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_세심한 따뜻함

by 피터

by 퀴어씨네클럽

쾌활한 성격에 친구들과 사이가 좋고, 가족과도 화목해 보이는 고등학생 주인. 영화는 주인이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성범죄에 관한 내용들이 은연중에 떠오른다. 아무 정보 없이 보라던 사람들의 당부를 듣고, 그저 주인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는 갑자기 마음이 아리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제발 아니기를 바랐지만, 주인이는 성범죄 피해자였다.

셰계1.jpeg 영화<세계의 주인>에서


영화는 이런 나를 한방 먹이는 영화였다.


결국 주인이가 성범죄 피해 사실을 학교에 밝히고 친구들의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처럼, 나도 그 시점 이후로 주인이를 다르게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의도가 나쁘지 않을지라도, 마음 아프고 가엽게 본 것만은 아닌지 반성이 되었다. 수호가 적었던 서명 용지의 문구처럼 그들을 단편적으로만 판단한 것이다.


물론 아물기 힘든 깊은 상처일 것이다. 주인이도 결국엔 엄마에게 아프다고 소리치며 운다. 다만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함부로 판단하고 말할 것은 아니다. 주인의 학교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성에 집착하게 된 것이 아니냐고 편견을 내뱉고, 주인의 엄마 태선이 운영하는 유치원 선생님은 어린 시절 끔찍한 일을 겪은 아이들은 큰 영향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당사자를 걱정한다는 마음으로 한다는 이런 말들은 오히려 그들의 상처를 깊게 만들 뿐이다. 그런 시선들로 학생 시절 누구나 부리던 변덕과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성범죄 트라우마가 돼버린다.


주인이는 그냥 고등학생일 뿐이다. 성범죄 피해자는 불행하고 인생이 망가졌을 거라는 편견에 맞서 오히려 씩씩한 주인이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성을 만나는 게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에도 보란 듯이 긴 키스 장면으로 맞선다. 우리는 누군가를 너무 쉽게 판단하고 함부로 의견을 얹는다.


모두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영화에는 좋은 남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이를 아끼는 태권도장 원장님부터 무해해 보이는 주인의 학급 친구들, 그리고 누나에게 온 편지를 숨긴 동생 해인이까지. 젠더 갈등이 극에 달하는 지금 보면 판타지로 느껴질 정도이다. 나는 N번방, 딥페이크, 수없이 많은 몰카들 그리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나아가 그것을 소비하는 남자들을 보며 남자임에도 남자에 대한 혐오감이 있다. 그런 끔찍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제육볶음이나 볶아오라는 여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외쳐댄다는 요즘 남학생들이 아닌 주인이와 아무렇지 않게 투닥거리는 무해한 남학생들로 주인이의 친구들을 묘사한다. 그저 남자에 대한 불신으로 주변 남성 인물들이 주인에게 상처를 입힐까 노심초사하던 나는 머리가 띵해졌다. 마지막 쪽지의 목소리도 여성과 남성 친구의 목소리들이 번갈아서 들린다. <세계의 주인>은 싸우고 부수려는 영화가 아니라 세심하고 따뜻한 영화였다.

세계2.jpeg 영화<세계의 주인>에서


이처럼 영화는 여러 부분에서 다정하고 사려 깊다. 범죄자를 변호하는 변호사 외에는 직접적으로 나쁜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 굳이 사건을 재연하지도 않는다. 그저 피해자들이 살아가는 일상과 문득 찾아오는 아픔 그리고 서로 지탱해 주는 것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저 단순하게 서로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단순한 다정함은 아니다. 우리의 사소한 한 마디와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불편함을 주는지도 보여준다. 그리고 소위 사이다 엔딩이나 모두 함께 모여 사이좋게 웃으며 끝나는, 그런 흔해 빠진 엔딩을 선사하지 않는다. 그저 주인이가 교실로 돌아가 극 초반처럼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게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성범죄가 아닐지라도) 수많은 피해자들이 우리 주변에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함부로 판단하는 것, 그것이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하지 못했던 나에게, 다정함으로 포장하여 쉽게 동정을 표하던 나에게 큰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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