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기
며칠 째 초저녁부터 졸기 일쑤다. 급기야 9시 숫자도 못 보고 잠든 어제.
꿈속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다. 지상으로 가야 하는데 B3, B4 표시뿐이다.
어둡거나 혼자도 아니었는데, 갑갑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그저 서 있다.
조바심이 커지는데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비상구 계단 앞 의자에 짙은 회색 모자와 버버리를 걸친 사람이 앉아 있다.
한 다리를 올려 비상구 차단기로 쓰고 있는데, 평온한 표정이다.
길을 묻고자 다가서서 입을 열었는데,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자, 시킨 대로 약을 가져왔어."
동시에 작지만 뚜렷한 낄낄낄 낄낄낄이 귓가를 울렸다.
푸욱 하며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 동시에 탄식 같은 숨이 터지며 눈을 떴다.
악몽이었다.
눈을 뜬 채 겪어 내는 혼란, 미움, 분노, 좌절 등을 감당하느라 지쳐버린 뇌가 이렇게라도 해소하려 애쓰는 중인가 보다. 결국은 이른 새벽에 브런치를 펼치고 쓰기를 시작했다.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한 워딩이 화면 가득히 채워지는데 3분의 2 지점 정도에 도달하자 드디어 다음날 계획이 쓰이기 시작했다. 저녁 메뉴라든가 다음 주 친구와의 약속이라든가 날씨 걱정이라든가.
배경으로 틀어둔 음악이 끝나고, 알고리즘 자동재생을 따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식 영상이 떴다.
"... 언어라는 실을 따라 다른 내면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내면과 마주하는 것. 나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질문들을 실에 매달아, 그 실을 믿고 다른 이들의 자아에게 보내는 것."
가라앉았던 마음이 두 계단 올라섰다. 손 발이 따뜻해지고, 볼과 눈시울이 따뜻해졌다.
버릴 수도, 삭제나 편집도 할 수 없는 타이머을 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중에
한강 작가의 마음이 말을 건다. 그녀의 질문이 건너온다.
그 질문에 귀 기울이기 위해 책을 펼쳤다.
차마 용기가 없어 시작하지 못했는데.
"작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