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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퀴터 Nov 05. 2022

일본 대학에서 밴드 동아리 들어가기

제 밴드는 잘생긴 사람만 가입 가능합니다

대학 입학 직후 받는 동아리 안내 팸플릿 안에는 특이한 이름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으로는 ‘양배추를 좋아하는 사람의 모임’, ‘포켓몬 모임’, ‘나베 모임’ 등이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노래 동아리 활동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밴드 동아리에 가입하기로 했다. 내가 다닌 대학의 밴드 동아리는 보통 지하의 소규모 클럽을 빌려서 공연을 하는 식으로 신입생 환영회가 이루어졌는데, 가까운 일정에 어느 밴드 신입생 환영회가 열리기에 한번 가보았다. 사실 그날 혼자 아오야마의 지하 라이브클럽에 가는 것은 내가 그때까지 살면서 가장 용기를 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입학 직후에 아는 사람도 한 명도 없는데 혼자 아오야마 같은 화려한 동네에 가서 지하 라이브클럽에 들어가다니, 내 딴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잘생긴 동아리 회장이 적갈색 라이더 자켓을 입고 노래하는 모습에 반해 바로 가입을 결심했다. 다른 동아리를 더 둘러볼 필요도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고 아마 다들 그 선배의 멋짐을 보고 앞다투어 가입하는 듯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회장은 여자 친구가 있었지만.


青山月見ル君想フ 라이브하우스


내가 들어간 동아리의 이름은 ‘MFC’였다. ‘Music Fan Club’의 약자다. 내가 지은 것도 아닌데 말할 때마다 부끄러운 이름이다. 비록 이름은 유치하지만 음악 취향은 훌륭한 곳이었다. 이 동아리는 70명 정도가 있었고 그 안에서 각자 밴드를 꾸렸다. 그리고 밴드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아티스트를 골라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식이었는데, 그 아티스트란 것이 아레사 프랭클린, 레이 찰스, 잭슨 파이브, 비틀즈, 롤링스톤즈 등 하나같이 고급 취향이라 귀가 즐거웠다.


의외로 이 동아리는 신입생 오디션을 본다거나 그런 것은 일절 없고 들어오고 싶으면 누구나 받아주었다. 그러니까 연주도 할 줄 모르는데 악기 파트로 들어오는 것도 가능하긴 한 것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거의 모두가 실력파였는데, 이는 일본인이라면 모름지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실력도 없으면서 동아리에 들어오는 깜냥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다만 노래는 그리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노래는 스스로 꽤 한다고 착각하기 쉬우니까… 게다가 솔직히 한국인은 워낙 노래를 잘하는 민족이다. 우리나라는 전공과 무관하게 어디에나 수준급의 노래 실력을 갖춘 사람이 많은데, 일본은 그렇지 않을뿐더러 일단 남 앞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보기 드문 용기였다.


신입생은 신입생끼리 밴드를 꾸려야 했는데, 그 동아리 전통상 멤버를 꾸리고 곡을 정하는 리더 노릇은 다 보컬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보컬이었던 나는 오로지 얼굴만 보고 멤버를 간택했다. 즉 잘생긴 1학년들에게 가서 나와 함께 밴드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해서 잘생긴 색소폰 한 명, 잘생긴 드럼 한 명을 데려왔다(너무 홍일점으로 하기는 조금 민망하니 신입생 환영회 때 얼굴을 튼 여자애 두 명도 베이스와 키보드로 영입했다). 색소폰은 키 크고 해사한 미남형이었고 드럼은 지미 헨드릭스 같은 아프로 헤어가 잘 어울리는 미남이었다. 이들을 데려온 것은 나의 실수였다. 나는 지나치게 잘생긴 애들을 선택한 나머지 오히려 즐거운 동아리 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는데, 내가 잘생김에 대한 면역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연습을 하거나 밥을 먹을 때 편안하게 있기가 어렵고 늘 긴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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