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앉은 채 나는 멈춰 있었다
공무원이라는 말은 편리하다.
어디에서 일하는지만으로도 사람을 정의할 수 있고,
정해진 형식과 규정 속에서 하루가 반복된다.
나는 국세청에서 일했고, 그 말만으로도 내 일상은 충분히 설명되었다.
책상이 있는 큐비클은 작았다.
지급된 휴대폰, 커피잔, 고정된 두 개의 모니터.
매일 아침 7시에 앉아 5시에 일어나며,
그 책상 앞에서 하루를 보내는 삶이었다.
처음엔 그 규칙성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불확실한 것 없이 정해진 일과는 사고 이후 불안정했던 나에게
하나의 도피처처럼 느껴졌다.
행정은 흐트러짐 없이 흐른다.
업무 매뉴얼이 있고, 정해진 절차가 있고,
사람 간의 대화도 형식화돼 있다.
전화는 정해진 응대 문구로 시작했고,
보고서에는 말투나 개성 없이 정해진 언어만 허용되었다.
모든 게 정해진 대로 일하는 듯했다.
오히려 표현이나 의견은 위험요소가 되곤 했다.
그 시스템 안에 들어간 나는 ‘적응’이라는 단어로,
침묵과 거리감을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방 알게 됐다.
그 평온이 무감각이라는 것을.
하루하루는 똑같았고, 사람들과의 대화는 줄었으며,
머릿속도 점점 조용해졌다.
점심시간은 늘 혼자였고,
대부분의 인사는 짧고 형식적이었다.
"Did you just get back?"
"Yeah."
그게 전부였다.
누구도 내 안을 궁금해하지 않았고,
나도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사람보다 일이 우선이었고,
감정보다 처리 속도가 중요했다.
그건 어쩌면 편했고, 동시에 외로웠다.
무표정은 점점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익숙함이었다.
표정 없이 일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걸 알았고,
나 자신도 그렇게 변해갔다.
화장실 거울을 볼 때마다 내 얼굴은
전과 달랐고,
표정은 사라져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얼굴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누구와 마지막으로 긴 대화를 나눴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화는 있었지만 ‘말’은 없었다.
사무실에선 누구나 적당히 피곤했고,
적당히 예민했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했다.
업무와 감정은 분리되어야 했고,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시간은 오직 효율에 바쳐졌다.
그런 공간에서 감정은 불필요한 요소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그게 정답인 줄 알았고,
더 이상 감정이 흐르지 않는 내가
오히려 더 안정적인 사람이라고 느끼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료 한 명이 물었다.
"Are you okay?" That one question rang loud in my ears. I wasn’t sure how to respond. "Yeah, " I said,
그 대답은 나 자신에게조차 낯설었다.
그날 이후, 나는 휴대폰에 있는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짧은 문장들을 적었다.
“오늘은 커피가 쓰다.”
“나는 피곤하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일은 끝났지만 기분은 무겁다.”
“주말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이 자리가 나에게 맞는가?”
그 문장들이 쌓였고,
그걸 적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사고 이후 상담을 받던 시기를 떠올려보면
그때의 나는 무엇이든 말하라는 요구 앞에서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 반대다.
누가 묻지 않아도 조용히 문장을 적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보고서가 아닌 나의 문장들이었다.
그 글을 통해 무언가를 회복하고 있다고는 느끼지 않았다.
회복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무언가를 회복했다고 말할 만한 증거도 없다.
다만, 매일을 이전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점심시간의 혼자 있는 시간이
예전엔 공허했지만
지금은 내가 나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침묵도
더 이상 불편하지 않다.
누군가와 말하지 않아도
나 자신과는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세청 책상 앞에 여전히 앉아 있고,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보낸다.
점심시간도, 퇴근길도 그렇다.
그 안에서 조금씩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변화라면, 아주 느리고 조용한 변화다.
나는 여전히 많이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는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느낀다.
나는 완전히 회복된 사람은 아니다.
사고 이전의 내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더 잘 알고 있다.
그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책상과 사람 사이.
그 거리 안에서 나는 아직도 멈춰 있다.
그러나 전과는 다르다.
이제는 내가 멈춰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걸 조금씩 바꾸기 위해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그게 전부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