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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퀴터 Nov 03. 2022

도쿄 옷가게 아르바이트 하기

굽실굽실…

일본 옷가게 아르바이트생들은 외모를 보고 그 브랜드와 어울리는 사람을 뽑는다. 매장에서 운영하는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점원이 신상품을 코디해 입은 사진을 찍어 올린다. 그래서 유명 의류 브랜드나 고급 편집샵 점원들은 그 자리에 뽑혔다는 사실이 마치 벼슬이나 되는 양 자랑스러운 듯 했다. 사실 나도 멋지게 차려입은 점원들을 볼 때면 거기 끼어 그들 중 하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2학년이 되어 어느 정도 일본어에 자신이 붙자, 용기를 내 집 근처 의류 매장에 아르바이트로 지원했다.


그 매장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면접에서 영어와 한국어 접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열심히 내세웠다(일본인은 대체로 영어를 못하니까 매장에 외국인 관광객이 올 때마다 진땀을 빼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점장은 나의 어필에 넘어가 그 자리에서 나를 채용했다.


그리고 알바생이 된 나는 그동안 일본에서 고객으로서 느꼈던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도한 친절을 이제 몸소 선보이게 되었다. 일본의 투철한 서비스업 정신에 대해서는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점원들이 고생깨나 한다는 뜻인데, 일본에서 알바를 하려면 우선 자신의 목소리와 인격을 ‘점원답게’ 바꾸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모든 점원이 똑같은 톤의 목소리로 똑같은 문구를 말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올리브영 점원들은 고양이 같은 목소리를 내며 굽실대지 않는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인사말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말도 극존칭을 써 가며 말한다. 원문의 과장됨을 살려 보자면 아래와 같다.

“부디 손에 집으시고 보십시오(どうぞお手に取ってご覧下さい).”

“시착 어떠하십니까(ご試着いかがでしょうか)?”

“부디 느긋하게 입어 보십시오(ごゆっくりどうぞ).”

“기다리시게 해 송구합니다(お待たせ致しました).”

이런 문구들은 아예 관용구처럼 정해져 있어 서비스업 종사자라면 누구나 이 기본 문구를 차용한다.


또한 신발을 취급하는 매장일 경우 고객이 신발을 신어볼 때 양쪽 무릎을 꿇고 고객을 올려다보며 굽신거려야 한다. 내가 일하는 곳도 신발을 취급하는 매장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필연적으로 무릎을 꿇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막상 이런 짓을 직접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나는 도저히 무릎을 꿇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한국인으로서 일본인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뭔가 괜히 기분 나쁜 구석이 있었다. 내 생각이 너무 멀리 간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나는 매번 고객 옆에 엉거주춤 서서 ‘시착 어떠십니까’라고 물었다. 남다른 내 접객 방식이 언짢은 고객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무릎을 꿇지 않는다고 기분이 나쁜 쪽이 이상한 거 아닌가?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그 매장 점원 중에는 가슴팍에 파스 같은 것을 늘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는데, 궁금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가슴에 있는 꽃 문신을 지우는 중이라 가리려고 붙인 것이라 했다. 문신 제거 레이저는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몇 년 걸리는 데다 엄청 아프다는 말도 덧붙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아프기로 유명한 그 레이저를 늘 마취 없이 받는다고 했다. 마취 주사는 비싸기 때문이란다. 마취할 돈이 없어서 고통을 날것 그대로 참는다니 정말 우울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싱글맘이었는데 아이 아빠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엔 모델처럼 잘생긴 점원도 하나 있었는데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새하얀 피부에 서구적인 외모를 갖고 있었는데 의류매장 점원답게 옷 입는 센스가 좋았고 머리 스타일링도 늘 완벽하게 하고 다녔다. 그가 여성 고객에게 다가가면 다들 그의 잘생김에 살짝 긴장하곤 했다. 그러나 나만은 그의 무식함을 꿰뚫어 보았는데, 몇 번의 대화를 통해 그의 기본적인 상식의 부재를 눈치채고 나니 더 이상 그 잘난 얼굴이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Cube Sugar’라는 영어를 못 읽어서 나한테 물어봤다. 그럴 거면 평소에 큐브(キューブ)나 슈가(シュガー)라는 외래어는 왜 갖다 쓰나?


히피 컨셉의 남자 점원도 기억난다. 그는 어깨까지 늘어뜨린 파마머리에 늘 비니를 쓰고 다녔다. 이런 머리는 잘생긴 사람이 하면 꽤나 인상 깊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그런 인물이 못 되었다. 그는 전형적인 ‘싫은 타입의 알바 선배’였는데, 모든 여자 알바들에게 치근덕거리고 개인적인 약속을 잡고자 했으며 일할 때는 수시로 손님들의 뒷담을 해댔다. 겉과 속 모두 못생긴 사람이었다.


여기까지 다시 읽어보니 마치 내가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내가 좋아한 일본인도 많았다. 왠진 모르겠지만 그들은 대부분 언니를 통한 지인들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나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일본인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전형적인 일본인의 틀에서 벗어난 (일본 사회 기준에서는) 약간 이상한 사람들이었는데, 이는 그런 사람들만이 진짜 자기 생각을 말할 줄 알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보편적인 일본인은 자기 의견이라는 게 없고 눈치 보며 앞사람 의견에 따르기 급급했다. 그런 사람은 도무지 재미가 없고 대화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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