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도롱
내가 살던 고향에도 서쪽 마녀가 있었다. 명절이면 친척들은 한목소리로 그 마녀를 탓했다. 나라 꼴이 이 지경이 된 것도, 경제가 기울기 시작한 것도 모두 그 마녀 때문이라고. 엄마와 택시를 탈 때면 택시 기사는 한숨과 함께 또 그 마녀 이야기를 꺼냈다. 손님이 없는 이유도,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세상이 불안한 것도 결국 그 마녀의 책임이라고 했다.
텔레비전에서도 마녀에 대한 끝없는 비난이 흘러나왔다. 정치 프로그램, 시사 토론, 속보 자막까지 모두가 그를 향해 있었다. 실수 하나에 물고 늘어져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압력을 키워갔다. 언론, 검찰, 정치, 대중이 하나가 되어 그의 퇴정을 바랐다. 그 힘은 대단했다. 그가 마녀임을 진짜로 믿는 사람들의 믿음은 더욱 거세게 그를 몰아쳤다. 그럼에도 그를 지켜려 했던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즈의 글린다와 피에로처럼, 본질을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가까스로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임기가 끝난 뒤 세상의 분위기는 더 잔혹해졌다. 어느 진영도 예외 없이 그를 향해 돌을 들었다. 마치 바통을 넘기듯 정치권이 저마다 책임을 그에게 떠넘기면, 언론은 매일 새로운 의혹을 던졌다. 검찰의 수사선은 점점 좁아졌고, 그는 점점 더 구석으로 몰렸다. 결국, 아무런 마법도 보호도 남지 않은 그는 봉하의 작은 마을에서 스스로 생을 접었다. 내게 서쪽 마녀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학생 시절의 나는 세상에 무지했다. 주변의 말들, 방향이 정해진 뉴스 제목만으로 그의 면모를 판단했다. 뒤늦게 그의 기록과 연설, 인터뷰를 찾아보며 비로소 알게 됐다. 기득권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 고졸 변호사라는 비주류 출신으로 견고한 불의의 구조를 흔들려 했던 사람, 언론의 왜곡된 틀에 갇혀 공과가 온전히 드러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진정성은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많은 사람에게 닿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그 사실이 내 마음속에 오래된 부채감으로 남아 있다.
엘파바 역시 말 잃은 동물들을 돕기 위해 행동했지만, 사람들은 그 선의를 보지 못했다. 그녀의 모든 노력이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으로 덧씌워졌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믿는 단 한 사람, 글린다에게 세상을 맡기고 조용히 사라짐을 택한다. 감당해야 할 짐을 홀로 짊어지고 세상을 떠난 노무현 대통령처럼.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다져 놓은 토양 위에서 시민의식과 민주주의의 씨앗들이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는 것이다.
난 왜 제때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왜 나는 늘 영웅의 마녀사냥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일까?
왜 한참 지난 뒤에서야 그 진실을 깨닫고 부채감을 가지는 걸까?
지금도 세상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누군가를 띄우고, 또 다른 누군가를 떨구는 반복된 장면을 생생히 목격한다. 그 마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정교해지고 있다. 이제는 나 스스로 눈을 들고, 진짜 목소리를 알아보는 힘을 길러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정의를 향해 걸었던 누군가가 어둠 속으로 밀려나는 장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