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_좋은 영화

by 도롱

by 퀴어씨네클럽

<세계의 주인>은 정말 좋은 영화다. ‘웰메이드 영화’라는 말이 있지만, 이 작품만큼은 그저 ‘잘 만든’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한, 말 그대로 ‘좋은 영화’다.


영화 속에는 감독이 심어놓은 사려 깊음이 가득하다. 그 사려심은 이 영화라는 밭에서 잘 자라나, 주인을 지켜주는 수호신들이 된다. 그리고 어느 인물도 ‘주인의 세계’ 안에서는 소외되지 않는다. 영화에는 모두를 품으려는 따뜻한 배려심이 있다. 그 세계 속에서 주인은 밝고 쾌활하게, 무럭무럭 자란다.


세계4.jpeg 영화<세계의 주인> 에서

주인의 친구들과 가족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녀를 위한다. 때로는 그 선의가 주인을 아프게 하지만, 그 마음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 주인도 그것을 알기에, 깨질지언정 무너지지 않고, 다칠지언정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의 세계를 응원하게 된다. 주인의 세계가 더 단단하고 견고해지기를.


이 영화의 사려심이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주인을 비롯한 인물들이 서로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닿는다면, 각 세계 속 주인들도 자신만의 세계를 잘 지키며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좋은 영화를 나는 친구과 가족에게 추천할 수 없다. 이 모순적인 말을 하는 나 자신이 싫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영화가 전하는 선한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담기 위한 ‘소재의 고통’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그 소재는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자극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나의 세계 속 사람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말미에 자신을 끝내 밝히지 못하는 편지의 주인처럼 말이다. 그에게 이 영화를 추천할 수는 없다.


모두가 입을 모아 극찬하는 세차장 장면은 정말 놀라웠다. 감정의 파고가 그대로 밀려왔고, 주인과 엄마의 관계를 넘어 그들의 사연까지 느껴졌다. 엄마가 자신을 구해주지 못했다는 비극. 당사자가 아님에도 그 당시 상황이 선명히 그려졌다. 그 감정이 너무도 생생해서, 가슴에 감정의 생채기가 남을 정도였다. 나조차 버거웠는데, 만약 당사자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어쩌면 나는 예민한 관객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세상에 이 좋은 영화가 널리 알려지길 바라면서도, 정작 주변 사람들에게는 권하지 못한다. 추천할 수 없는 좋은 영화. 내게 그런 영화가 존재할 줄 몰랐다. 그리고 그 이유를 완전히 설명할 수도 없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감상을 위해 영화에 대한 것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 부탁을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추천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이 영화는 부디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세계3.jpeg 영화<세계의 주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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