는 엄마한테 또 운동을 하고 와서 다시 한번 해 보자는 말을 하셨더랬지. 그때부터는 엄마도 마음이 이상하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 콧물 범벅을 하면서 병원 밖을 돌았던 것 같아. 결국 다시 해도 너는 태동이 없었고, 또 1시간 정도 걷기 운동을 한 후 세 번째 검사를 했는데, 선생님이 그냥 바로 수술하자고 하시더라.
그렇게 너는 태어나는 날까지 엄마의 가슴을 졸이며 태어났단다. 그런데 너는 그런 엄마의 마음 졸임과는 상관없이 아주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얼마나 감사했던지... 이미 너는 그때 엄마한테 해야 할 효도는 다 했다고 생각해.
네가 태어나서부터 엄마는 모든 것이 바뀌었단다. 엄마는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리고 엄마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면 엄청 힘들어하는 사람이었지. 그런데 육아는 계획이라는 것이 없더라.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서툰 육아로 너와 하나하나 맞춰나가는 게 쉽지 않았어.
잠투정하는 너를 업고 동네를 하염없이 돌기도 하고, 어느 날은 이유 없이 우는 너와 함께 큰 소리로 울기도 하는 그런 미숙한 엄마였지. 네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라서 그냥 밤새 네 옆에서 낑낑댔던 엄마였어. 말이라도 통했으면 어떻게라도 했을 텐데 말도 통하지 않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엄마는 너를 어르고 달래려고 아기띠에 싸서 엄마 몸을 흔들면서 너를 달랬던 것 같아.
엄마의 이런 모습을 쇼윈도에서 봤을 때 엄마도 깜짝 놀랐던 적도 있었어. 길거리에서 아이를 업고 다녔던 동네 아줌마의 모습이 딱 거기 있더랬지. 화장기 없는 얼굴. 편안한 복장. 아이를 둘러맨 모습이 영락없이 ‘나는 아줌마가 되더라도 절대 저렇게 하고 다니지 말아야지’했던 그 모습이었어.
그때는 그 모습도 왜 이렇게 싫었던지... 누가 볼까 잽싸게 집으로 뛰어 들어왔던 기억이 있구나. 엄마는 그렇게 철없던 엄마의 모습에서 너와 함께 성장하는 엄마가 되었단다. 너를 통해서 진짜 사랑이라는 걸을 알게 된 것 같아.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하잖아.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더라.
엄마는 너라는 한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그때부터 다른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네가 태어나고 한 달 뒤‘세월호’ 사건이 터졌는데 그때 엄마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호르몬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겨우 엄마 된 지 한 달된 나도 이렇게 슬픈데, 그 아이들의 엄마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며 이해하게 되었지. 그전에는 수많은 사건 중에 하나였던 것들이 이제는 엄마 일처럼 마음이 아프더라.
엄마가 또 네게 감사해야 할 일이 있어. 실은 엄마는 외할머니랑 관계가 불편했어. 외할머니가 말을 좀 직설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잖아. 그게 엄마한테는 참 힘들더라고. “엄마는 나랑 맞지 않아.” 이렇게 엄마는 오해도 했었어. 그런데 너를 키우다 보니까 알겠더라. 외할머니의 마음을...
네가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정말 너에게는 뭐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인데... 외할머니가 엄마를 바라보는 마음도 똑같은 마음이 아닐까? 엄마도 외할머니의 딸이잖아. 엄마가 엄마 되어보니 알겠더라고. 엄마의 마음은 다 똑같다고... 표현 방법이 다를 뿐이지 그 마음은 다 똑같다는 것을 엄마는 너를 키우면서 알겠더라고. 엄마한테 너는 정말 귀한 딸이잖니. 할머니도 그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어. 그리고 외할머니의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외할머니도 여자로서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이해가 가더라.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사고를 당해 장애를 입었고 남편 대신 일을 해야 했던 외할머니 셔. 종갓집에 시집와서 딸만 셋을 낳는다고, 또 사람이 잘못 들어와서 아들이 다쳤다는 오해를 받은 외할머니는 시어머니한테 얼마나 많은 구박을 받았는지... 그 모습을 엄마도 어렸을 때 봤으면서도 엄마니까 더 이해 못했던 것 같아. 그랬던 외할머니가 큰 딸인 엄마한테 기대했던 것도 많았을 텐데 엄마의 기대에 늘 반대로만 나갔던 딸에게 어떻게 고운 소리가 나갈 수 있었겠니..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겠더라고. 이른 결혼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엄마보다 훨씬 더 어렸던 외할머니를 엄마가 참 많이 속상하게 했던 것 같아.
너무 늦지 않아서 엄마는 늘 감사하고 있단다. 엄마가 외할머니한테 더 잘해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엄마가 뭔가를 해도 다 갚을 수 없을 것 같아. 엄마가 너를 키워보니 알겠더라. 내 것 다 줘도 아깝지 않다고. 줘도 줘도 또 주고 싶고, 줄 수만 있다면 엄마의 심장까지도 꺼내 줄 수 있다는 것을 너를 통해서 알게 되었어. 그리고 엄마도 그렇게 사랑받고 있는 귀한 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려고 해. 엄마는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니까...
이제는 처음 엄마가 너를 놓고 기도했던 것들을 지키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엄마의 남은 인생을 쓸까 해. 이렇게 생각하게 해 줘서 고마워. 다 네 덕이야.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너도 이 글을 읽고 네가 얼마나 귀하게 태어났는지 알게 됐지? 살다가 네가 진짜 힘들 일이 있을 거야. 그때 너의 탄생 스토리를 생각하렴. 네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너의 탄생으로 인해 한 여성이 자신의 남은 인생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할 만큼 너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진짜 사랑한다. 내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