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선택한 것을 해 나가는 용기가 필요해
나의 귀요미 딸. 할머니와 치과에 가서 앞니를 뺐더구나. “엄마! 나 이상하지 않아? 나는 내가 웃겨!”하며 귀엽게 사진을 찍어서 보낸 너. 엄마는 말이야. 너의 어떤 모습도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여.
유치가 빠지는 시기에 네 모습은 정말로 귀엽단다. 그 나이 때에만 할 수 있는 거잖니. 엄마는 어렸을 때 할머니가 흔들리는 이에 실을 매어서 빼줬어. 그게 엄마한테는 큰 트라우마로 남아서 지금도 치과에 가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단다. 그런데 너는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고 잘 다녀왔다는 말에 네가 나보다 훨씬 더 용감하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용기”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않는 기개 _(네이버 사전)라고 하는구나. 그러고 보면 엄마는 치아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는 용기가 없는가 보다. 어렸을 때 그 기억이 아직도 몸을 움츠리게 하는 걸 보면...
살다 보면 용기 내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물론이고, 또 요즘에는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살다 보면 저절로 느껴지게 된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 제목. 정말 잘 짓지 않았니?) 이 책에서 가르쳐 주는 몇 가지가 있는데 엄마가 네게 하고픈 말하고 연관되기 때문에 참조해서 말해볼게.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잘 보이면서 살 필요는 없어. 때로는 내 생각과 그의 생각이 맞지 않아서 다투기도 하지. 다투는 게 싫어서 상대방을 맞추면서 살 필요가 없어. 이런 것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이지 네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네 모습 그대로를 좋아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돼. 그러니까 네가 싫어하는 것까지 하면서 그 사람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관계에 있어서는 ‘미움받을 용기’가 말 그대로 필요한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엄마의 생각에 반기를 든 부분이 있었단다. “트라우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지. 아들러의 주장에 따르면 과거의 사실보다 과거에 대한 의미 부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과거를 바꿀 수 없다고 해서 현재의 내 모습, 미래의 내 모습마저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내가 과거에 어떤 의미를 주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현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실질적으로는 내가 나의 두려움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과거의 한 사건을 핑계 삼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든지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나의 선택이었고, 거의 40년 전의 사건을 핑계로 삼는 내가 어린아이와 같이 느껴지더라.
이런 말은 정말 많이 들었지만 내 삶에 적용해 보지 못한 것 같구나. 아직도 나의 발목을 잡는 옛 기억들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더라. 어릴 적 젊은 부모들의 싸움을 자주 봤던 것도, 친정엄마의 삶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것도, 유독 엄마의 우는 얼굴을 자주 봤던 것도, 너희들 땜에 내가 참고 산다는 말이 내게는 트라우마처럼 남은 것 같다.
지금은 두 분 사이를 힘들게 했던 주변 환경이 바뀌니 사이가 좋아지셨다. 그때 당시 용기 내지 않으셨던 친정엄마 덕분에 두 분은 그래도 괜찮은 노후를 보내고 계시는 것 같구나. 이런 거 보면 용기는 언제 내야 하는 것인지 엄마도 잘 모르겠다. 확 뒤집어엎는 것이 용기인지, 그래도 꿋꿋하게 버티는 것이 용기인지 삶에 있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외할머니의 용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장남에게 시집와서 딸만 셋을 낳았다는 이유로도 구박받았고,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사고로 장애를 입게 된 것도 사람이 잘 못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다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버틴 용기. 일찍 결혼한 탓에 어린 시동생들이 줄줄이 있었지만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뒤치다꺼리를 했었고, 얄밉게 시어머니 편에서만 말하는 시누이 셋을 다 견디었던 용기, 하나밖에 없는 동서가 아들을 낳았다는 이유로 명절날 늦게 와도 용서가 되었던 그 시대에 참을 수밖에 없었던 용기.
지금 생각하니 외할머니는 정말 용기 있으신 분이었구나를 깨닫게 되는구나. 엄마 같았으면 절대로 참지 못했을 것 같고, 몇 번이나 뒤집었을 것 같다. 할머니를 보며 용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꼭 위험한 것에 과감히 뛰어드는 것만이 용기가 아닌 것 같다. 남들은 다 아니라고 해도, 본인이 선택한 길에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도 용기다. 어린 딸들 시집보내는 게 걱정돼서 차마 포기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견디신 게 할머니의 용기였다고 생각한다.
너도 살면서 정말로 용기가 필요할 때가 많을 것이다. 할머니의 사례를 보면서도 나라면 절대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 하며 용기 내겠지. 엄마도 마찬가지야. 엄마도 몇 번은 뒤집었을 것 같구나. 하지만 엄마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용기는 남들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선택한 것을 해 나가는 용기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분명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할 거야. 사람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미워하거나 싫어할 수가 있거든.
처음에 엄마가 말했지? 다투는 게 싫어서 타인과 맞춰가며 살 필요가 없다고! 설령 그게 엄마라도 말이야... 진짜 네 삶에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엄마도 엄마 삶에 용기 내서 잘 살아볼게.
우리의 삶에 용기 내어 살기를
바라는 엄마가
PS. 이 글을 쓰고 보니 정말로 엄마의 삶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구나. 엄마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이해해 주렴. 엄마도 큰 용기를 내는 거야. 삶에 대한... 나중에 네가 커서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분명 있겠지만 그때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잔소리한다고 할까 봐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