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게 넘어진 순간"
모든 것이 보이는 곳에 있었다.
하늘은 넓었고, 시야는 막힘이 없었고,
나는 늘 무언가를 감지하고 조율하고 판단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곳은 관제탑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매일 수십 번씩 무전을 주고받았고,
누구보다 정확하게 말했고, 누구보다 침착하게 대응했다.
조종사와 지상 사이를 잇는 목소리,
그 중간에서 나는 늘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랐다.
단 한 글자, 단 한 초의 실수가 생명을 좌우할 수 있었기에
내 말투는 훈련처럼 정제되어 있었고,
표정도, 숨소리도 조절된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감정은 사치였다.
불필요했고, 방해였고,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면, 그건 강하게 눌러야 할 감정일 뿐이었다.
그래서 익숙해졌다.
참는 데, 눌러 담는 데, 아무 일 없는 듯 지내는 데.
관제탑은 높았다.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였고,
날씨가 좋은 날엔 지평선 너머로 흐릿한 섬들이 드러났다.
해가 질 때면 관제실 안은 붉게 물들었고,
그 빛 아래서 나는 여전히 무전기 앞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관제탑 위에서도,
나는 사람이라는 걸 잊을 수 없었다.
무전이 잠시 멈춘 새벽,
문득 밖을 바라보다 보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이 자리에서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
가끔 생각나곤 했다.
관제탑은 높은 곳에 있었지만,
그 안의 나는 때때로 너무 작게 느껴졌다.
모든 걸 통제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마음 하나 다룰 줄 몰랐다는 걸
나는 그때, 자주 느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그곳에선 누구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대화는 절차와 명령, 응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Read you 5." "Runway 12, clear for taxi." "Scramble, F-18 for immediate takeoff."
그 짧고 간결한 말들 사이에서
내 감정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나는 점점 스스로를 감추는 데 익숙해졌다.
내가 입 밖으로 내는 모든 말은
'실수 없이' 전달되어야 했다.
그 말들엔 감정이 들어가선 안 됐다.
목소리는 일정한 톤을 유지해야 했고,
말의 속도조차 훈련된 리듬이어야 했다.
그렇게 언어를 통제하다 보니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 감정까지 통제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4년을 보냈다.
밴쿠버 근처의 조용한 섬,
항공기들이 뜨고 내릴 때마다
나는 침착한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고,
내 목소리는 언제나 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무너졌다.
폭발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내가 지키고자 했던 질서 속에서,
나는 가장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을 맞이했다.
눈앞이 하얘졌고, 귀가 멍해졌고,
그동안 내가 쌓아온 침착함이 산산조각 났다. 내가 훈련으로 단련해 온 언어들은
그날 이후 하나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관제탑에 다시 오르지 못했다. 몸은 빠르게 회복했지만,
마음은 그 높이를 회복하지 못했다. 무너진 건 균형이었다.
그리고 그 균형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내 태도 뒤에 숨어 천천히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상담이라는 것을 받아야 했다.
처음엔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상담실 앞에서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모른다.
한 발을 내딛는 데도, 온몸이 저항했다.
나는 수천 번의 교신을 해왔던 사람이다.
상황을 간결하게 전달하고,
실수를 줄이며, 침묵까지 계산해왔던 사람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의 상태를
한 문장으로도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말이 내 상담의 첫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 말 속엔
수년간 눌러왔던 수많은 감정들이 들어 있었다.
상담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 울컥했다.
누군가가 내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조금씩 무너져내렸다.
말하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그것은 교범에 없는 언어였고,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나의 언어였다.
관제탑의 끝에서,
나는 내 안의 신호를 처음 듣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항상 바깥을 향해 있었던 나의 집중이
비로소 안으로 향했다.
비행기의 고도, 바람의 속도, 통제 구역의 범위보다
더 중요했던 건—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는가였다.
나는 그날 이후, 조종을 멈추고
천천히 쓰기 시작했다. 지시를 위한 언어가 아닌,
기록을 위한 말들. 침묵 뒤에 남겨진 문장들. 그것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높은 곳에 올라 있던 나 자신이
사실은 가장 낮은 곳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조용히 쓰기로 한 건,
내가 나를 다시 조율하기 위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