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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허로이 Mar 12. 2024

듄,

그 밖의 사용기

; 이하는 영화 후기가 아닙니다.


희한하게 시험기간만 되면 소설책을 읽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학교다닐 때만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기괴한 버릇은 회사를 다니는 중에도 여전하다. 일이 주기적으로 쌓이는 시기가 있는데, 그걸 뻔히 알면서도 이때만 되면, 도서관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느라 그렇게나 열심일 수가 없다. 그 정성으로 일을 빨리 끝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나라고 안 해 봤을 리가.


<듄>을 기다린 이유는 순전히 감독 때문이다. 뵐뇌브 감독의 프로필 사진은 볼 때마다 웃음이 지어진다. 팬심이라기보다는 외모에서 연상되는 분위기와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영상이, 연출이, 상당히 반전으로 느껴져서다. 사실 소설 듄은 아주 예전에 읽다가 말았는데, 이 감독의 시카리오를 숭배(?)했기에 애써 다시 한번 소설도 읽어가며 다소 꾸역꾸역 따라가는 중이다. 그런 내게 누군가, 뭐 그렇게 까지 할 필요 있느냐고 묻길래, 좋아해서 그런다고 대답해 줬다. 당시에는 그저 생각나는 대로 한 대답이긴 했는데, 곧이어 마음 가득 나만 아는 내적 뿌듯함이 풍선처럼 커다랗게 차올랐다.


예전에는 이 버릇을 고쳐야 할까를 고민한 적도 있다. 굳이 바쁠 때 무리한 선택을 함으로써 일을 잘 못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하지만 이 생각은 그저 생각에서만 끝나고 전혀 행동으로 연계되지 않음을 자각한 후, 그저 받아들인 채 지낸다.


덕질 생활에는 특별한 생기가 있다. 하나에 온전히 마음을 쏟는 일은, 그 마음을 되돌려 받겠다는 기대를 걸고 하는 행위는 아니다. 내가 아무리 컨택트에 감동을 받아 테드 창까지 섭렵했다 한 들, 빌뇌브 감독이 그걸 알 리가 없지 않은가.


돈 받으니까 책임감으로 해야 하는 일도 있지만, 애쓴다고 밥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일부러 애정을 쏟으면, 도리어 그 곱절 이상으로 마음이 채워짐을 되돌려 받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빌뇌브 감독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보는 세상을 잠시 공유받아 볼 기회를 얻는다. 브런치의 글들도 내게 그런 다채로운 세상으로의 창이 되고 있다. 내 세상도 좀 더 열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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