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일상⑦〉비 오는 날의 캐디

by 최선근

〈캐디일상⑦〉비 오는 날의 캐디



비 오는 날의 골프장은
어딘가 더 조용해진다.


기계 소리도, 사람들 목소리도
잔잔한 빗소리에 덮이고,
그 사이로 나는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듣게 된다.


그날 라운드를 할지 말지
결정을 망설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단순히 ‘돈’이 아니라
‘휴무의 의미’와 ‘시간의 가치’가 담겨 있다.


그래서 어떤 팀은
“대충이라도 칠까?” 하고 가볍게 나서고,
어떤 팀은
“비가 와도 제대로 하자”며
진지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경기가 시작되면
우비를 입어도 신발과 양말, 장갑이 젖는다.
몇 시간 동안 젖은 발은 간지럽고 불편하다.
클럽은 미끄럽고,
카트는 습하고,
풍우막 위로는 빗물이 뚝뚝 떨어진다.


몸은 더 고되고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진다.
하지만 받는 돈은 그대로다.
이것이 비 오는 날의 캐디,
그 자체다.


골프는 날씨의 운동이다.
날씨가 흐리면
사람의 감정도 천천히 느려진다.
티샷의 쾌감도, 퍼팅의 아쉬움도
빗속에서는 조금씩 무뎌진다.


공은 빗방울에 가려 정확히 보이지 않고,
퍼팅 그린은 물기로 인해
공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럴수록 나는 더 조심스러워진다.
평소처럼 거리와 낙구 지점을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는 내 루틴을 흔든다.
완벽을 추구하던 나의 방식에도
조용히 금이 간다.


말수도 줄어든다.
손님도, 캐디도
말보다 함께 고생하는 시간에 집중한다.


사실,
비 오는 날의 골프장을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날에는
말보다 더 조용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캐디의 눈치를 보지 않게,
나는 최대한 묵묵히 일에 집중한다.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기분 상하지 않도록.
그 흐름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것—
그게 내 몫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날이,
내가 사람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7화.JPG

“이 글은 시리즈 〈캐디일상〉 중 일곱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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