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기
차로 출근하는 날. 단지 정문을 벗어나 50여 미터 앞에 삼거리에 섰다. 정면 바로 앞은 양방향 2차선 직선 도로가 있고, 내가 멈춘 곳을 기준으로 정면에 보행 신호, 그리고 직선도로 위, 내 왼편에 보행신호가 또 하나 있다. 이 길은 주로 단지를 이용하는 차들이 오가는 길이며 따라서 차량 통행이 적다. 문제는 그래서 사람이고 차들이고 종종 신호를 지키지 않는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대기 중인 내 뒤로 아주 진한 파란색 SUV가 붙었다. 한 달에 두어 번 마주치는 차다. 색상도 한국치고 드물지만, 바퀴가 내 차 문짝 크기다. 그 왜 차 문이 바퀴 위에 올라앉은 것 같은 인상의 차를 본 적이 있는가? 바로 그 차, 혹은 같은 차일 수도 있다?
지금은 동네 평균 출근시간대이지만 내 일상 평균보다는 늦은 시간이다. 약간 긴장도 된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짐작해 본다.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수고를 들이는 이유는 제발 예감이 틀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곧 정면에 있는 횡단보도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더니 붉은색이 떴다. 이어서 뒷 쪽 파란 차의 엔진소리가 커졌다. 호흡이 약간 더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 길은 양 방향으로 각각 일 차선 도로이기 때문에 맨 앞 차가 좌회전 대기인 경우, 뒷 차가 직선도로에 합류하려면 앞 차가 좌회전을 받아서 빠지는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나는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지만 그들 관점에서는 길막이를 '당하는' 중이다. 곧이어 직선도로 위, 나의 왼편으로 있는 보행신호가 녹색불을 켰고 사람들이 건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때는 직선도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던 차량이 들어오는 순서이며, 왼쪽으로 나가야 하는 내 차례는 아직이다. 이런 생각이 이어지는 중에, 예상대로 내 뒤에 섰던 그 파란 차의 바퀴가 내 뒤에서 움찔움찔하는 것이 백미러에 비쳤다.
이런 순간마다 내가 가장 바라는 장면은, 직선도로에서 많은 차들이 단지 쪽으로 줄이어 들어서는 것이다! 내 뒷 차가 중앙선을 넘는 얌체짓을 하는 순간, 바깥도로에서 이쪽으로 좌회전받아 지극이 정상적으로 들어서는 차들과 정면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이야! 보이진 않겠지만 그 순간에 그 자리에서 가장 크게 미소 짓고 있는 것은 나뿐이리라. 일 년에 한 번 정도만 목격할 수 있는 아주 진귀한 장면이다.
그런데 오늘은 대개 그러하듯 오는 차가 한 대도 없다. 이윽고 뒷 차는 중앙선을 넘어 아주 자연스럽게 내 왼쪽에 등장하는가 싶더니, 곧 내 앞을 가로질러 오른편으로, 직선도로에 합류하며 사라졌다. 이 모든 상황은 7초 안에 왔다가, 갔다. 심장이 마구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새해 첫날했던 결심, 운전하면서 화내지 말자는 더 이상 내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얼굴이 벌게진 채 생각했다. 아, 이게 시작이겠구나.
이후 출근길은 너무너무 피곤했다. 마치 여름밤, 막 잠들었나 싶은 순간, '앵~' 소리에 뇌리 속 형광등이 번쩍하듯, 그때부터 온통 내 신경은 도로 위에서 이런 모기 같은 차들에 무섭게 집착해 댔다. 지금이 무슨 채집, 수렵시대도, 목숨이 걸린 일도 아닌데, 주변을 살피면서 이런 차들을 발견하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을 쏟는 내 DNA의 기원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 문명사회에서 나는 왜 그런 것들을 굳이 굳이 찾아내서 스스로의 화에 기름을 붓는가.
한심한 노릇이다. 기껏 반나절 짜리 기억에 화를 키우다니. 근사하고 우아하게 운전하는 다른 많은, 아니 대다수의 차를 나는 왜 보지 못하고, 왜 늘 얌체족들에 시선을 꽂고 화를 내는 것인가? 이유를 찾고 싶어서 검색을 해 본 적도 있다. 표정 등을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차'와 같은 물체이기 때문에 화를 더 쉽게 낸다는 설명도 있고, 익명성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길 위에서 화내는 사람보다 화내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니 나도 운전을 해서 무사히 회사에 온 거겠지. 나도 후자이고 싶다. 오늘 퇴근길에는 D를 넣기 전에 삼세 번을 외쳐봐야지.
우아하게, 점잖게, 안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