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아침, 눈

by 허허로이

늦은 귀갓길. 눈발이 제법이다. 와이퍼를 켰다.

앞유리에 쏟아지듯 빠르게 박히는 흰 점점이들,

앞 차의 빨간 브레이크등이 깜박, 까아아암빡,

더하여 와이퍼가 일정 속도로 쓱싹쓱싹 쓱싹쓱싹 쓱싹쓱싹.

이 3요소는 함께할 때 완벽한 최면 유도제가 된다.


몽롱해지는 의식을 붙들려고 콩콩 머리도 두드려보지만, 채 일 분을 못 버틴다.

거듭거듭 실내 환기를 해보는데 남은 50여 킬로미터가 까마득했다.

음악 볼륨을 높이니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주변을 더듬더듬했다. 뭔가 씹을 거리가 있나. 껌은 없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는데, 쏘옥 손바닥에 작고 동그란 것이 잡혔다.


앗, 차거


불과 두어 시간 전 생면부지 타인이 건넨 귤이었다.

길 위에서 느닷없이 받은 호의.

처음 건네졌을 때도 이렇게 차가웠나. 아니었지.

손에 꼬옥 쥐고 있었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저 히터 꺼진 차 안에서 차가워진 것이다.

조몰락거려 대충 까고 절반을 급하게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상큼 달콤 시원한 귤즙이 목을 타고 흘러든다.

신맛이 명치 어딘가를 콕콕하더니, 금세 머릿속에 퍼졌다.

시야도 맑아졌다.

이후 집이 보일 때까지 남은 절반을 하나씩 떼어먹었다.


그리고 오늘.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데 간 밤의 눈이 꽤나 쌓였음이 보였다.

그리고 또 역시 인도는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울컥했다.

귤을 건네주고, 길을 미리 치우는 마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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