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에도 불온했던 생각들
4월 1일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는 것에 아무런 감흥이 없다. 전보다 나아질 리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직후부터, 나는 기대를 버리는 법을 먼저 배웠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꿈을 꾸며 하루를 버텼지만, 결국 그것은 말 그대로 '꿈'일 뿐이었다. 인정하는 수순을 밟는 것이 조금 고달플 뿐, 머지않아 그 현실조차 무감각해지는 날엔 나는 그저 숨만 쉬고 있을 것이다.
데릭 로즈의 잦은 부상처럼, 무너지는 순간은 예고 없이, 그리고 너무나 자주 찾아온다. 왜 하필 나여야만 하는지, 왜 또 그래야만 했는지. 억울함에 가까운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하지만 결코 어딘가로 그 억울함을 내비치지는 못하겠다.
정처 없는 그 감정을 붙잡아 앉힐 줄 아는, 정말 '어른'다운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 이성적인 척해 보지만 결국 충동적이고, 감정이 전부라면 전부인 나는, 어쩔 수 없는 여자이니까.
1999
어제는 아침까지 잠들지 못한 채 유튜브를 헤매며 댑을 췄다. 오늘은 웃기지도 않게 90년대 가요에 취해 스페이스 A를 듣고, 스톰과 스티브 유를 듣는다. 쇼미더머니와 옹성우의 2017년은 하루빨리 소멸되길 빌고 또 빈다.
그래봤자 고통의 날은 점점 더 다가온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며 막으려 해도 안 되는 일이다. 끝도 없이 나락으로 빠지다가, 결국 덮쳐오는 익일에 순응하고 마는 삶.
어떻게든 1999년으로. 영화 <롤라 런>처럼 끊임없이 그 순간, 그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상상만이 나의 마지막 발악이자, 쥐어짜 낼 수 있는 유일한 긍정이다.
비 오는 날 극장에서
그날은 더운지도 몰랐는데 극장 안은 춥도록 에어컨이 나왔다. 몸에 꼭 맞는 가디건이 없어 반팔 차림으로 온 하찮은 인간은 입을 닫고 덜덜 떨다 가는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커피를 목구멍에 두 잔이나 때려 붓고 나니 조금은 괜찮아졌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빗소리가 잦아들 무렵, 두 시간 전에 펴놓아 그대로 굳어버린 책의 꼬락서니를 본다. 이것이 줄곧 의심해 오던 전두엽 손상과 ADHD에 대한 물증이 아닐까 싶다. 피로한 몸으로 잠들지 못하는 정신. 천둥과 번개, 미친 듯이 커지는 빗소리 탓에 시계는 벌써 세 시를 가리킨다. Sade를 들었다. 다시 내일 내릴 비를 떠올려 보아도, 몸은 여전히 괜찮아지지 않는다.
엮인다는 고통
누군가와 엮이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끈적한 점성이 몸에 닿는 기분이 들어서. 특히 그것이 좋지 못한 일로 얽히는 것이라면, 나는 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고, 영향을 받고 싶지도 않다는 말이다. 그냥 그랬으면 했는데 왜 이 지랄로 사는 거지? 아마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부분인 거지? 맞지?
제안
죄 없이 묶여있는 시골 마당의 개들을 모두 풀어주자. 대신 죄 많은 당신들을 그 자리에 묶어두자. 영역을 지키며 그 안에서만 조용히 살아가라고.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말고, 사람이면 제 주제를 알고 사람답게 살라고. 온 세상에 제안하고 싶다.
생각 1
불현듯 떠오른 생각들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해서, 두 번 다시는 꺼내지 않기로 다짐한다. 가끔은 내가 정말 미친 게 아닐까 싶지만, 응, 맞아. 그 무심한 긍정이 오히려 나를 숨 쉬게 한다.
생각 2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고쳐먹을 수 있는 마음을, 왜 나는 고집스럽게 쥐고 고통을 자초할까. 호되게 당하고 눈물을 쏟아야만 멈출까. 한심한 짓은 그만두고 일찌감치 수수방관하는 센스를 갖고 싶다. 그것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 3
결국 내 생각이 틀렸다는 진실과 마주한다. 이제 남은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순뿐. 뜬구름 같았던 마음은 결국 고쳐먹도록 설계되어 있고, 나는 그 설계를 따를 것이다. 정말, 잘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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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엔 EWF의 'September'를 들으며 좋아했는데, 이번 달엔 이용의 노래를 듣는다. 노답. 출근부터 퇴근까지는 트랩만 듣다가, 잠자리에 누우면 이즐리 브라더스와 미니 립튼을 듣는 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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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도 할 수 없는 이상한 걸 자꾸 이해하려 노오력한다. 그래 결국 다들 그렇게 미친놈이 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 오지는 부분들을 감당하는 것이 이제는 어렵기만 하다. 그저 앓고 앓다가 아물기만을 기다리는 게 오히려 속편 할 갓 같은데 그 대미지가 너무 커서 기다리는 게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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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랄 맞게 변하는 감정들. 사실 알 바 아니지 않나. 이제는 지껄이지도, 누군가의 앞에 서지도 못하겠다. 이해할 수 있는 지능과 용서할 수 있는 가슴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너무 멍청하고 나약해서 모든 것이 버겁고 느리다. 그 모든 것을 잊고, 잊을 수 있는 치매의 날이라도 아주 빨리, 코앞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대로 존엄사를 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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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버릇. 즉, 자체 필터링이 너무 심해서 가끔은 죄책감이 든다. 수준 이하의 말들을 견뎌야 하는 시간 동안,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 내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가장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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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원하는 게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는데, 이번 한 번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그렇게 큰 욕심일까. 하긴, 제대로 한 것도 없으니 그것 조차 큰 욕심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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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데 똑똑하고,
똑똑한데 멍청하고.
알면서 모르는 체하고,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시건방과 예의바름,
예의바름과 시건방의 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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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어야 하는 상황은 정말 좆같고도 좆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속으로는 웃음이 난다. 코웃음이 나서 즐겁기까지 하다. 분노에 휩싸이는 것보다 그 비웃음이, 코웃음이 차라리 낫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 나중을 기약해 볼 테니. 언젠가는, 어떻게든 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