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부 깜지
깜지는 늘 엄마의 발치에서 잤다. 엄마가 잠결에 움직여서 건들기라도 하면 입을 다문 채로 아주 작고 낮게 으르릉 하고 소리냈다. 짜증내는 것 같지는 않았고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래도 자리를 옮기는 법은 없었다. 하룻밤새 몇 번씩 채이면서도 깜지는 항상 엄마 발 옆이었다. 침대 소파 할 것 없이 엄마가 있는 곳 끄트머리에는 늘 깜지가 있었다. 나는 엄마가 깜지를 확 쳐서 떨어뜨리면 어떡하나 무서웠다. 기우였다.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깜지도 침대가 있었다. 2003년 6월 23일 저녁에 깜지는 아빠와 함께 집에 왔다. 엄마는 느닷없이 강아지를 데려가고 있다는 아빠의 연락을 받고 마트에서 깜지 밥과 침대를 사왔었다. 깜지의 첫 침대는 작고 둥글었다. 그 때는 깜지도 작았다. 작은 깜지는 자기 침대를 물어뜯고 뒤흔들고 파헤치고 앙냥냥 씹어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침대의 기능을 잃었다. 이후로 깜지는 쭉 엄마의 발치에서 잤다.
깜지의 마지막 침대는 봉봉인지 본본인지 하는 멋진 이름을 가진 침대였다. 나이가 들어 허리가 아픈지 더 이상 침대에 올라가지 못하게 됐을 때 샀다. 침대와 소파 옆에 놓인 계단을 깜지는 이용하지 않았다. 깜지가 조금 더 어리고 건강할 때 슬개골탈구 방지용 매트니 디스크 방지용 계단이니 하는 것들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생각한다. 침대라도 좋은 걸 쓰게 하고 싶어서 허리에 좋다는 문구를 보고 언니를 졸라 샀던 침대였다. 그마저도 얼마 쓰지 못하고 깜지는 담요 생활을 하게 됐다. 엄마 발에 채여 떨어질까 걱정했던 그런 일은 작년 8월 28일 저녁, 깜지가 혼자 있을 때 생겼다.
깜지가 넘어지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엄마가 침대 옆에서 경련하고 있는 깜지를 처음 발견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넘어졌는지, 넘어진건지,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평소 10cm가 채 되지 않는 높이의 침대에서 두 발을 모아 낮게 점프하며 내려오는 깜지를 보고 귀엽다고 웃기만 했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늙어서 인지가 떨어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주변에 매트를 깔아줄 생각을 못했다. 발 털을 잘라줄 생각을 못했다. 발톱을 잘라줄 생각을 못했다.
멋진 이름의 침대는 곧바로 버려지지는 않았다. 한 번 일어난 사고일테니까, 앞으로 잘 봐주면 되겠지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 날을 기점으로 깜지는 밤에 혼자 일어나 소변을 보러 나오다가 경련했다. 햇빛이 예쁜 낮에 창가에 가려 거실을 가로질러 걷다가 경련했다. 밥을 먹다 경련했다. 잠을 자다가 경련했다. 침대는 치워졌다. 그 자리는 낮게 쌓아올린 담요가 대신했다. 깜지는 이제서야 떨어질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